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공청회가 열렸다. 사건 발생(7월 11일) 보름 만이다. 소식을 듣고 갈까 말까 많이 망설였다. 가자니 뻔할 것 같고 가지 말자니 온갖 '카더라'에 혼란만 더해질 것 같았다. 누워서 미적미적 거리다 가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툴툴 털고 일어났다. 시간을 허비했더니 늦어 버렸다. 11시부터 시작하는데 십여 분 지각이다. 주차장도 모자라 주변 빈 곳이 차들로 빽빽했다. 다행히 내 차는 소형차라 틈 사이로 살짝 주차하면 된다. 급히 파킹하고 유치원으로 허겁지겁 걸어갔다. 입구에서 모자를 눌러 쓴 50대 남자분이 주차를 도와주고 계셨다. 유치원에 행사가 있을 때면 으레 보는 모습이다. 원아가 많기 때문이다.

유치원 출입문 앞에서 교사들이 안내를 하고 있다. 작년 담임교사와 올해 담임교사, 그리고 차량 선생님까지 차례로 인사를 했다. 모두 갓 스물을 넘긴 듯 야리야리하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던지 살이 빠져 더 여려 보인다. 내 마음도 무겁고 안타까웠다.

"힘드시죠?"
"아니에요, 저희가 잘못한 일인 걸요, 어제 못 나와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얼마나 힘들었으면 아팠겠어요, 얼른 정상화됐으면 좋겠어요, 휴~."

손을 잡는데 손이 참 작았다. 이분들도 누군가의 소중한 딸일 텐데, 그 부모들 속이 어떨까. 무엇이 이들을 죄인으로 만들었는지 씁쓸하다.

강당으로 들어가니 대표가 '요구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강당 안이 학부모들로 가득 찼다. 작지 않은 강당인데 엄청난 수다. 반별로 출석 체크 하게끔 A4 종이가 테이블에 펼쳐져 있었다. 딸 이름과 내 이름을 적고 커피를 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끝날 즈음 기재된 인원을 세어 보니 410여 명 된다고 한다. 아이들 수도 만만찮아 모두 한데 모아 사랑반에서 교사들이 돌보고 있었다. 대표의 설명이 끝나고 이사장과 원장, 부원장 그리고 상담실장(처음 상담 갔을 때 만났던 분인데 직책을 모르겠다. 임의로 정하겠다) 네 분이 나와서 90도로 인사를 했다. 이사장이 마이크를 잡고 사죄의 말을 전했다. 두 번이나 거듭 사과를 하고 다시 90도로 인사한다. 그리고 '요구안' 1항부터 읽었다. 강당 끝에 앉은 어느 어머니가 안 들린다고 외쳤다. 주위가 술렁인다. "크게 해 주세요!" 지금 학부모들은 자제가 안 될 정도로 극한 분노에 차 있다.

'요구안' 하나하나 수용하고 검토하겠다는 것으로 이사장의 발언이 끝났다. 질문을 받는다고 하자 여기저기서 손을 드는 사람들이 있다. 역시 가장 큰 문제는 CCTV 건이다. 학부모 측은 무조건 가정에서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해 달라는 거다. 그러나 원 측은 교사의 인권 문제로 조심스러워 했다. 대표단과 원이 만나 의논하고 또한 법리 문제도 따져 신중히 결정하겠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한다." 누군가의 나지막한 소리가 들렸다.

각자 입장에서 보면 모두 타당하다. 그러나 학부모가 왜 이걸 문제로 삼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지금껏 원에 맡기고 믿었는데 아이들을 학대한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조사를 할수록 피해 아이 수는 늘었고 가해 교사 수도 늘었다. 피해 아동 15명, 가해 교사 3명으로 현재 가장 어린 5세반에서만 이렇게 나온 실정이다. 앞으로 조사에 따라 변동되겠지만 적지 않은 수다. 그렇기 때문에 원을 더 이상 믿지 못하는 거다. 교사의 인권 이전에 어린 아이들의 인권이 먼저라는 말이다. 반면 원의 입장은 매일 감시하고 지켜본다고 생각하면 그 스트레스도 이만저만 아닐 것이다. 그러다 보면 반 운영에 나쁜 영향을 끼칠 우려도 무시 못 한다.

