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황과 나> / 김근수 지음 / 메디치 펴냄 / 262면 / 1만 4500원

장로교 목사로서 이런 책들은 서평하는 것조차도 불편하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WCC, 그리고 로마가톨릭교회에 대해서는 좋지 않은 말을 해야 훌륭한 신앙인이자 지도자로 대우받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히 개혁적인 저자가 제기한 로마 가톨릭의 교황 제도와 21세기 전망에 대한 균형 잡힌 평가서가 있어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과 관련하여 개신교인들이 어떤 생각을 하면 좋을까를 고민하다가 이 책을 급히 서평하게 되었다.

저자는 해방신학자의 입장에서 현 '개혁적' 교황 프란치스코를 평가하고 가톨릭교회의 미래를 전망하는 책을 썼다. 현 교황(역설적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을 '로마 주교'라고 표현하기를 즐겨한다)을 '온건한 해방신학자'라고 규정한다. 그래서 그의 책에는 "가난과 싸우며 가난한 사람을 편들고 가난한 사람의 손을 잡는 신학"의 관점이 녹아들어 있다(198쪽). 그의 입장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198쪽 이하에 잘 언급되어 있다. 전통 로마 가톨릭교회와 남미 해방신학전통과의 길고 지루한 싸움에 대한 언급도 나온다. 저자는 로마 주교로부터 시작하는 교황제의 역사 속에서 프란치스코 수도회와 예수회, 그리고 비주류와 가난에 대한 관심을 배경으로 하는 교회 내부로부터의 개혁의 추진(현대의 개혁 교황들)의 흐름을 잘 조합한다.

저자는 1장에서 현 '개혁' 교황인 프란치스코의 태도와 입장의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의 사상적 배경을 "모국 아르헨티나의 정치, 경제, 사회적 환경, 예수회라는 선교에 적극적인 수도회의 영향, 가난한 자를 돕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가르침"에서 찾는다(40쪽). 해방신학의 관점은 "믿음의 그리스도보다 역사의 예수에서 출발하는 신학의 길"을 취한다(44쪽).

저자는 첫 번째 아르헨티나와 남미의 상황과 그의 신앙과 학문 배경을 먼저 다룬다. 그 다음에는 예수회와 경쟁관계에 있는 프란치스코 수도회를 언급한다. 생각보다 예수회와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청빈이라는 공통 코드가 있으며, 현 교황은 자신의 이름을 그 수도회의 창시자에게서 따왔다. 교황의 당면 과제는 가난에 대처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전쟁에 대처하는 것이다. 셋째는 종교 간의 갈등에 대처하는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우리와 유사한 아픔을 겪었다. 장기간의 군사독재로 인한 무차별적 박해가 있었으며, 칠레 가톨릭교회에 달리 아르헨티나 가톨릭교회는 우리의 상황과 유사하게 침묵을 결의하였다. 이와 같은 고통스러운 독재가 물러가도 아르헨티나에 남은 것은 신자유주의에 따른 "국가의 빈곤과 개인의 빈곤"의 문제였다(66쪽). 교황은 아르헨티나에 대주교로 있으면서도 빈민 사목(즉 목회)에 집중하였다. 이와 아울러 정부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은 아르헨티나 정부와의 지속적인 반목을 초래하였다.

제2장에서 저자는 현 '개혁' 교황이 있게 된 전임 교황에 대한 이야기를 제기한다. 저자는 자진 사임한 역사적 보수적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이야기한다. 그도 신학적으로 보수적이었지만, 타 종교와의 대화와 교회 일치 운동에 매진하였다. 전임 교황은 남미 해방신학을 박해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또한 그의 자진 사임은 개인적인 양심에 따른 것으로 "엄청난 용기와 겸손"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98쪽). 이것은 로마 가톨릭 교회를 이끌어 온 보수 교황의 시대를 마무리하는 역사적 한 획이었다(98쪽). 이것은 자진 사임이나 요구에 의한 강제 퇴임의 길을 열어 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게다가 전 교황은 여러 가지 면에서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교회에 존재하는 무능하고 비리가 있는 주교들을 가장 많이 사퇴시켰다. 그 결과로 현 개혁적 교황의 출현의 의미가 크다고 할 것이다.

