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의 설교 표절에 대한 기사가 나간 후 한 통의 제보 메일을 받았다. (관련 기사 : '표절' 않고는 설교 못 하는 목사들) 제보자는 "A가 B의 것을 직접 찾아 표절한 게 아니다. 목회 정보 사이트에서 유료로 제공하는 설교를 구입해 쓰다 보니 어쩌다 같은 목사를 계속 선택한 것"이라며 전국에 이러한 목사가 많이 있다고 했다.

실제로 ㄷ교회 이 아무개 목사는 한 해 동안 김 아무개 목사의 설교만 지속적으로 표절했다. 김 목사의 이름을 인터넷에서 검색하자 그의 설교문이 실려 있는 블로그가 여러 개 나왔다. 그중 한 블로그에 접속했다. 김 목사뿐 아니라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 원로), 김진홍 목사(두레교회 원로) 등 유명 목회자들의 설교문이 여러 편 있었다. 교회 홈페이지에 게재한 주일 설교문을 블로그 운영자가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었다.

▲ 설교 판매 사이트에는 김동호 목사(높은뜻연합선교회 대표), 박종순 목사(충신교회 원로목사), 조용기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 등 유명 목회자들의 설교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의 설교는 회원들이 가장 많이 내려받는 '베스트 설교'로 분류되어 있다. (ㅎ정보센타 홈페이지 갈무리)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설교란 단어를 검색해 봤다. 설교 은행·설교 자료·설교 예화 등 연관 검색어와 설교 판매 사이트들이 주르륵 떴다. 목회 정보를 전문적으로 제공한다는 사이트를 들어가 보니 주제별 설교부터 예화나 기도문까지 예배에 필요한 모든 자료들을 찾을 수 있었다.

전문적으로 목회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사이트만 20곳이 넘는다.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90년대 후반부터, 목회 자료·목회 정보 등의 이름을 내건 사이트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설교 테이프나 CD로 보급되던 유명 목사들의 설교문이 인터넷으로 옮겨 온 것이다. 접근성이 높아 사용이 편리한 인터넷의 특성상, 목회자들은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방대한 목회 자료를 무한대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ㅎ정보센타·C3○○가 1000명 이상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곳으로, 유사 사이트들 가운데 가장 큰 세를 자랑한다. 한두 명의 개인이 운영하는 다른 사이트들과는 달리 기업화된 곳이기도 하다.

설교 제공 사이트들은 대부분 회원제로 운영된다. 사이트 이용을 위해서는 연평균 6만 원 정도의 회비를 내야 한다. ○○은행의 경우 연회비 5만 원을 내야 정회원이 될 수 있고, 전도사나 신학생은 3만 원에 이용 가능하다. 본인 설교를 한 해 10편 이상 제공하는 회원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닷컴은 다른 사이트에 비해 조금 저렴하다. 연회비가 4만 원이다. 미자립 교회 목회자나 신학생들은 3만 원에 이용 가능하다. ○○닷컴 역시 월 3편 이상의 설교를 제공하는 회원은 무료 이용이 가능하다.

▲ 설교 판매 사이트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적게는 4만 원에서 많게는 8만 원 정도의 연회비를 내야 한다. 일부 사이트의 경우 가입 후 3일 동안 모든 자료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해준다. (C3OO 홈페이지 갈무리)

사이트를 방문해 보면 자료가 너무 많아, 어디서 무얼 찾아야 할지 헷갈릴 정도다. 절기·주제·강해 설교, 유아·청년·장년 설교 등 분류 목록만 수십 개가 넘고, 무료로 제공하는 예화나 간증문까지 포함하면 수천 건의 자료가 사이트에 실려 있다. 심지어 목회자들이 예배 시간에 왕왕 사용하는 유머만 따로 모아 둔 곳도 있다.

목회 정보 사이트들의 목적과 방향은 뚜렷하다. ○○은행은 설립 취지를 사이버상의 악의 무리를 쫓아내고 가상공간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우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닷컴은 인터넷을 이용한 세계 선교와 기독교 자료 제공이 그 목표다. 다른 사이트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 △사이버 선교 △설교 준비 △평신도 교육 등을 설립 취지로 내걸고 있다.

변질된 설립 취지…'설교 세탁 공장'으로 전락

설교 판매 사이트는 목회자들에게 있어 '양날의 칼'이다. 풍부한 목회 자료를 얻을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쉽사리 표절 설교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취재 중 이 아무개 목사를 만났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설교 판매 사이트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이 목사는 잠시간 뜸을 들이더니, 자신 역시 인터넷에서 구입한 설교를 그대로 베껴 쓴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도한 설교 부담을 이기지 못해 표절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한 설교 베끼기는 이후에도 반복됐고, 나중에는 충분한 시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이트를 뒤지고 다녔다. 이 목사는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뻐꾸기' 노릇을 하고 있는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다. 그는 짜깁기한 설교를 수백 번 하더라도 목회는 늘지 않고 오히려 죄책감만 커진다고 말했다. 표절 설교도 일종의 '중독'과 같다며 한번 시작하게 되면 쉽게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사이트 운영자들 역시 표절 설교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은행의 경우 "○○은행이 자칫 게으른 교역자들의 안식처로 자리잡을까 두렵다"며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어디까지나 참조용이고, 설교자들은 깊은 묵상과 성령의 도우심을 먼저 구해야 한다는 지침을 내놓았다.

