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부채 1000조 원 시대. 박근혜 정부가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국민행복기금이 사실상 실패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7월 21일 희년함께·희망살림·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 주최로 열린 '2차 채권 소각 및 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선 정종성 교수는 국민행복기금이 '국민 행복'과는 거리가 먼 제도라며, 오히려 극빈층에게 10년간 채권 추심을 대행하는 제도로 전락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부는 늘어나는 가계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햇살론·미소금융 등과 같은 서민금융지원제도와 국민행복기금 등의 개인회생제도를 도입해 왔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계 빚은 매년 증가하고, 설상가상으로 부채 문제가 저소득 계층에서 중산층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박근혜 정부는 늘어나는 가계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행복기금을 출범시켰다. 하지만 당초 공약으로 밝힌 계획보다 예산과 대상자가 십 분의 일가량 축소되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국민행복기금 홈페이지 갈무리)

국민행복기금은 가계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4월 출범했다. 장기 채무불이행자의 채무를 감면해 주고 장기 분할상환을 지원하는 국민행복기금은, 신청자의 상환 능력이 부족한 경우 채무자 연령·연체 기간·소득 등을 고려해 채무액의 30~50%, 많게는 60~70%까지 채무를 감면하고 최장 10년까지 분할상환하도록 상환 기간을 조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출범 당시 20조 원의 재원을 조성해 약 320만 명을 구제하겠다는 공약과는 달리, 약 2조 원의 예산과 32만 명을 대상으로 설계해 공약 후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국민행복기금 박병원 이사장은 지난 3월 28일 출범 1주년 기념식에서 국민행복기금이 총 24만 9000천 명의 채무를 조정했다고 밝혔다.

국민행복기금에 참여했던 일부 채무불이행자들도 다시 연체를 하게 되면서 중도 이탈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5월 금융위원회의 '국민행복기금 추진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공적 자산관리회사 이관 채권을 제외하고 국민행복기금을 통해 채무 조정을 받은 국민 약 18만 명 중 1만 2000명(6.9%)은 또다시 채무불이행자가 됐다.

작년 말 기준, 국민행복기금 채무 조정 대상자 중 13만 5188명의 평균 연소득은 484만 1000원으로, 평균 월소득이 50만 원도 안 된다. 희망살림 제윤경 상임이사는 최저생계비조차 벌지 못하는 이들에게 정부는 빚을 갚으라고 야박한 요구를 한다고 지적했다.

서민들에게 낮은 이자로 대출을 해 대부 업체의 고금리 대출금을 갚거나, 생활·창업 등의 목적으로 사용하도록 만든 서민금융지원제도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힘든 제도"라며 미소금융(7032억 원)·햇살론(2조 2889억 원)·희망홀씨(2조 6715억 원)·새희망홀씨(3조 2407억 원)·바꿔드림론(1조 3183억 원)을 도입했다. 하지만 실제 효과는 없고 오히려 도입 초기보다 연체율이 3~5배 이상 늘어나 사실상 실패한 정책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 이명박 정부가 도입한 4대 서민금융지원제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연체율이 늘어나고 있다. 가계 부채 문제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것을 방증하는 셈이다. (자료 시각화 뉴스앤조이)

장기 채무자, 반희년적 제도의 희생자…금융·토지·노동 제도 등 복합적인 접근 필요

부채 문제에 대한 정부의 초점이 주로 채무자들이 부채 상환에 있다면, 시민 단체들은 빚을 양산하는 구조 자체에 손을 대야 한다고 주장한다. 희망살림 이현욱 공동대표는 약탈적 금융 사회를 막기 위해서는 금융기관이 소비자의 상환 능력을 근거로 대출하도록 당국이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공동대표는 일본에서는 연 소득 3분의 1 이상에 이르는 금액은 대출받지 못하게 되어 있다며 공정 대출법 등의 제정을 강조했다. 공정 대출법의 요체는 금융기관이 채권자의 부채 상환 능력을 넘어서는 대출을 할 수 없게 막는 것이다. 이 대표가 강조한 공정 대출법은 채권 추심법, 민사 집행법, 이자 제한법, 대부업법 등과 함께 가계 부채 해결을 위한 5대 법안으로 다뤄지고 있다.

▲ 한 대부업체가 전화로 채무자의 정보 세 가지(이름·전화번호·주민등록번호)만 말하면 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광고하고 있다. 희망살림 이현욱 공동대표는 가계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분별한 대출을 규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부업체 광고 동영상 갈무리)

희년함께 남기업 소장은 채무자들이 장기 채무자가 되는 원인에는 1차적으로 약탈적 금융제도에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반희년적 제도에 있다고 말했다. 남 소장은 채무불이행자들은 대부분 비토지 소유자이고 실업자이거나 저임금·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라며, 잘못된 노동 제도와 불의한 토지 제도가 이들을 약탈적 금융 제도로 내몬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정부는 금융 제도를 개혁하는 동시에, 토지 문제와 노동 문제(일자리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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