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의한 시대 순결한 정의> / 브라이언 채플 지음 / 김진선 옮김 / 성서유니온선교회 펴냄 / 404면 / 1만 8000원

오랜만에 좋은 설교집을 만났습니다. 평소 설교를 준비하면서 제법 유명하신 분들의 설교집을 여러 번 접했었는데 제게 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마다 '역시 설교는 현장에서 들어야 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분의 설교집은 실망만 남겼습니다. '내가 해도 이 정도는 하겠다.' 이런 교만한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설교집은 손에 집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설교집은 달랐습니다. 브라이언 채플의 다니엘 강해서인 <불의한 시대 순결한 정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최근 저는,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지만 정작 예수님은 자신을 사람의 아들로 부르셨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사람의 아들 즉 인자라고 부르신 배경에 다니엘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니엘서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만난 것입니다. 제목도 강렬했습니다. <불의한 시대 순결한 정의>.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 원제목이 훨씬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제목은 <The Gospel according to Daniel>입니다. 그런데 이 제목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신약의 사복음서의 영어식 표기가 'The Gospel according to'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책의 원제목을 한국어로 옮기면 '다니엘 복음'이 됩니다.

이 원제목은 브라이언 채플의 구약 독법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브라이언 채플은 목회자이자 교수입니다. 우리나라에는 그렇게 많이 알려지신 분은 아닙니다. 책의 표지에 브라이언 채플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설교자 중의 한 분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교, 리폼드신학대학원에서 가르쳤고 지금은 미국 일리노이 주에 소재한 그레이스장로교회를 담임하면서 카버넌트신학대학원 명예총장, 낙스신학대학원 설교학 교수로 섬기고 계십니다. 한국에 소개된 책은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은성), <성화의 은혜>(지평서원) 정도가 있습니다. 이런 채플 목사님의 이력을 살피면 정통주의 보수 신앙을 견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그의 신학은 고스란히 그의 설교 속에 녹아 있습니다.

저는 다니엘서가 복음서라는 그의 말에 동의합니다. 예수님에 의하면 구약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책입니다. 그러니 다니엘서를 비롯한 구약의 책들도 복음을 전하는 책으로 받아들여도 무방합니다. 이처럼 구약에서 복음을 찾는 해석의 틀을 구속사적 해석이라고 부릅니다. 브라이언 채플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와 같은 구속사적 해석의 틀을 유지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다릅니다. 구약에서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보다 믿음 좋은 사람을 전하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브라이언 채플은 구약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다니엘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왕의 진미를 거절해도, 왕의 신상에 절을 하지 않더라도, 기도하면 죽는다는 칙령이 내려졌음에도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를 하더라도 채플의 시선은 언제나 그들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하는 하나님입니다. 10장의 제목은 이러합니다. '세 번의 손길로 전달된 복음' 이 장에서 브라이언 채플은 다니엘의 약함을 드러내고 이 약함을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설교합니다. 다니엘도 우리와 같이 연약한 자였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저는 이 장에서 특히 많은 은혜를 누렸습니다. 그리고 위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니 내가 약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브라이언 채플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의 영웅에 기죽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가 보여 주는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이게 바로 복음입니다. C. S. 루이스에 따르면 '은혜'야말로 다른 종교와 기독교의 구별점입니다. 은혜라는 말 안에 이미 '무조건적'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무조건적인 은혜'라는 말은 은혜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균열이 발생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타락한 우리의 사고는 무조건적인 은혜를 거부합니다. 그러나 브라이언 채플은 다니엘을 통해 무조건적인 은혜를 전합니다. 4장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에서 그는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이라고 하는 바벨론의 포악한 군주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모습을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내적으로 어떤 선함도 없는 자에게 하나님이 아무 조건 없이 은혜를 베푸신다는 진리가 바로 다니엘서에서 캐내야 할 황금 같은 복음의 진리입니다'(152쪽).