저자는 3장에서 교황 제도의 역사를 설명한다. 로마 주교라는 직책은 로마의 박해하에서는 황제 코앞에서 신앙을 고백하는 자들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로마 주교로 임명되는 것은 순교자의 길을 의미했다. 이러한 순수한 기원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초반까지 가톨릭교회에는 평등사상이 없었다(130쪽). 또한 이와 같은 교황의 '막강한' 권한이라는 것도 앞서 이야기한 핍박의 시대를 넘어 종교의 자유를 선포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에게 볼 때, 에큐메니칼 공의회의 최종 결정은 로마 주교가 아니라, 황제의 승인하에 발표되게 되었다는 점도 아이러니다.

그러나 황제가 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옮긴 후, 정치적 중심지를 잃어버린 로마의 주교직은 종교적 중심지와 권위의 상징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로마는 위에서 창궐하는 '게르만인'들의 침공을 막을 뿐만 아니라, 신앙을 수호해야 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동서 교회의 분열과 아울러 세속 왕조와 관계가 무너지자 교황제도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혼란은 결국 십자군 원정으로 더 극대화되고 결국 중세를 넘어 종교개혁을 맞이하게 된다. 이후에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으로 선교의 관심을 돌리는 한편 가톨릭교회는 (개신교회와 마찬가지로) 권위와 제도를 부인하는 혁명과, 철학 사조와 과학의 발달의 여파를 맞게 된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근대 최초 '개혁' 교황은 1878년 레오 13세였다. 그는 사회주의뿐만 아니라, 자본주의도 비판하였다. 두 번째 교황은 "현대 사회와의 대화, 분열된 그리스도교의 일치, 가난한 사람들과 가난한 나라에 대한 관심과 세계평화를 호소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이끌었던 1958년의 요한 23세였다. 이전까지의 교회 수호와는 달리 교회 개혁의 화두였다(관련 서평 바로 가기). 개혁 교황은 지금까지의 전통적이며 권위적인 로마 가톨릭교회를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전기를 마련하였다. 이후에 이야기는 다시 원래의 연구대상으로 돌아오며, 3장의 끝에서 현 '개혁' 교황의 사상을 추적할 만한 문서들을 개관하는 것으로 신임 '개혁' 교황에 대한 연구는 마무리한다.

4장에서는 교황의 순방과 관련하여 저자의 한국 가톨릭교회에 대한 소망을 담고 있다. 최근 가톨릭교회에 신자가 급속도로 느는 이유를 "개신교의 경우 영혼을 구제하는 데 드는 비용이 비싸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저자는 이러한 이동이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신독재와 신자유주의 가장 나쁜 결합 속에서 돌아가고 있다. 빈부차, 경쟁, 그리고 세습은 가장 나쁜 삼위일체이다. 저자는 한국 가톨릭교회에게 새로운 십일조 운동을 제안한다. 안타깝게도 더 많이 모으자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교회의 재산을 1/10로 줄이자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교회가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다양한 화두를 던지고 있으며, 또한 여성 사제직을 포함하여 교회의 조직 제도를 전폭적으로 바꾸자는 조언도 한다.

책을 덮으며

저자는 해방신학자라서 그런지 교황 제도에 대한 비판을 서슴없이 던지는 편이지만 가톨릭교회에 대한 남다른 애정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여러 가지 호평을 듣고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지만, 서평자는 (이 책을 읽은 후에) 한국 가톨릭교인들뿐만 아니라, 개신교의 입장에서 교황의 방문이 갖는 특별한 이유와, 항상 이질적으로만 느껴지는 로마 가톨릭교회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갖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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