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희년 운동은 새로운 전환을 맞이하고 있다. 성서에서 나온 희년 정신을 오늘날 교회와 사회에 실현하기 위해 활동해 온 희년함께는 지금까지 토지 정의 문제에만 몰두해 왔었다. 그러던 중 올해를 기점으로 사회적 기업 희망살림과 함께 '부채 탕감 운동'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지난 4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지금까지 216명의 부채, 통산 14억여 원의 빚을 갚아 줬다. 

▲ 희년함께·희망살림 등은 부실 채권을 매입해 이를 소각하는 방법으로 '부채 탕감 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두 차례동안 매입한 채권들 중에서는 대다수 10년 이상 연체된 부실 채권들이었고, 이미 사망한 이의 채권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진 제공 희망살림)

희년함께가 '부채 탕감 운동'에 나선 까닭은 부채 탕감이 희년 정신에 부합하고 아울러 한국 사회가 앓고 있는 빚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7월 21일 희년함께·희망살림·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 주최로 열린 '2차 채권 소각 및 부채 탕감 토론회'에는 가계 부채의 심각성을 알리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희망살림 제윤경 상임이사는 가계 부채가 계속 증가하는데다가 저소득 계층에서 중산층으로 확산되고 있다며,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경고했다. 아울러, 장기간의 가계 부채는 가정을 해체시키고, 채무자를 죽음으로 내몰기까지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는 이러한 부채 문제에 주목해, 국내 가계 부채에 대한 전문 기관의 분석과 채무자들이 장기 연체로 빠지는 과정을 취재했다. 이에 대한 정부의 대책 방안, 교회의 역할을 두 꼭지의 연재 기사로 다뤄 볼 계획이다.

▲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에 등장하는 '강도(왼쪽)'는 채무자(오른쪽)의 돈을 뜯어 가며 살아간다. 빚을 갚지 못한 채무자에게는 상해를 입혀 보험금을 타내기도 한다. 이런 사례는 현실에서도 있을 법한 일이다. (영화 '피에타' 갈무리)

IMF, 카드 대란이 낳은 11년간의 신용불량자

11년 동안 장기 채무자였다가 올해 법원으로부터 파산 면책을 받은 이정식(가명) 씨는 몇 번이나 죽음을 생각했던 옛날을 떠올렸다. 1997년 이 씨는 당시 보유하고 있던 부동산과 주식을 IMF 사태로 모두 잃었다. 군대에서 받은 퇴직금으로 투자했던 것들이 한 순간에 날아가 버린 것이다.

1999년 김대중 정부는 내수 경제 활성화를 위해 신용카드 현금 서비스 한도 규제를 폐지했다. 당시 디스크 치료로 투병 중이던 이 씨는 생활비와 치료비를 모두 신용카드로 해결해 왔다. 소득이 없던 이 씨에게는 일명 '카드 돌려 막기'가 불가피했다. 누구나 쉽게 길거리에서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던 시절이었다. 세 개였던 카드는 곧 열 개로 늘어났다.

그러던 중, 2003년 카드 대란이 터졌다. 신용카드 회사들은 한도를 축소했고, 더 이상 돌려 막기를 할 수 없게 된 이 씨는 신용 불량자가 되었다. 신용회복위원회를 찾아가 7년간 매월 50만 원씩 상환하는 조건으로 개인 회생 절차를 밟기도 했지만, 디스크의 재발로 상환이 연체되자 개인 회생은 실효되고 부채는 더 늘어났다.

이 씨의 채무는 자산관리공사·상록수제일차유동화전문유한회사 등 금융기관 및 대부 업체에게로 넘겨졌다. 카드회사에서 잦은 연체로 부실채권이 된 이 씨의 채권을 제2금융권으로 매각한 것이다. 이들이 고용한 추심 업체는 번번이 이 씨를 찾아와 괴롭혔다. 상록수 채무 상환 독촉장·법적 절차 착수 예고장·강제집행 신청서 등의 채무 독촉 서류도 끊임없이 날라 왔다. 처음에는 하얀 종이로 오다가 나중에는 노란색·빨간색 등의 딱지들이 집 앞에 쌓였다. 이 씨는 사회 물정을 잘 모르는 가족들조차 불안과 공포에 떨게 됐다고 말했다.

▲ 대부 업체는 채무자들에게 경고하는 의미에서 있는 빨간색의 독촉 서류를 보낸다. 이정식(가명) 씨는 10년 동안 받은 경고장이 라면 박스로 세 박스나 된다고 말했다. ⓒ 뉴스앤조이 박요셉

채무불이행자 350만·총액 1000조 원 돌파·제2금융권 비중 증대

국내에는 이 씨와 같이 채무를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상당하다. 한국 금융 연구원은 2013년 8월 기준으로 국내 채무불이행자가 약 35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계 부채 총액도 매년 오르고 있는 실정이다. 국회 예산 정책처가 발표한 '소득 계층별 가계 부채 현황과 시사점'이란 보고서에 따르면, 가계 부채는 2000년대 들어 지속적으로 늘어나 2013년 말에는 1021조 3000억 원을, 2014년 1분기에는 3조 4000억 원이 증가해 1024조 700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부채 총액과 채무자가 늘어나는 것도 문제지만, 부채 구조의 질도 악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따르고 있다. 한국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전체 부채 규모에서 제2금융권 비중이 2006년 43%에서 2013년에는 53%로 약 10%가 상승했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제2금융권에 대해 의존도가 높아졌다는 것은 부채 구조가 금리 변동에 취약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회문제에 대해 정부는 햇살론, 바꿔드림론 등의 대출 상품과 개인 회생 지원제도인 국민행복기금을 마련했다. 올해 3월 국민행복기금은 약 25만 명의 채무 조정을 지원했다며 실적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희망살림 김준하 팀장은 채무자를 위한 금융소비자보호법 입법이나 금융기관·대부 업체의 대출 규제 강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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