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톨릭 평신도 신학자 김근수 씨가 새 책 <교황과 나: 개혁가 프란치스코와 한국>를 펴냈다. 지난해 3월 즉위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청빈과 정의의 아이콘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김 씨는 개혁적인 교황의 등장과 관련해 마치 우리나라 대통령이 박정희에서 노무현으로 바뀐 것과 같다고 말했다. 8월 교황의 방한은 가톨릭뿐만 아니라 개신교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봤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가톨릭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이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사람들은 교황이 무슨 자동차를 타고, 어떤 행사에 참여하는지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높다. 관련 기사가 쏟아지고 있고, 지난 두 달간 교황과 관련된 책만 20여 권이 넘게 나왔다. 사회적인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것과 달리, 개신교는 교황의 방한이 달갑지만은 않다. 일부 목회자들은 교세가 위축되지 않을까 염려한다. (관련 기사 : 교황은 평화 선포, 개신교는 교세 걱정)

가톨릭 평신도 신학자 김근수는 교황 방한에 개신교 목회자들이 부담 가질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교황은 추기경 시절 개신교 지도자들과 친분을 쌓는 등 개신교에 우호적이고, 같은 예수를 믿는 만큼 교황을 개신교의 경쟁 대상으로 생각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교황은 예수의 정신과 행동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교황의 영향력이 같은 예수를 믿는 개신교에도 상당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개신교는 교황방한에서 혜택을 볼 것입니다. 개신교와 가톨릭은 경쟁자가 아니고 형제입니다."

▲ 이 책은 교황의 탄생, 로마 가톨릭의 역사, 한국 가톨릭을 향한 비판적 메시지 등을 담고 있다. 

연세대 철학과와 광주가톨릭대학을 나온 김 씨는 독일 마인츠대학에서 신약성경을, 남미 엘살바도르 UCA대학에서 해방신학을 전공했다. 해방신학 기독론의 권위자인 혼 소브린노(Jon Sobrino)에게 공부한 아시아 최초의 유일한 직제자다. 그는 마가복음 해설서 <슬픈 예수>, 마태복음 해설서 <행동하는 예수>에 이어 <교황과 나>를 최근 펴냈다. 7월 24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김 씨를 만나 가톨릭 신학자가 바라보는 교황 방한이 개신교에 미칠 영향과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교회 개혁과 사회 개혁을 외치는 교황을 개신교는 두려워하지 말고, 교황 방한을 기독교가 선교와 교회 개혁을 이뤄 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김 씨는 말한다. 특히 그가 지적하는 한국 가톨릭의 문제는 한국 개신교와도 무관하지 않았다.

교황, "교회는 정의 위한 투쟁에서 비켜서면 안 돼"

<교황과 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된 가톨릭의 역사적 배경과 의미를 제시하고, 20세기 가톨릭교회와 신학의 흐름을 소개하고 있다. 김 씨는 가톨릭의 중요한 교리, 역사, 문제를 공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책이라고 말했다. 책 제목에서 '나'는 독자를 의미하는데, 김 씨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교황과 일대일로 마주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지난해 3월 베네딕토 16세에 이어 교황에 오른 프란치스코는 개혁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출세를 위한 필수 코스인 로마 유학도 하지 않았다. 예수회 출신으로 사제 시절 빈민 사목에 앞장섰다. 예수회는 가톨릭 내에서 적극적인 선교 활동을 하는 수도회다. 프란치스코는 교회 안팎을 가리지 않고 쓴소리를 해 왔다. "아르헨티나 사회는 돈, 제국주의라는 악마뿐 아니라 마약, 인신매매, 부패와 너무 익숙해져 있다", "미혼모가 낳은 자녀에게 세례를 주지 않는 신부는 위선자다."

지난 37년 동안 보수적인 두 교황이 이끈 가톨릭은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 사회, 경제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는 못했다. 가난과 싸우며 가난한 사람을 편드는 해방신학은 가톨릭교회에서 크게 배척당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하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프란치스코는 지난해 회칙 <복음의 기쁨>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교회는 정의를 위한 투쟁에서 비켜서 있을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됩니다. 저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바랍니다", "교회에게 가난한 이들을 위한 선택은 문화·사회·정치·철학이라는 범주 이전에 신학의 범주입니다."