▲ 일정 금액을 지불한 유료 회원은 사이트에 실린 수천 건의 자료를 무한대로 이용할 수 있다. 각 설교마다 설교 본문·설교 제목·주제어 등이 친절히 설명돼 있다. (ㅎ컴퓨터선교회 홈페이지 갈무리)

ㅇ목회클럽 박 아무개 대표는 종종 교인들의 항의 전화를 받는다고 말했다. 목사가 구입한 설교문을 원문 그대로 베껴 쓴 것을 안 교인들이 사이트에 잘못을 묻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 대표는 설교 제공 사이트 때문에 표절 시비가 생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부지런한 목사들은 사이트의 방대한 자료를 이용해 좋은 설교를 만든다고 했다. 어차피 남의 설교를 베낄 목사들은 굳이 설교 사이트가 아니더라도 설교집이나 테이프를 듣고 베낀다고 말했다. 그는 ㅇ목회클럽에는 대형 교회 목사들도 회원으로 있다며 설교 사이트의 순수성을 강조했다.

반면 목회 정보 사이트를 '설교 세탁 공장'이라고 표현하는 운영자도 있었다. ㅎ컴퓨터선교회 이 이무개 대표는 1985년부터 사이버 선교를 시작했다. 애초 취지는 설교 준비 자료가 부족한 작은 교회 목회자들을 돕고, 일반 교인들에게도 양질의 기독교 자료를 제공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일반 교인 중 사이트를 이용하는 교인은 거의 없었다고 했다. 이용은커녕 사이트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목회자들은 자료를 참고해 더 좋은 설교문을 만들려고 노력하지는 않고, 남의 원고를 강단에서 그대로 읊어댔다. 그는 교인들에게 여러 차례 항의 전화를 받으며 설교 사이트가 교회를 살리는 것이 아닌, 한국교회의 수준과 신뢰를 떨어트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 사이트 운영을 시작했지만, 결국 남의 설교를 가지고 장사하는 것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유명 목회자 위주로, 이름은 숨기고…무단 도용은 엄연한 위법

설교 사이트 운영자들은 대부분 현직 목회자들이었다. C3○○나 ㅎ정보센타 같은 비교적 규모가 큰 사이트를 제외하고는 외따른 사무실 없이 교회나 사택에서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었다. 주소를 따라 교회 몇 곳을 찾아가 보았다. 대부분 상가 교회였다. 어떤 교회는 재정 문제로 문을 닫은 곳도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저작자에 대한 저작권료 지급이 제대로 이뤄질 리 없었다. 운영자들은 하루 평균 4~5편의 설교를 업데이트한다. 평소 친분이 있는 목회자나 신학교 동기들에게 제공을 요청한다. 청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양은 하루에 1~2편 정도,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는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설교 텍스트를 구입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흔치 않다.

▲ 한두 곳을 제외한 대부분의 설교 제공 사이트들은 사무원을 두지 않고 목회자 한두 명이 교회나 사택에서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인터넷 매체의 특성상 특별한 도구 없이도 PC 한두 대만 있다면 누구나 운영할 수 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ㅎ정보센타뿐 아니라 대부분의 설교 제공 사이트들은 저작권 시비를 피하기 위해 설교 제공자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사이트 운영자들은 시비 가능성이 적은 유명 목회자들의 설교를 주로 이용한다. 그러나 유명 목회자들의 설교는 한정돼 있다. 다른 사이트와 차별성을 갖기 위해서는 다양한 목회자의 설교가 필요하지만, 설교문 이용을 허락하는 목사들은 많지 않다.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낸 것이 설교자의 이름을 삭제한 뒤 제목이나 내용 몇 군데를 수정해 올리는 방법이다.ㅎ정보센타는 설교자의 이름은 밝히지 않은 채, 수십 편의 설교를 한데 묶어 판매하고 있다. 왜 설교자의 이름은 밝히지 않는지 묻자, 저작권 문제로 곤욕을 치른 적이 있어 설교자의 이름은 밝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자신들이 설교를 편집해 재가공하고 있기 때문에 저작권법상 저촉될 것은 없다고 주장했다.

설교자의 동의 없이 일부 내용을 수정 판매하는 행위는 엄연한 위법이다. 설교는 어문저작물(말과 글에 의해 표현되는 저작물)에 속한다. 따라서 개작이나 편집 등 2차적 가공물 역시 저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저작권법 제22조). 작성자의 동의나 출처 표시 없이 설교를 무단으로 판매하는 행위는 저작권법 위반이다. 징계 수위 역시 가볍지 않다. 저작권법 위반은 민사상 책임뿐 아니라 형사처벌까지 가능해 최대 5년 이하의 징역과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 부과될 수 있다(저작권법 제136조). 

▲ ㅎ정보센타는 수십 편의 설교를 한데 묶어 판매하고 있다. 종류도 다양하다. 주일 낮 예배·주일 저녁 예배·금요 철야 기도회 등 예배 성격에 따라 분류돼 있다. 회원들이 직접 설교를 올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다른 회원이 자신의 자료를 내려받을 때마다 가격의 50%가 자신의 포인트로 적립된다. (ㅎ정보센타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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