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나는 대구 기독교 총연합회 임원들과 만남을 가졌다. 얼마 전 내가 썼던 글이 대구 지역 목회자들에게 논란거리가 되었고, 이에 대해서 나의 진의를 알고 싶다는 임원회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나의 글은 '동성애 퀴어 축제에 대한 전략적 대응'이라는 글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기독일보>에 보도된 나의 칼럼을 가지고 제2차 보도를 만들어 낸 <인터넷 뉴스 신문고>의 "동성애 반대한다며 물리력 동원 성경적이지 않아"라는 글이 문제가 되었다. <인터넷 뉴스 신문고>에서는 나의 칼럼 중에서 동성애가 철저하게 죄악이라는 주장은 하나도 보도하지 않은 채, 마치 내가 동성애자들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것처럼 보도했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불러서 내 의견을 듣고 싶다고 하여 자리를 마련해 준 대구기독교총연합회에 감사를 드리고 싶다.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막무가내로 욕하고 비난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구 지역 목사님들은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잠 18:13)"는 성경적 가르침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대구기독교총연합회 임원들은 연합회가 어떻게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 대응했는가를 내게 설명해 주었다. 연합회의 대응은 성경적인 방법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많은 고심과 연구 가운데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왜 내가 '동성애 퀴어 축제에 대한 전략적 대응'이라는 글을 쓰게 되었는지, 그 속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동성애 옹호론자들의 노이즈 마케팅에 우리가 말려들어 가 우리의 어설픈 대응이 오히려 동성애 옹호 분위기를 만들어 낼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쓴 것임을 해명하였다. 그리고 내 칼럼에서 지적한 것은 대구기독교총연합회가 그렇게 잘못하고 있다는 차원에서 쓴 것이 아니라, 서울에서 있었던 몇 가지 해프닝들을 예로 든 것임을 설명해 주었다. 길지 않은 대화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충실하고 있으며 함께 협력해서 나가야 할 동지들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고, 우리는 교제의 악수를 마치고 헤어질 수 있었다.

나는 이 모임을 마치고 나오면서 초대교회의 예루살렘 회의(행 15장)를 생각해 보았다. 초대교회 시절에 유대로부터 온 사람들이 이방인들에게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주장을 하였다. 바울과 바나바와 이들 사이에 이 주장은 논란거리가 되었고,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사도들이 모이게 되었다. 결국 이 모임을 통해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무엇이 필수적인 것이며 무엇이 단순히 권고할 사항에 해당하는 것인지 의견을 나누었고, 더욱 복음을 강력하게 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바 있다.

감사하게도 대구기독교총연합회는 우리가 같은 마음과 생각을 가졌다는 것을 확인하고 함께 복음을 위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교제의 악수를 하고 나오려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인터넷 뉴스 신문고>의 기사를 읽고 나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항의성 전화를 주신 분도 계시고 항의성 문자를 주신 분도 계셔서 마음이 조금 불편했었다. 어떤 분은 <인터넷 뉴스 신문고>에 항의를 하는 것을 제안을 하신 분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이 때문에 일약 대구 교계에 무명의 내가 유명세를 탄 것이 아니겠는가? 목사님들이 만나기만 하면 내가 누구인지 이야기를 한다고 하니 말이다. 노이즈 마케팅이 된 셈이다.

나는 믿는다. 근거 없는 소문은 잦아들게 되어 있다고 말이다. 내가 일일이 대응하지 않아도 거짓된 말은 요란하게 맹위를 떨치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진리가 남는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가 떠도는 것과 제비가 날아가는 것같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느니라(잠 26:2)." 일일이 나에 대한 헛소문에 대해서 내가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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