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기다리고도 또 기다려!"

한 세월호 희생자의 아버지가 소리쳤다. 경찰은 책임자가 오고 있으니 기다리라고 해 놓고 벌써 몇 십 분째 기별이 없었다. 분노한 유가족들은 국회 본관에 들어가 책임자를 직접 만나겠다고 뜻을 모았다. 정문 앞에서 연좌하던 가족들이 하나둘 일어났다. 본관에 들어가려 하자 경찰들이 막아섰다. 유가족들과 경찰들은 격하게 충돌했다. 문을 열라고 하는 유가족들의 외침과 아무 말 없이 막아서는 경찰들이 서로 밀고 밀쳤다.

▲ 단원고 2학년 생존자 학생 40여 명이 만 하루를 걸어 7월 16일 국회에 도착했다. 학생들은 특별법을 제정해 친구들의 억울한 죽음을 꼭 밝혀 달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학생들의 도보 코스에 시민들이 삼삼오오 나와 현수막과 손팻말을 들고 응원했다. 시민 100여 명은 학생들의 도보 순례에 끝까지 함께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세월호 침몰 92일, 유가족들 국회 노숙 농성 5일, 단식 3일째인 7월 16일, 국회가 유가족들이 요구하는 특별법 제정을 받아들이지 않아 우울한 날이 계속됐다. 그래도 이날은 단원고등학교 2학년 생존자 학생 40여 명이 국회에서 농성 중인 유가족들을 찾아온 날이었다. 학생들은 전날 학교를 출발해, 만 하루 만에 국회까지 걸어왔다. 시민들 100여 명이 자발적으로 학생들을 뒤따랐다.

문제는 학생들이 무사히 국회 앞에 도착하고 돌아간 다음에 생겼다. 학생들에게 편지를 건네받은 일부 유가족이 국회 안으로 들어오려고 할 때 경찰이 막았다. 유가족들이 왜 막느냐고 항의했지만 경찰은 묵묵부답으로 정문을 막았다. 실랑이를 벌이다가 유가족 몇몇이 경찰과의 몸싸움으로 넘어지고 부상을 입었다. 희생자 어머니 한 명과 단식 중인 아버지 한 명이 구급차에 실려 갔다. 안 그래도 신경이 곤두서 있는 유가족들은 정문 앞에 앉아 유가족을 막으라고 지시한 사람이 와서 공식적으로 사과하기 전까지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다고 했다.

▲ 생존자 학생들에게 편지를 건네받고 국회로 다시 돌아오는 유가족 몇 명을 경찰이 막아섰다. 실랑이 끝에 단식 중인 유가족이 다쳐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유가족들은 책임자가 나와서 사과할 때까지 정문 앞을 떠나지 않겠다며 연좌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하지만 책임자는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 이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유족들이 정문에서 일어나 본회의장에 진입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결국 국회 사무총장 권한대행과 영등포경찰서장, 국회 경비대장 등이 본관 앞으로 나와 사과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사과를 받는 데까지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생존자 학생들의 방문으로 위안을 얻은 유가족들의 마음은 다시 한 번 갈기갈기 찢어졌다.

▲ 몇 십 분째 책임자가 나오지 않자, 한 아버지가 그렇게 기다려 놓고 또 기다리란 말이냐며 자리를 박차고 본관으로 향했다. 정문에 앉아 있던 유가족들이 뒤를 따랐다. 본관 앞에서 경찰은 유가족들을 막아 섰고 양측은 격하게 충돌했다. 결국 책임자들이 나와 사과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유가족들은 정부의 태도에 다시 한 번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법치국가라서 특별법 제정 반대?

유가족들은 자식을 잃은 것도 모자라 정부와 경찰들로 인해 두 번 세 번 상처를 받고 있다. 본관 앞에서 이런 사단이 벌어지는 가운데, 국회 정문 앞에서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중단하라'는 생소한 피켓이 등장했다. 피켓 아래에는 '예수재단'이라고 적혀 있었다. 대표 임요한 목사는 피켓을 세워 놓고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성명서를 나눠 주면서,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 예수재단 임요한 목사는 이날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중단하라는 피켓을 들고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임 목사는 대한민국이 법치국가라면서 법안을 졸속으로 처리하면 안 된다는 뜻의 성명서를 행인들에게 배포했다. 임 목사와 기자가 국회 앞 도로변에서 대화하는 모습. ⓒ뉴스앤조이 장성현

성명서에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은 대한민국 국회의 무능과 무원칙을 상징하는 최악의 입법"이라고 나와 있었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지 3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온 나라와 거리가 추모 물결이라며 "세월호 국가인지 착각이 들 정도"라고 표현했다. 촛불 집회를 통해 박근혜 정부 타도를 주장하는 사태로 발전되어 정치적으로 악용된 부분도 분명히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또 국가에게 보상·배상 책임이 있다는 것과 희생자들을 의사자로 지정한다는 점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고 적었다. 4·16재단 설립도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예수재단은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원칙이 무너지면 국가가 무너진다. (세월호 특별법은) 헌법의 평등의 원칙과 형평성에 매우 심각한 문제의 소지가 있는 법률이 될 것이다. 냉정하게 접근하면 세월호 사건은 선박 사고다"라고 했다. 현재 350만 명이 특별법 제정에 서명했다고 하지만,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입법에 반대하고 있음을 국회의원들이 알아야 한다고 예수재단은 경고했다.