학부모 측은 이 건에 대해 분명한 답을 얻고자 했다. 내가 앉은 자리 앞뒤 좌우로 엄마들의 날카로운 비난이 쏟아졌다. 어떤 말도 어떤 이유도 듣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보인다. 이것이 관철되지 않으면 다른 조항은 아무 의미 없다고 한목소리로 외친다. 법 조항을 찾아온 사람, 서울에서는 이미 시행되고 있는 유치원도 있는데 왜 하지 못하냐 반박하는 사람. CCTV 수용만이 유치원이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라 충고하는 사람도 있다.

학부모들의 원성에 시간을 잠시 달라고 이사장이 요청했다. 옆으로 들어가는 네 분 표정이 꼭 죽을 죄인 같다. 상담실장은 조용히 눈물을 훔친다. 이게 무슨 짓인지. 이 답답한 상황에 한숨만 나온다. 네 분이 의논하러 들어간 사이에 대표 중 한 분의 발언이 있었다. 가해 선생의 맞고소를 두고 미안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는 요지다. 또다시 주변이 술렁인다.

이사장과 다른 분들이 의논을 마쳤는지 다시 나왔다. 학부모 측 백 프로 찬성, 교사 측 백 프로 찬성 시 설치하겠다고 한다. 진전이 있다. 좋은 방향으로 유치원이 정상화될 것 같다. 학부모 측과 원 측 대표들이 만나 조급하지 않게 하나하나 조율해 나가면 되겠다. 진행 내내 우왕좌왕 들쑥날쑥 요동치기는 했으나 결국 원이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희망을 본다. 이사장의 겸손한 모습이 학보모 측에 전달됐으면 좋겠다. 공청회 내내 차분한 톤으로 허리를 조아리며 미안해했다.

남아 있는 과제도 있다. 백 프로 찬성, 가능성이 희박하다. '요구안' 찬반 투표에서 이미 보여 줬다. 반대가 7표가 나왔다. 이곳저곳에서 "누가 반대했노, 누고"가 터졌다. 학부모 측은 반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반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건강한 토론은 기대하기 어렵다. 생각이 제각각인데 모두 찬성이 나온다면 오히려 이상한 눈으로 봐야 한다. 반대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반대에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반대의 이유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한데 그게 아쉽다. 더 나아가 꼭 찬성을 받아내야 한다면 어떻게 설득할지 고민한 후 접근해야 한다. 조급하지 않고 신뢰할 수 있는 모습으로 말이다.

대표도 반대는 생각지 못한 듯하다. CCTV 설치에 학부모 백 프로 찬성을 언급한 것을 보면 말이다.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다. 진행을 지켜보며 대표단이 몇 명이고 누구인지 궁금했다. 투표용지를 건네받는 거며 건네주는 거며 누구한테 주란 말인가? 바구니 든 사람한테 주면 된다고? 눈치껏 하면 된다지만 질서가 없어 보인다. 처음부터 어딘가에 딱 막히는 기분이다. 그래서 지나가는 대표한테 손들어 물었다. "대표가 어느 분인지 모르겠어요. 앞에 나가서 소개를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끝날 때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이라 그렇겠거니 생각도 해 보지만 그럼에도 뭔가 목에 딱 걸려 내려가지 않는 찜찜함은 어쩔 도리가 없다.

맞고소 문제도 그렇다. 사건이 터지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아동은 학대당했고 교사는 폭행당했다. 있는 사실이다. 정도의 차이는 법으로 따지면 된다. 정상참작이라는 것도 있지 않은가. 있는 일 없는 것처럼 덮을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더 중요한 문제에 매달렸으면 좋겠다. 이 일은 어린아이가 학대를 당한 큰 사건이다. 아이와 부모가 어떻게 치료받을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유치원으로 상담사가 직접 와서 치료하면 더 좋겠다. 아픈 사람더러 직접 찾아가라고 하면 너무 무책임하지 않은가. CCTV 문제는 기간을 정하는 것도 방법이겠다. 일정 기간 안정이 된 후 교사들 의견도 들어주는 유연함을 바라본다.

교사들과 이사장 외 네 분의 고개 숙인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개인 개인 만나 보면 나쁜 사람 하나 없다. 모두 악보다 선한 모습을 더 많이 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개인이 시스템 안에 들어가 버리면 악의 큰 덩어리가 되어 선을 뭉개 버리는 것을 보게 된다. 그 시스템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이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판이하게 달라진다. 대형화될수록 책임 있는 견제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유치원을 견제하는 운영위원회라는 장치를 별도로 마련했다. 그러나 별 구실을 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 지경까지 이른걸 보면.

