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가난한 자의 곤궁한 처지를 이용해 부를 축적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 백성의 헌법과도 같은 레위기에서는 희년이 도래했을 때 토지 반환, 노예해방, 부채를 탕감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자본주의 체제는 가난한 이들의 곤궁한 처지를 이용해 부를 축적하는 것을 정당화시킬 뿐만 아니라 착취와 억압을 부추기는 반(反)성경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가계 부채 1000조 원이 넘는 시대, 극심한 채권 추심에 시달리며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제약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생계형 채무 불이행자들이 100만이 넘는 현실 속에서 성경이 명하는 바와 교회의 역할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연재 순서는 아래와 같습니다.

1. 부채, 오늘의 현실 : 빚 독촉의 지옥 - 제윤경 대표(희망살림 상임이사)
2. 부채 탕감의 성경적 근거 - 정종성 교수(백석대 신약학)
3. 부채 탕감에 대한 교부들의 관점 - 김유준 목사(연세대 겸임교수)
4. 교회는 빚 탕감의 실천 공동체 - 방인성 목사(희년함께 공동대표)
5. '희년'과 부채 탕감의 근원적 해법 - 남기업 소장(토지+자유연구소)

당신의 빚이 소각되었습니다

중세 시대 종교는 '돈이 돈을 낳는' 이자 수취를 신성모독으로 취급했다. 생명 창조는 오로지 신만이 할 수 있는 신성한 것임에도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돈을 창조하는 행위는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중세의 종교적 신념은 소위 대금업에 대해 천대시하거나 금기하는 문화를 만들었다. 특히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 주고 이자를 받는 행위에 대해서 죄악시했다. 이러한 전통이 오늘날 중세의 종교적 전통과 문화를 이어받은 유럽 사회에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유럽 선진국들은 법령으로 최고 이자율을 20% 이하로 규정하고 있고 채무자가 빚을 연체할 경우 우리의 경우처럼 강하게 추심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즉 채권자의 재산권보다 채무자의 인권을 더 중시하는 법률 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법적 최고 이자율이 일반적인 선진국의 2배에 가까운 34.9%를 허용하고 있다. 그나마도 66%에서 단계적으로 내려온 폭력적 금리 수준이다. TV만 키면 온통 돈 빌려 쓰라는 광고가 화면을 채우고 있고 마치 대출이 요술 행위를 하듯 현란하게 돈이 급한 서민의 무의식을 파고든다. 대출 한도가 사회적 지위인 양 인식되고 대출이 거절되면 상실감을 갖고 소외감을 느낀다.

이런 정서를 바탕으로 '금융 소외'라는 말도 안 되는 사회적 관념이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조차 영향을 미친다. 금융 소외 즉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 주지 않음으로 신용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금융이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 주어야 한다는 왜곡된 가치 판단을 형성한다. 이러한 왜곡된 가치 판단은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 주는 사람들에게 일정 이상의 수익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이상한 결론에 이르고 고금리 환경을 묵인하게 만들었다. 결국 우리나라는 가난한 사람에게 폭리로 돈을 빌려 주는 중세 시대 신성모독 행위가 금융 소외를 극복하기 위함이라는 이상한 명분하에 정당화되고 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이 고금리 대출을 갚을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카드론과 저축은행의 대출 들이 가난한 사람에게 20% 이상의 고금리로 뿌려졌지만 금융 소외가 극복되기는커녕 가난한 사람들을 채무 불이행자로 내몰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금융연구원의 2013년 채무 취약 계층 전수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채무 취약 계층은 350만 명에 이른다. 이들은 금융 채무 불이행자부터 공적 사적 채무 조정 절차를 밟고 있는 사람 및 장기 연체 소외자들이다. 특히 금융 채무 불이행 이력이 7년 이상 경과해 은행연합회의 연체 기록이 완전히 삭제된 사람만 30만 명이 넘는다.

금융연구원 분석에서 충격적이었던 점은 그중 5.8만 명이 사망으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금융연구원 전수조사 결론은 그들을 비롯해 채무 취약 계층 350만 명 중 114만 명이 고령, 저소득 등의 이유로 아예 채무 상환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환 능력이 불가능한 이들의 현실은 여전히 끔찍하다. 의도와 관계없이 60대 이상이거나 장애와 실직, 구직 실패 등으로 소득 창출 능력이 전무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상환이 불가능하지만 여전히 빚 독촉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 다른 이에게는 재테크?

금감원에 따르면 2012년 6월말 기준 금융회사들은 9조 1605억 원의 대출 채권을 대부업체에 팔아넘겼다. 90여만 명의 금융회사 채무자들이 하루아침에 대부업체로부터 빚 독촉에 내몰린 것이다. 매각 대금은 채권 값의 5.7%였다. 즉 1000만 원짜리 채권이라면 57만 원에 대부업체가 사들였다는 것. 그러나 대부업체에서 채무자에게 추심을 할 때는 57만 원 매입 대금을 밝히지 않는다. 당연히 원금과 연체이자 법정 비용까지 전부 계산해 회수할 수 있는 최대치를 추심할 것이다. 원금만 회수해도 940만 원 이상을 번다. 이런 수익 구조는 충분히 대부업체들의 탐욕을 자극할 만하다. 잘만 하면 소액으로 큰 수익이 가능하지 않는가.

그에 비해 채무자들은 대부업체의 강도 높은 추심을 견뎌야 한다. 대부업체의 추심원들은 대부분 추심 자격증을 소지하지 않은 개인 사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의 수입은 기본급은 거의 없고 대부분 실적에 의해 결정된다. 당연히 불법을 넘나드는 추심 행위가 만연해 질 수밖에 없다. 희망살림을 찾는 민원인들 대다수가 무시무시한 채권 추심 경험을 토로한다. 폭언과 막말은 기본이고 아이가 등교하는 시간에 방문해 독촉함으로써 부모로서 최소한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채무자들은 빚 독촉이 시작되면 외부와 단절하게 되고 극단적으로 자살에 이르기도 한다. 채무로 인한 상담을 받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죽고 싶다'는 고통을 하소연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들에게 추심을 하는 대부업체가 그 채권을 헐값에 매입했다는 것이다. 은행 빚이 하루아침에 대부업체 빚으로 둔갑한 것도 황당한데 그 채권의 권리를 겨우 1~5%를 가지고 샀다니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처음부터 은행이나 금융회사들이 채무자들에게 적극적인 채무 조정을 해 줄 수는 없던 걸까.

[부채 탕감 프로젝트 후원하기]
굿펀딩 : http://goo.gl/8et6NZ
계좌 이체 : 우리은행 1005-602-539056 (예금주 : 희년함께)

제윤경 / 희망살림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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