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오늘을 돌아보고 내일의 대안을 만들어 가는 데 있어 중요한 도구입니다. 세월호로 인해 대한민국의 민낯이 드러난 오늘의 시대를 돌아보고 대안을 만들어 가기 위해, '공평과 정의'라는 성서적 원리에 비추어 조선과 대한민국의 역사를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민생의 근본인 토지제도를 개혁하고자 애썼던 한반도의 개혁 정치가들을 살펴보며 하나님나라의 통치 원리와 오늘의 시대를 돌아보려 합니다. 여말선초의 개혁 정치가 정도전에서부터 노무현 대통령까지 600년 한반도 역사 대장정을 시작합니다. -필자 주

① 정도전과 하나님나라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② 정도전과 예레미야1 : 국가 멸망의 징조
③ 정도전과 예레미야2 : 왕조의 멸망을 대하는 두 사람
④ 정도전의 민본사상과 하나님나라의 공평과 정의
⑤ 두 진정성의 충돌 - 정도전과 정몽주의 우정과 갈등 : 하나님나라를 위한 연대와 우정
⑥ 계민수전, 과전법, 일전일주론 : 여말선초 각 세력들의 토지개혁론 톺아 보기
⑦ 역사 속 하나님의 통치는 유효한가?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공평과 정의는 인간을 통해 매개된다. 하나님의 지상 통치 대리자인 사람이 공평과 정의를 행하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해석한다. 정도전은 공평과 정의에 기초한 나라를 세우고자 시도했던 여말선초의 정치가이며, 예레미야는 공평과 정의가 무너진 남유다에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던 예언자이다. 이들은 공평과 정의가 무너진 자신의 조국이 멸망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정도전과 하나님나라②'에서는 이들의 눈에 비친 남 유다와 고려의 마지막 모습을 살펴보며 공평과 정의가 무너진 사회는 어떤 모습인지 살펴본다. 그리고 정치가로서, 예언자로서 자신의 조국에 공평과 정의를 이루고자 했던 두 사람의 삶을 비교해 본다.

1. 국가 멸망의 징조

주전 587년, 바벨론에게 멸망했던 남 유다 말기의 모습과 14세기 말, 고려 말기의 모습을 예레미야와 정도전의 관점에서 살펴보자.

(1) 남 유다 말의 현실

남 유다 말기인 주전 600년 전후는, 고대 근동의 패권을 두고 앗수르와 신흥 제국 바벨론, 이집트가 충돌하는 등 국제 정세가 급변하는 격동의 시기였다. 하지만 남 유다의 왕과 기득권층은 백성들의 결속력을 강화하여 내실을 다지고 국력을 기르려 하지 않았다. 유다의 왕과 지도층은 급변하는 국제 정세를 읽을 능력과 통찰을 기르려 하기보다는 사치와 향락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백성들을 수탈하는 데만 골몰하다 결국 신흥 제국 바벨론에 의해 패망하고 만다.

너의 치맛자락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죄 없는 피가 묻어 있다. 그들이 담을 뚫고 들어오다가 너에게 붙잡힌 것도 아닌데, 너는 그들을 죽이고서도 '나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다! 하나님이 진노하실 일은 하지 않았다' 하고 말한다(렘 2:34~35)

멸망 직전의 남 유다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무고한 피가 곳곳에서 흐르고,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고 죽인 이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도 않는다.

조롱에 새를 가득히 잡아넣듯이, 그들은 남을 속여서 빼앗은 재물로 자기들의 집을 가득 채워 놓았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세도를 부리고, 벼락부자가 되었다. 그들은 피둥피둥 살이 찌고, 살에서 윤기가 돈다. 악한 짓은 어느 것 하나 못하는 것이 없고, 자기들의 잇속만 채운다. 고아의 억울한 사정을 올바르게 재판하지도 않고,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지켜 주는 공정한 판결도 하지 않는다(렘 5:27~28)

남을 속여서 재물을 빼앗고, 세도를 부리고, 자기들의 잇속을 채우기 위해 악한 짓을 서슴지 않는다. 고아와 가난한 이들의 사정은 관심도 없고 다만 사회적 약자들은 기득권층의 착취 대상일 뿐이다.

불의로 궁전을 짓고, 불법으로 누각을 쌓으며, 동족을 고용하고도, 품삯을 주지 않는 너에게 화가 미칠 것이다. '내가 살 집을 넓게 지어야지. 누각도 크게 만들어야지' 하면서, 집에 창문을 만들어 달고, 백향목 판자로 그 집을 단장하고, 붉은 색을 칠한다. … 너의 눈과 마음은 불의한 이익을 탐하는 것과 무죄한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하는 것과 백성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에만 쏠려 있다(렘 22:13~17)

왕과 기득권층들은 그들의 사치와 향락을 위해 궁전 건설 등 대규모 토목 공사를 일으키고 백성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였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도 그들의 눈과 마음은 불의한 이익을 탐하고 무죄한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하고 백성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에 쏠려 있었다.

하나님은 공평과 정의를 행하지 않으면 유다를 멸망시키겠다는 최후통첩을 하였지만 결국 유다의 왕과 백성들은 패망의 길을 선택한다.