어디든 대형화된 것들은 문제가 많다. 권력이 그렇듯 무섭다. 누군가 조절해 주지 않으면 상식을 벗어난 짓을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 회사 규칙이 있고 노조가 있는 거다. 건강한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건강한 노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노조 없이 규제 없이 조절 없이 건강하게 크는 집단은 찾아보기 힘들다. 일당 독재 아니고서는 어느 곳이든 권력을 견제할 장치를 둔다. 그렇지 않을 때 벌어지는 사태가 크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으면 재수 없는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길 건 뻔하다. 권력의 책임 회피는 안 봐도 비디오다. 사태의 근본 문제가 묻혀 버릴 위험 소지가 있다. 문제가 덮어지면 더 큰 문제를 양산한다는 건 초등학생도 배우는 상식이다.

대형 유치원 사태를 지켜보며 대형 교회가 오버랩 된다. 교회는 아무나 접근하지 못하는 철옹성이다. 대형 교회 내부 시스템은 누가 봐도 문제가 많은데 성경 구절을 방패삼아 손도 대지 못하게 한다. 반대를 수용하지 못하는 교회. 전원 찬성을 자랑삼아 떠드는 교회. 개혁을 두려워하는 교회. 목사 비리는 절대 함구하는 교회. 일인 독재 목사가 좌지우지하는 교회. 목사가 하는 말은 모두 옳다 세뇌하는 교회. 대형 교회 집권층은 시스템을 바꾸기 싫다. 지금 이대로 충분히 편하니까. 아랫것들 시키면 순종하니까. 전도하라면 하고 동원하라면 하고 뭐든 시키는 대로 참 잘 따라 준다. 그러니 바깥에서 아무리 개혁하라 떠들고 난리쳐도 끄떡도 하지 않는다. 조만간 부산 모 유치원 꼴 나겠다. 그런데 나더라도 학부모들처럼 힘을 합쳐 따지는 무리가 없을 것 같아 불길하다.

내가 다녔던 대형 교회는 남자들만 모였던 새벽 기도회가 있다. 교회 전체 목사들과 새벽 기도 나온 남자들만 모여 특별한 아침식사 자리를 마련했었다. 일명 '담임목사와의 만남'의 시간이었다. 남편이 교회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처음이라 궁금하기도 어색하기도 했다. 담임목사, 부목사, 전도사 등 교역자들도 많았고 남자 성도들도 많았다. 자리를 잡고 앉는데 모양새가 이상했다. 제일 상석에 담임목사가 근엄하게 앉았고 그 좌우 쪽으로 부목사들이 쭉 앉았다. 그 다음 성도들이 앉았다. 권사님, 집사님들이 새벽같이 식사 수발을 든다고 정신이 없었다. 식사와 과일이 나왔다. 모두 평등하다고 입으로 말하는 데 담임 자리는 상석으로 음식은 성도와 다른, 더 좋은 음식으로 구별되었다. 남편은 먹으면서 뭔가 이상하다 생각했다고 한다. 나도 썩 좋은 모습이 아니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지금까지 쭈욱 이어지고 있다. 언젠가 지나가는 말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슬쩍 흘린 적이 있었다. 돌아오는 답은 역시 "목사님들은 잘 섬겨야 한다"는 말로 끝. 죽을 때까지 강자는 대접받으며 죽고, 약자는 뒷수발하다가 죽어 나간다.

오래전부터 드는 생각이 있다. 어차피 교회는 교회답지 못하게 변질된 지 오래다. '주식회사 교회'라는 말도 생긴 판에. 그렇다면 좀 더 현실적인 생각을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대형화를 추구하는 교회라면 교회 내부에 견제 장치를 만들어 성도들이 불신하는 일을 줄여 나가야 한다. 대형 교회 목사의 권력을 견제하고 부목사들의 방관하며 따르는 모습도 비판해야 한다. 상식을 벗어나는 말에 생각 없이 순종하는 성도들 또한 변화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반드시 견제 장치를 두어 비판하고 토론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교회가 이대로 좋다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문제의 유치원 이사장만도 못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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