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7일 오후 6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 세월호 참사 가족들을 위로하는 기도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세종대왕상 앞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기독인 연합 기도회'에 참석한 200여 명의 교인들은 유가족들이 원하는 세월호 특별법이 마련될 수 있도록 마음 모아 기도했다. ⓒ뉴스앤조이 이사라

"선거 이후 정치인들은 세월호 가족들을 버렸다. 이제 바라볼 곳은 오직 국민들뿐이다. 한국교회가 국민들의 마음을 설득해 달라."

기독교 연합 기도회에 참석한 세월호 유가족 박은희 전도사(화정교회)가 꺼져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세월호 사건의 진실을 알기 원하는 개신교인들이 8월 7일 광화문 세종대왕상 앞에 모였다.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박동일 총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전용재 감독회장)·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김동엽 총회장) 개신교 3개 교단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기도회를 열었다.

기도회 분위기는 무거웠다. 기도회 1시간 전, 여야 원내대표가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극적 타결을 이뤘지만, 유가족들의 요구 사항은 반영되지 않았다. 참석자들은 한국교회가 시대 불의에 투쟁하지 못했음을 반성하며, 세월호 유가족들과 끝까지 함께할 것을 다짐했다. 기도회는 3시간가량 진행됐지만, 200여 명의 참석자는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행인들 역시 기도와 찬송 소리를 듣고 찾아와 간절한 마음을 모았다.

▲ "진실을 밝히는 데 목숨을 바치겠다." 세월호 유가족 박은희 전도사의 다짐은 확고했다. 그는 유가족과 함께 우는 이들이 많지만, 숨어서 돌을 던지는 자들도 있다고 했다. 부디 한국교회가 소외당한 이웃을 혼자 울도록 내버려 두지 않도록 부탁했다. ⓒ뉴스앤조이 이사라

기도회는 세월호 유가족 박은희 전도사의 발언으로 시작됐다. 그는 8월 7일 급박하게 타결된 세월호 특별법이 정치인들의 '야합'이라고 성토했다. 여야의 합의대로라면 결국 대통령이 특별 검사를 선임하게 돼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야당이 세월호 가족들을 버렸다고 했다. 이번 일로 정치권에 답이 없음을 분명히 알게 됐다고 했다. 박 전도사는 이제 믿고 의지할 곳은 국민들뿐이며, 국민들이 유가족들과 함께해 주기를 호소했다.

그는 유가족이 원하는 건 '진실' 한 가지라고 말했다. 1년이 걸리든 10년이 걸리든 투쟁을 이어 가겠다고 말했다. 그래야 하늘나라에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떳떳이 볼 수 있다고 했다. 일부 참가자들은 박 전도사의 이야기 내내 눈물을 훔쳤다. 많은 이들은 박수를 치며 연대와 지지를 표했다.

"사람들 앞에 서면 여전히 두렵고 떨립니다. 하지만 너희가 말하지 않으면 돌들이 소리쳐 말하리라는 성경 말씀처럼, 제가 말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말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유가족들은 많이 지쳤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줄 몰랐습니다. 일주일이면 다 구하고 끝날 줄 알았습니다. 보름이 가고 두 달이 넘고 석 달이 돼도 배가 왜 침몰했는지조차 확실히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세월호 얘기를 하냐며 지겹다고 합니다. 정부는 유족들을 해치워야 할 상대로 생각합니다. 어떤 이들은 시체팔이 운운하며 유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있습니다.

부모들 모두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나 역시도 교회에서 착하게 신앙생활만 했습니다. 다른 부분은 몰라도 종교계에서는 어떤 목소리를 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종교인들 역시 외면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수많은 사람이 고립되고, 왜곡된 기사들 속에서 처절한 아픔을 겪었습니다. 강은숙 목사님(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서기)께서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성경 말씀을 얘기했습니다. 기독교가 이 부분을 놓쳤습니다. 수많은 우는 자들을 골방에서 혼자 울게 했습니다. 가슴 치며 회개해야 합니다. 소외당한 이웃을 혼자 울도록 내버려 두지 않아야 합니다."

▲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기도한 김병균 목사(영산강교회)는 한국교회가 교권주의·물신주의에 사로잡혀, 정의의 예수·사랑의 예수를 버렸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건 당일 7시간의 공백 동안 무엇을 했는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며 이세벨처럼 더럽고 악한 여인이 되지 않도록 해 달라고 기도했다. ⓒ뉴스앤조이 이사라

목사들은 회개했다. 설교를 맡은 예장통합 인권위원장 김일재 목사는 부끄러워 하나님과 역사 앞에서 머리를 들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교회 목사가 강단에서 정의와 평화를 선포하면 교인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고 개탄했다. 교회에서 정의와 평화를 얘기하지 않으면, 할 얘기가 무엇이냐며 억장이 무너진다고 했다. 정의 설교가 메마른 교회는 교회가 아니며 사회 버팀목이 되지 못한다고 일갈했다.

갈릴리신대원장 홍성현 목사가 뒤이어 설교했다. 그는 내세 신앙이 한국교회와 사회를 죽였다고 말했다. 교회에서 구원 얘기는 그만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에, 이 땅의 현실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고 소리쳤다. 그는 세월호 사건이 하나님의 섭리임을 주장하며 참고 견디라고 말하는 목사들을 비판했다.

"어떤 목사들은 세월호 사건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떠듭니다. 교회에 다녔으니 천당에서 편히 쉬고 있다고 위로합니다. 이따위 식으로 설교하면서 하나님과 교회를 욕보이고 있습니다. 초월 신앙이 이 땅을 살리는 게 아니라, 우리의 사랑과 정의가 이 땅 안에서 이루어질 때에야 비로소 초월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죽어 가는 한 생명 한 생명을 살려 내는 게 교회고 천국입니다. 천당 얘기는 이제 그만하십시오. 이 땅에서 생명을 살리면 됩니다. 1000만 성도가 모여서 국회로 갑시다."

▲ 홍성현 목사는 설교에서 내세 신앙이 한국교회와 사회를 죽였다고 말했다. 교회에서 영원한 구원 얘기는 그만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에, 이 땅의 현실에 교회가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고 소리쳤다. 그는 세월호 사건이 하나님의 섭리임을 주장하며 참고 견디라고 말하는 목사들을 비판했다. ⓒ뉴스앤조이 이사라

기도회 후에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고창석, 권재근, 권혁규, 남현철, 박영민, 양승진, 이영숙, 조은화, 황지현, 허다윤)들의 이름을 함께 불렀다. 이후, 임보라 목사(섬돌향린교회) 주도로 구호를 외쳤다. 임 목사가 "여야 합의는 야합이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하라. 우는 자와 함께하겠습니다"라고 선창하자 참가자들은 "제정하라", "함께하자"라고 후창했다.

기도회가 끝나자, 참석자들은 촛불 문화제 장소로 이동해 다시 유가족과 함께했다. 일부는 곧장 국회로 달려가 여야 합의를 규탄하며 농성 중인 유가족들과 연대했다. 

▲ 축도를 한 유경재 목사(안동교회 원로)는, 상처를 치유하는 보혜사 성령께서 세월호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과 그들의 고통에 동참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하기를 기도했다. ⓒ뉴스앤조이 이사라
▲ 기도회 참석자들은 여야 합의안은 밀실 야합이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교인들은 여야의 정치적 야합이 아닌 '유가족이 요구하는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주장했다. ⓒ뉴스앤조이 이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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