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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내 경험은 천국에서밖엔 얘기할 수 없어요"
[연재] 전병욱 목사를 따르던 삼일교회 여후배가 교회를 떠나며 남긴 말
  • 권대원 (newsnjoy@newsnjoy.or.kr)
  • 승인 2014.07.08 00:15

   
▲ 전병욱목사성범죄기독교공동대책위원회가 지난해 11월 임시노회가 열린 왕성교회 앞에서 전병욱 목사 치리 촉구 기자회견을 했던 모습.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여자 후배가 있었다. 내가 간사를 할 때 팀원이었고, 팀이 바뀐 후에도 계속 친하게 지낸 여자 후배였다. 예술대 출신의 친구였고, 당시 담임목사였던 전병욱 목사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을 갖고 그의 설교를 반복해서 듣고 또 들을 정도로 광팬이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나랑 친한 형과 같이 있을 때 물어봤다.

"오빠, 어떻게 하면 담임목사님과 친하게 지낼 수 있어요?"

나와 그 형은 청년들 귀에 잘 들리는 설교를 탁월하게 한다는 면에서는 당시 담임목사였던 전병욱 목사를 존경했지만, 인격적으로 그리 존경할 만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가까이서 친하게 지내면 도리어 그의 인간적 약점과 허물 때문에 도리어 시험에 들까 봐 가급적 유명한 목사님들과는 친하게 지내는 것이 좋지 않다고 넌지시 말렸다.

그래도 이 후배는 포기하지 않고 선교를 다녀온 뒤 결국 전병욱 목사와 꽤 친해져서 가깝게 지냈다. 그 뒤로는 팀도 달라져서 자주 연락할 기회가 없었는데, 1년쯤 지나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자기는 교회를 떠날 생각인데 마지막으로 친한 오빠들이랑 식사나 같이 하자고.

교회를 너무 사랑하고 교회 친구들도 너무 좋아했던 친구라 교회를 떠난다는 이야기에 많이 놀랐지만, 식사 자리에 나온 그 친구는 교회를 떠나는 이유에 대해서 물어봐도 대답을 피하고 명확하게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그냥 개인 사정이 있어서 집 근처 교회로 옮긴다는 이야기만 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그 친구가 담임목사와 꽤 친하게 지냈던 기억이 나서 이렇게 물어봤다.

"너… 혹시, 담임목사님이랑 무슨 안 좋은 일 있었니?"

난 이 질문을 심각한 의미로 물어본 게 아니라 그저 감정적으로 마음 상할 일이 있었겠거니 하는 차원에서 물어본 거였다. 그런데 그때 그 친구의 반응이 너무 뜻밖이었다. 갑자기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서 우리 앞에서 우는 것이었다. 한참을 운 다음 겨우 감정을 추스려서 이렇게 말했다.

"오빠… 내가 겪은 일은 죽은 후에 천국에 가서밖에는 이야기할 수 없어요…."

그러고는 다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때 나는 이 아이가 겪었을 일이 내가 상상하고 싶지 않은 불길한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했다. 그 아이와 헤어진 후 그 자리에 함께했던 형과 나는 저 아이가 겪은 일이 '혹시…' 하며 불길한 상상을 해 봤으나 그 무엇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더 상세하게 알고 싶지도 않았다. 우리 스스로도 우리의 불길한 상상이 현실이 되는 걸 바라지 않았던 것 같다. 진실을 알게 되면 너무 감당이 안 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 일은 잊혀졌다.

곧이어 터진 전병욱 목사 성추행 사건

그리고 3년이 지난 후 전병욱 목사의 '성추행 범죄'가 드러났다. 처음 한동안은 애정 어린 가벼운 접촉인데 성추행으로 과장한 것이라느니, 이단 출신의 여자가 꾀어서 험담을 하는 것이라느니, 여러 가지 억측과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교인들 사이에 돌았다. 그 후 전병욱 목사가 사정이 있어 안식을 가진다고 했다가 갑자기 사임하였다.

교인들은 너무 충격이 컸지만, 책임지고 사건의 실체를 밝혀야 하는 당회와 교회 측에서는 교인들에게 아무런 설명도 보고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새로운 담임목사의 청빙 과정도 순탄치 않게 되면서 교회 내부적으로 몇몇 뜻있는 교인들이 사건의 실체를 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교회 당회 차원에서 분명히 교인들에게 전병욱 목사 성범죄의 실체를 밝힐 것과 13억이 넘는 돈을 교인들과 아무런 상의 없이 주게 된 과정의 공개를 요구한 '공동 요청문'을 67명의 교인 이름으로 교회 게시판에 올렸다.

