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환 목사의 '성도 20명 교회, 과연 환상적일까'라는 글에 동네작은교회 김종일 목사가 답변을 했습니다. 목회 형태와 과정 등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바른교회아카데미 저널의 김종일 목사 인터뷰(바로 가기)를 참고하세요. -편집자 주

이택환 목사님의 글에 감사를 드립니다. 작은 교회들의 몸부림과 생사를 건 목회 사역의 수고는 어떤 환경이든 어떤 상황이든 마찬가지라 생각됩니다. 먼저 이런 토론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서로에게 유익하고 목회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먼저 목사님의 글 전체를 읽으며 드는 느낌은 다음 세대 교육 또는 교회의 신앙 교육의 필요성에 가장 큰 관심과 질문을 갖고 계시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마도 저희교회에 대한 관심이 이 부분에 집중된 듯하여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의견을 개진하는 방식으로, 먼저 목사님 생각에 대한 제 견해를 밝히고 이어서 저희 교회의 어린이 신앙 교육을 담당하는 부서의 책임자가 실제적인 교육 현장을 소개해 드림으로 토론과 논의를 전개해 보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에게 보다 실제적인 유익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1. 저는 전담하는 전문 사역자를 두어야 한다는 것은 이상적일지는 모르나 옳은 것인가 하는 점은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많은 교회에서 인턴십의 과정으로 신대원생이나 신학생이 교육부서의 한 파트를 맡아 수고해 왔습니다. 평신도보다는 낫지 않냐 싶지만 과연 그들이 '전문 사역자'였는가 하는 점에선 쉽게 동의가 되지 않습니다.

그들의 헌신과 수고를 평가절하하려는 것은 아님을 이해해 주십시오. 나중에 대형화되는 교회들에서는 교육을 전공한 사역자들이 교육부서를 전담하는 구조를 가지기도 했지만 한국의 교회들 가운데 이런 구조를 가진 교회가 과연 10%나 되겠습니까? 상위 몇 프로 안에 드는 교회들의 구조를 흉내 내는 것으로는 교육의 전문화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2. 그런 점에서 저는 대형 교회들의 교육 전문화는 그들의 환경에서는 나올 수 있는 구조이나 우리들에게는 그저 사울의 갑옷 정도밖에는 안 된다고 보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울의 갑옷이 아니라 다윗의 물맷돌입니다. 하찮아 보이고 우스워 보이지만 손에 익고 항상 훈련이 되어 있고 언제나 친근한 교육의 자원들을 활용하는 지혜가 우리에게 보다 갖추어져야 할 교육의 관점이라 생각됩니다.

3. 가장 좋은 교육자는 부모이고 교회의 어른들이십니다. 전문화의 치명적 약점 중의 하나는 부모들이 자신들이 해야 할 교육의 의무를 쉽게 떠넘겨 버리는 데 있습니다. 가장 강력한 교육의 현장은 가정이며 교회는 그것이 보다 공동체적임을 경험하는 곳입니다. 부모들이 가정에서뿐 아니라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자신들의 자녀와 지체들의 자녀들을 함께 키워 내는 모습 속에서 진정한 교회 교육이 실현되리라 믿습니다.

4. 20명이라는 숫자가 주는 한계가 있음을 저도 절감합니다. 실제로 저희 교회는 20명이 공동체의 최적의 숫자라고 주장하는 책의 내용을 실제로 접목했던 교회입니다. 그러나 그 예가 서구의 상황에서와 한국에서는 많이 다름을 또한 직접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그 숫자를 30-40까지 늘려서 재조정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20명이든 40명이든 작은 공동체로 존재하겠다는 저희의 생각은 여전히 많은 교회와 사역자들에게 비현실적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최적의 숫자가 몇 명이냐 하는 것과 그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5. 이제 여기서부터 교육의 문제는 교회의 사이즈와 연관되어 논의가 전개되게 됩니다. 이 부분에서 제가 이의를 제기하는 점은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주장하는 교회의 적정 숫자는 몇 명이냐보다 왜 그 숫자여야 하는 점입니다. 왜 백 명이어야 하고, 왜 이백 명이어야 하고, 왜 오백 명이어야 할까요. 우리가 교회의 적정 규모라고 말하는 숫자의 근거는 솔직히 말하면 경제적 자립의 근거로서의 의미입니다. 즉 지극히 경제적인 이유로 공동체의 숫자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말입니다.