▲ 임요한 목사가 배포하는 성명서에는 유가족들에 대한 보상 부분이 법의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적혀 있었다. 임 목사에게 유가족들이 만든 법안과 여야 의원들이 만든 법안을 다 읽어 보았느냐고 묻자, 그는 "골자만 확인했다"고 답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예수'의 이름을 내걸고 유가족들의 단 한 가지 바람인 특별법 제정을 반대하는 이유를 물었다. 임요한 목사는 자신도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조의를 표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특별법을 이렇게 졸속으로 처리하면 안 된다는 의미에서 나오게 됐다고 답했다. 유가족들이 만든 특별법안은 대한변호사협회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법률가 단체가 유족들과 국민들의 뜻을 반영해 만든 것이라고 설명하니, 임 목사는 "변호사 단체도 결국 하나의 이익단체가 아니냐"며 좀 더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유가족들의 배후 세력이 의심된다고 했다.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해 현 정권을 어떻게 해 보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성명서에 언급한 국가의 보·배상이나 희생자 의사자 지정 등은 유가족들이 아닌 여야 의원들의 법안에서 나온 내용이다. 이를 알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임요한 목사는 "누구에게서 나왔든 형평성에 어긋나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유가족들의 법안과 새누리당의 법안, 새정치민주연합의 법안을 비교해 보았느냐는 질문에는, "(법안의) 골자만 확인했다"고 답했다.

내용은 차치하고서라도 슬픔을 당한 사람들과 함께 슬퍼하고 그들의 요구를 들어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으니, 임 목사는 동성애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성 소수자들의 인권도 중요한 문제일 수 있지만 "진리, 옳은 것은 선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한 기독교 전체의 이미지 실추도 감수해야 한다고 했다. 임 목사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찬성도 할 수 있고 반대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유가족들의 생각과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공격하면 안 된다고 했다.

1인 시위하는 임요한 목사 주변에는 유가족들이 원하는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시민들이 있었다. 이들에게 임 목사의 성명서를 보여 줬다. 한 시민은 "기본적인 전제에 모순이 있다. 우리나라가 법치국가이기 때문에 특별법을 제정하자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은 "보·배상과 의사자 지정은 유가족들이 원하는 게 아니다. (임 목사가) 법안 내용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인 것 같다"고 말했다.

세월호 침몰이 단순 선박 사고?

이날 저녁에는 천주교·원불교·개신교 3대 종단 연합 촛불 기도회가 열렸다. 각 종교의 예식이 30분씩 진행됐다. 종교는 달라도 뜻은 같았다. 각 종단 지도자들은 세월호 사고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가족들이 노숙과 단식을 하는 이런 상황을 하루빨리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 이날 저녁 국회 앞에서는 천주교·원불교·개신교 3대 종단 연합 촛불 기도회가 진행됐다. 하루빨리 특별법이 제정돼, 유가족들이 노숙하고 단식하는 상황이 끝나야 한다고 종교 지도자들은 외쳤다. 이들은 유가족들과의 지속적인 연대를 약속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기도회 마지막에는 단원고등학교 2학년 5반 고 박성호 군의 누나 박보나 양이 유가족들을 대표해서 발언했다. 박보나 양은 유가족 대책위원회에서, 인터넷에 올라온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비방하는 글을 찾아내 법적 조치를 취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는 세월호 참사가 단순한 선박 사고가 아님을 강조했다. 종교인들에게는, 기도만 할 때는 지난 것 같다며 함께 행동해 주기를 바랐다.

"어떤 분이 저에게 페이스북 메시지로 '도대체 왜 나와서 시위를 하느냐'고, '수학여행 가다가 사고 난 아이들인데, 단순히 해상 교통사고일 뿐인데 왜 나와서 시위를 하느냐'고 묻습니다. 우리 아이들과 모든 희생자 분들은 단순히 해상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여러분 모두 아시겠지만 세월호는 그냥 침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모든 곳에서 이것을 왜곡하고 은폐하려고 합니다. (중략) 우리 아이들이 그냥 해상 교통사고로 죽었다면 절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특별법은 절대 보상이 아닙니다. 더 이상 또 다른 곳에서 우리가 질렀던 비명과 오열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알기에, 절대 다른 누군가가 그런 소리를 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이렇게 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기도만 하고 있을 때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함께 행동해 주시고 거리로 나와 주십시오. 제발… 생존자 아이들과 유가족들이, 그리고 팽목항에 있는 분들께서… 다시 웃고 제대로 슬퍼하고 제대로 치유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함께 행동해 주시길 바랍니다."

오는 19일 토요일 오후 4시 서울광장에서 '4·16 특별법 제정 촉구 범국민대회'가 열린다. 이날은 특별히, 유가족들의 요구가 담긴 특별법이 제정되기를 바라는 국민들이 전국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로 집결한다. 촛불교회 최헌국 목사는 "이 비상한 시기에 비상한 관심을 보여 달라"며 그리스도인들의 참여를 당부했다. 

▲ 촛불교회 최헌국 목사는 오는 19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리는 '4·16 특별법 제정 촉구 범국민대회'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참석해 달라고 요청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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