너는 이렇게 말하여라. '다윗의 보좌에 앉은 유다의 왕아, 너는 네 신하와 이 모든 성문으로 들어오는 네 백성과 함께 주가 하는 말을 들어라. 나 주가 말한다. 너희는 공평과 정의를 실천하고, 억압하는 자들의 손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구하여 주고, 외국인과 고아와 과부를 괴롭히거나 학대하지 말며, 이곳에서 무죄한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하지 말아라. 너희가 이 명령을 철저히 실천하면, 다윗의 보좌에 앉는 왕들이 병거와 군마를 타고, 신하와 백성을 거느리고, 이 왕궁의 대문 안으로 들어올 것이다. 그러나 내가 스스로 맹세하지만, 너희가 이 명에 순종하지 않으면, 바로 이 왕궁은 폐허가 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렘 22:2~5)

(2) 고려 말의 현실

14세기 후반 고려 말기 역시 중국 대륙의 패권 축이 원나라에서 명나라로 이동하며 동양의 국제 정세가 급변하는 시기였다. 고려 내부적으로는 원나라의 힘을 등에 업은 고려의 권문세족들이 매관매직을 일삼고 토지를 독점하는 등 백성에 대한 수탈이 임계치를 넘었으며, 고려의 국교였던 불교 역시 극도로 부패하였다. 권문세족과 사찰의 토지 독점으로 인해 관료와 군인들에게 지급할 봉급과 토지마저 부족하여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에도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 이성계와 같은 지방 군벌들의 사병에 의존하였던 것이 고려 말기의 현실이었다.

"요사이 국가 기강이 무너져 백성이 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권세 있는 자들이 모두 빼앗고 노비로 삼았다. …그 원한이 하늘을 움직여 수해와 가뭄이 끊이지 않고 질병도 그치지 않았다." <고려사>, <신돈전>

"요즈음 들어 간악한 도당들이 남의 토지를 겸병함이 매우 심하다. 그 규모가 한 주보다 크며, 군 전체를 포함하여 산천으로 경계를 삼는다." <고려사>, <식화지>

고려 말기에는 토지제도의 문란함으로 인해 토지를 빼앗기고 권문세족의 노비가 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였다. 공민왕의 개혁을 이끌었던 신돈이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해 토지를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고 노비를 양민으로 해방해 주었지만 개혁의 실패로 인해 권문세족들이 가진 땅이 산과 강을 경계로 삼을 만큼 토지독점과 수탈은 더욱 극심해져 갔다.

"권세가들이 남의 땅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이라고 우기며 주인을 내쫓고 땅을 빼앗아, 한 땅의 주인이 대여섯 명이 넘기도 하여 전호들은 세금으로 소출의 8~9할을 내야 한다." <고려사> <식화지>

"호소할 곳 없는 불쌍한 백성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개천과 구덩이에 빠져 죽고 있을 뿐입니다. (…) 백성이 사전의 도조, 즉 소작료를 낼 때 다른 사람에게 빌려서 충당하는데, 그 빚은 아내를 팔고 자식을 팔아도 갚을 수 없고, 부모가 굶주리고 떨어도 봉양할 수 없으니, 원통하게 부르짖는 소리가 위로 하늘까지 통합니다." (<고려사절요> 창왕 1년 조준의 토지개혁 상소문 中)

권문세족들의 과도한 토지 독점으로 인해 백성들은 소작료를 받아가는 지주가 6~7명, 많게는 7~8명까지 되었으며 소출의 9/10까지도 소작료로 빼앗기는 상황이 고려 말의 현실이었다. 소작료를 내기 위해 빚을 지다 아내와 자식까지 팔아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자기 땅을 권문세족에게 바치고 스스로 노비로 들어가는 상황이 비일비재하였다.

"전제가 파괴된 후부터는 호족이 겸병하여 부자는 땅이 더욱 불어나고 가난한 자는 송곳을 꽂을 땅도 없다. 가난한 자는 부자의 토지를 빌려 경작하고 일 년 내내 고생하여도 먹을 것도 부족할 지경이고, 부자는 편안히 앉아 소작인을 부려 그 수입의 태반을 먹는다. 국가는 아무 대책 없이 바라보고 있을 뿐 그 세를 받지 못한다. 따라서 백성은 더욱 고생하고 국가는 더욱 가난해진다." <조선경국전>

권문세족들의 토지는 산과 강을 경계로 삼지만 그들의 토지는 국가가 조세를 걷지 않기에 고려는 점점 더 가난해지고 백성은 혹독한 수탈에 시달리고 권문세족들만이 극도의 부를 축적하며 향락과 사치가 넘쳐났던 시절이 고려 말기의 현실이다. 소위 '국가의 사유화'가 극도로 진행되었던 시기가 고려 말이었다.

극도의 타락과 부패가 만연했던 때가 고려 말기와 남 유다 말기의 현실이었다. 고려 말과 남 유다 말은 놀랍도록 유사했다. 하지만 어둠이 가장 짙었을 때가 새벽의 여명이 가장 가까울 때라 했던가. 고려 말과 남유다 말은 어둠이 극도로 짙었지만 하나님의 통치는 이대로 어둠이 세상을 장악하도록 두지 않았다. 고려와 남 유다의 불의가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의 저울에 달아 임계치를 넘었을 때, 고려의 현실을 뒤엎을 혁명가를 준비해 두셨다. 바벨론 포로기라는 풀무불에 연단하신 후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

이성영 / 희년함께 협동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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