6. 저는 이 부분이 우리 모든 목회자들이 빠지기 쉬운 맘몬의 유혹이라고 믿습니다. 주변에서 저는 이런 말을 하는 목사님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큰일을 하려면 교우들이 몇 명은 모여야 한다", "큰 규모가 큰일을 가능케 한다" 등등 순간 들으면 맞는 말 같은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참 무서운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가 존재할 수 있는 능력과 힘 있는 사역을 할 수 있는 근거가 과연 경제 규모와 사람의 숫자에 달려 있는 것일까요.

저는 반대라고 봅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 큰 것을 맡기시고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주님께 한 것이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규모를 보지 말고 주어진 환경에서 충성을 다하라는 명령이라고 이해합니다.

7. 사이즈가 교육의 질을 정하는 것이 아니고 교육의 질이 사이즈를 정하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교육을 이야기할 때는 항상 교사 대 학생의 수가 적을수록 좋은 환경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교회 교육, 교회의 사이즈를 이야기할 때는 이 원칙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12명을 데리고 제자 훈련을 하셨습니다. 바울은 항상 동역자 한 명과 사역을 감당하며 개척을 하였습니다. 그는 대형 교회 하나를 세우려 하지 않았고 이방 땅을 두루 다니며 예수의 공동체를 여러 개 세웠습니다. 예수와 바울은 오히려 작은 자, 적은 무리, 소수에게 올인한 교육 방법을 취했습니다.

8. 교회 교육은 다시 교회 개혁의 주제로 이어집니다. 개혁의 DNA가 있는 자들이 교회를 개척하는 법입니다. 이렇게 힘든 한국교회의 상황에서 왜 교회 개척이라는 그 미친 짓을 했겠습니까. 제가 알고 있고 교제하는 대부분의 개척자들은 이 일이 무슨 대단한 부귀영화를 줄 것이라 생각하는 바보들은 아닙니다. 몇 년 고생하면 대형 교회로의 성공 가도를 달릴 거라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그 정도로 순진하거나 막무가내는 아닙니다. 그러면 믿음이 적은 자들이라고 책망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저희가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은 우리의 관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숫자의 성장 역시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문제이지 우리의 목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것보다 더 분명한 것은 그렇게 성장 중심으로 막 가고 있는 작금의 대형 교회조차도 이제는 더 이상 쓸 만한 카드가 별로 남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9. 그래서 이제 우리 개척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창의적인 발상의 전환과 창조적인 접근입니다. 조금 바꾸어서 될 일이 아닙니다. 확 바꾸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갖고 있던 성장과 성공의 절대 신공들을 가차 없이 쓰레기로 여겨야 합니다. 기존의 방식들을 밑에서부터 뒤집어 놓고 다시 교회를, 선교를, 그리고 교회 교육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교육 역시도 늦게 출발해서 허겁지겁 뒤쫓아 가는 후발 주자로서의 개척교회가 아니라 남이 전혀 보지 못하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프런티어의 자세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10. 물론 우리도 실패할 수 있습니다. '안 되는 거였구나' 하고 뒤늦게 시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라도 해 봄으로써 비록 실패를 했더라도 뒤따라오는 동역자들과 후배들에게 '아, 저 길을 가면 안 돼' 하고 경고등의 역할이라도 할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소중한 실험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또 누가 압니까. 실패가 아니라 우리가 가는 이 길이 정답이었음이 확인될지도…. 그러니 안 가는 것보다는 가 보는 게 맞습니다.

김종일 / 동네작은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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