나의 목회에서 가장 보람되고 즐거웠던 일은 희년 실천 운동이었다. 교회 설립 ５０주년을 맞이하여 희년 명령을 실천해 보자고 제안했을 때 모두들 '어떻게?'라며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성서를 펴고 '희년'을 공부하며 토론하여 구체적 실천 방법을 교회와 이웃에게 적용해 보기로 하였다.

하나님 은혜로 이집트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공동체에 희년이 선포되면, 토지 반환, 노예해방, 부채 탕감이 이루어졌다. 희년으로 실현되는 세 가지 가장 큰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우선 '부채 탕감'을 우리 현실에 적용해 보기로 하였다. 교회 안팎을 살펴보았더니 대부분의 성도들이 빚 문제로 힘들어하고 있었고 교회 주변의 이웃들은 더 심각했다.

주기도문의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함과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에서 '죄 용서'는 '빚 탕감'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러한 내용의 강의를 나누었을 때엔 우리의 희년 실천은 더욱 구체적으로 전개됐다.

교회 안에서의 성도끼리의 오래된 빚(7년 이상)은 채권자가 빚 탕감의 내용을 적어 헌금함에 넣기로 하였다. 목회자와 장로는 해당 채무자에게 찾아가 이 소식을 알려 주는 방법으로 부채 탕감 운동을 하였다. 2000만 원에서부터 수백만 원, 작게는 30만 원에서 50만 원 등 기대 이상으로 많은 건이 있었으며 장로회가 모르는 탕감도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교회 주변 이웃들에게는 전기, 가스, 의료보험 등의 세금이 체납되어 단전되거나 병원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대납을 하였다.

또한 '파산 신청'을 돕는 단체를 통해 빚 문제로 새 출발이 어려운 사람들을 상담하고 도왔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빚에 허덕이고 있다는 사실에 눈을 열고 보니 사회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에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을 개인 윤리의 잣대로만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빚을 지지 않고는 살아 갈수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은 거의 빚쟁이 신세가 된다. 집도, 결혼도, 자녀 양육도 빚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사업을 하려면 빚을 지게 마련이고 결국 돈이 돈을 벌게 된다는 것이 현실이 되었다. 각종 대출 광고가 쏟아지는 이유는 빚의 유혹(?)에 자유롭지 못한 우리들의 형편과, 이것을 부추기는 경제구조가 있음을 의미한다.

한번 고금리의 빚을 지게 되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자는 부채의 짐을 더욱 무겁게 하여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게 한다. 요즘 뉴스를 보면 1000조가 넘는 가계 부채로 대한민국이 신음하고 있다고 전한다. 가계와 기업들의 부채가 커지면 은행들도 부실의 위기에 처하게 되고 국가 전체가 빚에 넘어지게 되는 것이 상식이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미국의 금융 위기 때보다도 더 심각하다고 경제학자들은 말한다.

채무 탕감이 위기를 극복하는 길임을 증명하는 세계적인 사례가 있다.1997년 아시아 외환 위기 당시에도 채무를 탕감한 것이 위기를 극복하는 데 주효했다. 이렇듯 현재 남(南)유럽 국가들의 재정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채권자들이 일부 빚을 탕감해주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독일 최대 싱크탱크인 IfO의 한스-베르너 진 소장이 말했다. 이는 깊이 생각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부채 탕감 운동을 하면서 빚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가난의 늪에 빠진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함께 살아가기 위한 '복지'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어 공부방, 창업 자금 지원, 지방 대학생 기숙사 등을 연구하며 실천하게 되었다. 장기적으로는 현 경제구조를 뛰어넘는 정책에 대한 관심과, 대안 공동체를 꿈꾸어 보았다.

사실 초기 한국교회사를 보면 부자 종순일(마을 사람들이 돈을 빌려 쓸 정도로 부자)은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고 난 후 "오늘 내가 예수 믿고 죄 사함받은 것이 천만 냥 빚 탕감받은 것보다 크거늘, 여러분에게 백 냥, 천 냥 돈 빌려 주고 그걸 받으려 한다면 이는 성경 말씀에 나오는 악한 종이라 할 것이요. 이 시간 후로 여러분이 갚을 빚은 없소." 하면서 빚 문서들을 꺼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불태웠다고 한다.1900년 4월에 일어난 이 사건을 계기로 강화 북부 홍의마을 복음화는 급속하게 이루어졌다. 교회가 있고 복음이 선포되는 곳이면 부채 탕감의 이야기가 한국교회 초기 선교 역사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개인이건 교회건 나라건 빚의 탕감은 한계 있는 인생들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 실천이며 평화롭게 함께 살아가는 정의의 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희년의 주인공으로 오셔서 자유와 해방의 복음을 전하셨다. 복음은 희년의 빚 탕감이다(눅 4:18-19). 교회는 빚의 노예가 된 세상이 빚으로부터 해방되도록 섬기는 공동체이다. 교회가 희년 명령을 실천하면 빚이라는 무거운 짐에서 자유를 얻게 된다. 이런 복을 모두가 누리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탕감)받은 성도들이 모인 교회에서부터 빚 탕감을 실천하여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열어 가자.  

방인성 / 희년함께 공동대표, 함께여는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