간사를 오래한 탓도 있고 오지랖이 넓은 탓도 있어서 난 그런 일련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덕분에 전병욱 목사 성범죄 사건의 실체를 다른 교인들보다 먼저 상세하게 알게 되었다. 사건 실체를 알게 되니 너무 큰 충격이었다. 피해자가 한두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었으며, 성범죄의 수위도 너무 높았을 뿐만 아니라 상습적이었다. 피해자들 중에는 내가 아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리고… 그 후배의 눈물과 탄식이 기억났고 그 장면은 악몽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오빠… 내가 겪은 일은 죽은 후에 천국에 가서밖에는 이야기할 수 없어요….'

다른 나라로 이민 가서 연락이 끊어진 그 후배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직도 나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녀가 하염없이 눈물 흘리며 했던 저 말은 전목사 사건이 공개된 후 내 가슴을 계속 비수처럼 헤집어 놓고 있었다.

게다가 교회에서 '한국교회에 덕이 안 된다'며 진실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고 유야무야 덮으려 했던 시간이 길어지자, 어이없게도 가해자인 전병욱 목사는 많은 교인들에게 위로받고 힘내라는 격려를 받는 데 비해 정작 피해를 당한 여성들은 이단에서 파송된 무리라거나, 교회를 흔들려고 담임목사를 유혹하고 음해하는 꽃뱀이었다며 오해와 매도 속에 이중 삼중의 상처를 받아야 했다.

많은 교인들이 진실을 제대로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무조건 '담임목사'의 편을 들었다. 나는 그 상황을 지켜보며 담임목사에게 끔찍한 일을 당했을지도 모를 내 후배와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풀어 주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싸우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후 3년 동안 나는 전병욱 목사의 면직을 촉구하고 사건의 실체를 알리는 활동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한 번도 그런 사회적인 활동을 해보지 않아서 3년 동안의 싸움과 연대, 시위와 활동은 무척 낯설고 피곤하며 힘들었다. 그러나 이런 싸움이 피곤하고 지칠 때마다 그 후배의 탄식과 눈물을 기억하며 지금까지 왔다. 내가 이런다고 그녀의 아픔이나 피해자들의 아픔이 잊히진 않을지라도 이렇게라도 하는 것이 두려움 속에 비겁하게 진실을 외면했던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건이 드러난 지 3년이 넘었지만 전병욱 목사가 소속되어 있으며 처리와 징계의 책임이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합동)'(www.gapck.org)의 '평양노회'는 단 한차례도 조사를 나온 적이 없다.

게다가 삼일교회 교인들이 제출한 면직 청원과 '전병욱목사성범죄기독교공동대책위'가 요청한 면직 요구와 책임자 면담도 거부하고, 심지어 삼일교회에 새로 부임한 송태근 목사와 당회가 평양노회 정기노회 모임 때마다 절차대로 세 번이나 반복해 제출한 '면직 청원'도 절차상 하자나, 서류가 없어졌음을 핑계되며 현재까지 면직은커녕 그 어떤 징계조차 내리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 전병욱 목사는 홍대 근처에 '홍대새교회'라는 교회를 개척해 자신과 관련된 언론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며 당당하게 목회를 하고 있다.

(※ 지난 자료지만 목회자의 성추행, 강간과 관련하여 '기독교여성상담소'의 통계를 보면, '98년 7월부터 2005년 10월까지 목회자 관련 성폭력은 108건으로 강간 61건, 성추행 38건, 성희롱을 포함한 기타 사건이 9건이었다. 그중 사법 처리와 권징과 관련된 고소율은 단 8%이고, 교단에서 적극적으로 징계와 면직에 나선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내가 외면한 이웃들

난 그렇게 이기적인 내 삶의 안위를 위해, (관련 기사 : 용산 참사 외면했던 이웃 기독인의 고백)
몇 푼 안 되는 돈 때문에 배신감을 느껴서, (관련 기사 : 내가 외면한 이웃, 노숙인 김웅래 아저씨)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 무서운 진실이 드러날까 봐 겁나서… 내 주변에서 아파하고 눈물 흘리던 이웃들의 아픔을 외면해 왔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들의 아픔을 보듬기엔 너무 늦게 정신을 차렸다.

권대원 / 모바일 UX/UI 디자이너를 직업으로 삼고 있으나, 보수적인 대학생 선교 단체 10년과 대형 교회 15년 이상의 신앙생활과 관련된 경험이 더 할 이야기가 많은 삐딱한 크리스천

*이 글은 <ㅍㅍㅅㅅ>(ppss.kr)에 게재된 연재 글입니다. 허락을 받아 싣습니다. 내가 외면한 이웃, 노숙인 김웅래 아저씨이어집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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