김근수 씨는 교황 방한의 의미를 우선 가난에서 찾았다. 교황의 메시지처럼 교회는 가난해야 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했다. 예수가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다. "예수는 가난한 자들의 편에 섰고, 그들을 위해 죽고 부활했습니다."

▲ 교황의 방한에 거는 기대 만큼 걱정도 크다. 김 씨는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교황의 이미지가 윤리 선생님이나 도덕을 강조하는 할아버지로 축소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세월호 유가족은 정치‧사회적 빈자

<교황과 나>는 로마 가톨릭과 교황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주제는 '가난'에 가깝다. 가난은 물질적인 빈곤만을 말하지 않는다. 정치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이들도 빈자에 해당한다. 가난한 자들을 위해 교회가 함께 싸워야 한다고 김 씨는 말한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는데, 한국교회는 이들의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교회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가톨릭교회는 교황 방한에만 열중하고 있다면서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교황이 던진 메시지가 방한 일정과 일치하지 않을까 염려하기도 했다. (편집자 주 - 최근 한국 가톨릭 측은 교황이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는 것으로 일정을 조율했다.)

김근수 씨는 이렇게 말했다. "세월호 참사는 국가 조직의 맨 얼굴이 노출된 사건입니다. 국민은 지난 몇 달간 충격적인 현장을 보았습니다. 사고의 진상을 밝힐 수 있도록 한국 개신교와 가톨릭이 함께 힘써야 합니다. 침묵으로 대응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갈수록 부유해지는 가톨릭은 위기"…개신교는?

한국 가톨릭은 숫자적으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그의 심기는 편하지만은 않다. 예수의 가르침과 달리 한국 가톨릭교회는 갈수록 부유해지고, 일부 성직자들은 세속화 풍조에 젖어 안락한 생활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가톨릭 위기 극복 방안으로 십일조 운동을 제안했다. 교회 재산을 현재 보유 재산의 1/10로 줄이고, 줄인 부분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 주자는 것이다. 그리고 신자보다 교회 밖에 있는 가난한 사람을 위해 일을 하라고 주문했다. 교회 재산을 1/10로 줄이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개신교 목회자의 경우 가족들도 돌봐야 한다는 기자의 말에, "가족 부양을 위해 목회를 하는 사람은 종교 사기꾼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개신교, 배타적에서 포용적으로 거듭날 기회

일부 보수 개신교인들은 가톨릭은 개신교와 교리가 다르고, 가톨릭은 이단에 가깝다며 반대한다. 특히 마리아를 신격화해 삼위일체에 준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는 그런 설명은 가톨릭의 가르침과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자명한 말 같지만, 오늘날 교회는 가난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김 씨의 생각이다. 그는 부자 교회를 향해 십일조 운동을 펼치자고 제안했다. 1/10의 재산만 남겨 놓고, 나머지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쓰자는 것이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가톨릭과 개신교의 교리가 다르다고요? 아닙니다. 거의 같습니다. 유일신, 삼위일체, 은총 등 중요한 교리는 같습니다. 조직과 문화, 분위기, 경제적인 제도 등에서 조금 다를 뿐입니다. 교리는 거의 같고 조직이 다를 뿐입니다."

"가톨릭교회는 마리아 숭배를 하지 않고, 그렇게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마리아는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성도 중 하나입니다. 마리아는 우리와 함께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는 성도일 뿐입니다. 우리가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마리아와 함께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대상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그는 교황 방한이 가톨릭만의 행사가 아니라 개신교도 함께하는 축제가 되기를 바랐다. "제가 만일 개신교 목사라면 '우리 형제, 교황 프란치스코의 방한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을 교회에 걸겠습니다. 개신교 단체가 '교황 방한 환영 개신교 연합 예배'나 환영 성명도 발표하길 기대합니다. 그러면 한국 사회에서 배타적으로 평가받는 개신교가 포용하는 종교로 국민들에게 인식이 바뀔 것입니다. 이번이 좋은 기회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처럼 가난한 사람을 확실히 편드는 지도자는 지금 보기 드물다. 그는 '가난한 교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는 교회'라는 교황의 메시지는 우리 시대에 모든 종교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라고 강조한다. 개신교는 교황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김 씨는 "가난한 교회, 가난한 사람을 편드는 교회" 두 가지를 한국 개신교가 교황에게서 진지하게 배우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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