그렇다고 해서 브라이언 채플이 흔히 말하는 값싼 은혜를 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값싼 은혜는 복음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생긴 말입니다. 그는 5장 '사랑의 경고'에서는 벨사살 왕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통해 우리를 엄중히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성도로서 책임 있는 삶을 회피하는 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죄를 버릴 마음이 없는 우리는 십자가를 버젓이 바라보며 그리스도의 상처를 헤집고 손을 넣어 그 피를 받아 죄를 가리는 데 쓰려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186쪽) 기가 막힌 표현이지 않습니까! 복음은 우리를 결코 방종으로 이끌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제대로 깨닫는다면 값싼 은혜를 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값싼 복음은 번영신학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번영신학은 값싼 복음의 파트너입니다. 값싼 복음이 참 복음이 아니듯이 번영신학 역시 복음이 아닙니다. 다니엘서가 복음서로 불릴 수 있는 까닭은 그가 번영신학을 바르게 비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도 번영신학이 번성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어려움과 고난을 비껴 갈 수 있다는 달콤한 메시지에 속아 넘어가는 자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이 씁쓸합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번영신학이 말하는 것과 전혀 다른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경건하게 살았지만 도리어 모함을 받고 감옥에 갇히는 일이 벌어집니다. 다니엘이 예언했던 이스라엘의 미래는 여전히 어두운 것이었습니다.

다니엘서는 다니엘과 세 친구가 겪었던 숱한 어려움은 물론이고 당시 바벨론 땅에서 신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통곡 소리가 묻어 있습니다. 고난과 고통. 이것은 이 땅의 교회와 성도가 비껴 갈 수 없는 것들입니다. 번영신앙에 취한 자들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구절을 지워 버리고 싶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존 파이퍼 목사님은 번영신학이 우상숭배라며 아주 직접적으로 번영신학을 비판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번영신학은 기독교의 변종이며 거기에 복음이 없습니다. 십자가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서가 복음서라고 불려도 괜찮을 또 다른 이유는 다니엘서가 복음의 공동체성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공동체적입니다. 우리가 개인으로 구원을 받지만 그렇다고 공동체가 무시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공동체를 훨씬 더 강조합니다. 오늘 복음에 대안 위협은 바로 개인주의입니다. 나홀로 신앙. 나만 구원받으면 된다는 생각, 나만 은혜받으면 상관없다는 생각이 교회를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브라이언 채플은 9장 '형제의 고통에 동참하다'에서 이 점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잘못을 정죄하고 책망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잘못을 범한 이들과 함께 아파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동체며 교회입니다. 이것 외에도 이 책 매 장의 설교마다 복음이 선포되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더 브라이언 채플이 참 좋은 설교자임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니엘서는 에스겔, 스가랴, 요한계시록과 함께 묵시문학에 속한 책입니다. 앞부분 다니엘의 행적과 관련된 부분은 스토리가 있으니 별로 어렵지 않지만 후반부로 넘어가면 사람을 괴롭힙니다.

하지만 브라이언 채플은 정말 단순하게 접근합니다. 본문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소개합니다. 하지만 그는 더 중요한 전체의 그림을 놓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시기와 인물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것보다 환란 중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보는 것을 훨씬 더 중요하게 취급합니다. 이처럼 그의 설교는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을 보여 주는 데 있습니다.

인자에 대한 탁월한 해석을 기대하면서 이 책을 들었지만 그 기대는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설교를 읽으면서 나의 마음은 복음으로, 하나님으로, 은혜로 채워졌습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설교다운 설교를 듣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의외로 율법적인 설교, 정죄하는 설교, 인간의 열심과 헌신을 요구하는 설교가 허다합니다. 이런 설교는 하나님의 은혜와 맞닿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죄책감에 들고 실의에 빠지며 낙심하게 됩니다.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바벨론과 같은 이 세상이 교회와 성도를 어떻게 위협하는지에 대한 언급이 부족한 것이 아쉽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여러분들에게 무엇보다도 복음을 더 깊이 깨닫게 해 줄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 복음의 은혜에 깊숙이 잠겨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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