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교회에서 행한 강연이 요즘 논쟁의 화두다. 그의 '하나님의 뜻'과 관련된 역사관을 듣다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오늘은 기존에 이야기되었던 것과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그의 주장과 관련하여, 필자가 1980년대 대학생 때 경험한 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영어 회화 시간에 수강생들에게 다양한 주제로 글을 써서 발표하도록 과제가 주어졌다. 우리 동기 중에 한 학생이 한국 역사와 근대화에 대한 글을 발표했는데, 그 가운데 5000년 한민족의 '어두운' 역사 속에 서양의 기독교가 전래되면서 빛을 밝혔다는 발언이 화근이 되었다. 개화의 주체가 서양 선교사였다는 것이다. 강사는 그 발표 내용을 문제 삼았다. 물론 그는 미국인이지만 기독교인이 아니었고, 아마 반기독교적 정서를 갖고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요점은 그것이 아니다. 그는 어째서 기나긴 한국사가 어두움이었고 서양의 종교인 기독교가 전파된 것이 계몽이며 개화인가를 따져 물었다. 그의 평가를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요지는 어째서 한국 사람들은 그런 태도를 취하는가에 대한 질타였다. 그때 강사의 질타가 좀 부끄럽기는 했지만, 수업을 들었던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별 반응은 없었던 것 같다.

서양 제국주의를 힘에 입어 서양 기독교가 아시아와 아프리카, 심지어는 아메리카 대륙에 전파되다 보니, 한편으로는 문명국가와 미개 국가 사이의 대결 혹은 기독교와 미개 종교 사이의 대결로 비춰졌던 것 같다. 사실 제국주의와 기독교가 구분이 되면서도 구분이 되지 못한 것은 기독교 선교 역사상 두고두고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전에는 무력을 통한 기독교 전파 혹은 성지 회복이라는 명목으로 수행된 십자군 전쟁이 기독교 역사의 수치 혹은 어두운 구석을 차지했었는데 말이다. 역사상 칼이냐 코란이냐 이슬람교의 문제를 논하기에 앞서서 기독교가 얼마나 무력과 억압적 수단으로 통하여 중세 이후에 유럽인들과 비유럽인들을 핍박하기도 하고 기독교를 강요하기도 했었던가?

물론 그 역사를 따지고 보면, 강요에 의한 개종의 역사는 기독교 역사의 초기로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와 바울에 의해서 시작된 기독교가 로마의 종교이자 유일한 종교가 된 이후로, 기독교는 이교도들을 감화하고 신자화하기 위하여 군사적인 노력을 감행하였다. 물론 선교사들이 파송되어 순교당한 일도 많았다. 국가의 반열에 올라선 기독교가 수행할 수 있는 일상적인 혹은 나름 '최선의 방법'이라고 여겨졌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필자의 서평을 참조하라. (관련 기사 : 회심은 구원의 조건인가, 구원의 결과인가)

문명적, 강력한 기독교로서의 이미지는 사실 아시아인들에게도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것은 잘 알다시피, 제국주의와 기독교가 함께 전파된 아시아 국가에서의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부정적'이라는 점이다. 그 경우는 중국의 근대 역사에 있어서 잘 나타난다. 중국의 배타주의도 한몫을 차지했지만, 아편전쟁이라든지 제국주의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그 중요한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제국주의 확장이라는 점에서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조선을 실제적으로 개화시키고 식민 지배를 한 것은 서양이 아니라, 일본이라는 점이다. 피식민지를 개화했다거나 발전의 토대를 남겼으며 원주민들은 미개했다는 말은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식민주의자들의 천편일률적인 논리이니 이것에 대해서 대답을 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조선의 '미개'함을 깨우쳐 준 것은 일본과 서양 선교사들일 것이다. 서양 선교사들의 조선 내에서의 활동에 대해서는 그 공과를 논의할 것이 많기 때문에 여기서 다 다루지는 않을 것이나, 정치적으로도 (중국을 포함하여) 서양과의 연대를 통하여 일제강점기를 겪고 있는 조선인들의 독립과 해방을 위한 노력뿐만 아니라, 종교를 포함하여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태도는 반드시 나쁘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기독교 자체에서 '서양식' 복음의 수용뿐만 아니라, 고도의 문명과 풍요로운 세상으로서 미국이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복음은 축복과 동일시가 되고 그것은 미국이 흠모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유토피아적 이해는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서양 선교사들의 영향과 부흥사들와 부흥 운동의 영향, 그리고 해방과 6‧25전쟁과 독재 시대를 거치고 기독교의 부흥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하나의 이념으로 발전하게 된 것 같다.

역사적으로 볼 때, 기독교가 (서양)문명 전파자인가? 서양이 기독교로 인해 문명국가화되었는가? 미국이 문명국가이며 기독교 국가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쉽게 답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려운 것이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논란을 보면서 마치 하나님이 미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을 사용하셔서 무지몽매한 조선인들을 개화시켰다고 하는 주장은 이미 일본제국주의와 그 시대의 일본 기독교인들이 조선 식민지 정당화를 위해서 상용된 바 있다. 문화적 우월론을 가지고 선교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옳은가? 문화적 이기(利己)나 의학 치료나 교육 혹은 복지 혜택을 선교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도 사람들을 모으고 기독교적 선의(善意)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것은 좋은 일일 수 있겠지만, 과거에 서양 제국주의에 편승하여 서양 문화와 복음을 혼용하여 전달하였던 서양 선교사들처럼, 한국 기독교인들이나 선교사들이 피선교민들에게 혼동을 주거나 마치 우리나라가 문명국가이며 기독교의 유토피아인 것처럼, 혹은 강요와 획일화를 통하여 복음화를 시도하려는 태도는 잘못인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예수가 그 모범을 보여 주었듯이, 우리의 선교와 대화는 성육신적인 모습을 취해야 할 것이다.

이미 많은 기사와 연구를 통하여 드러났듯이, 문창극 총리 후보의 강연과 그의 칼럼 등이 보여 주는 기독교상(像)은 '하나님의 뜻'을 빙자한 외세 의존적, 서구 문화 우월적 기독교, 당파적 이념적 기독교의 모습을 보여 준다. 자기를 학대하고 비천하게 심지어 왜곡된 이미지를 만들어야 기존 역사에서 벌어진 질곡과 불의함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이다. 진정 조선의 미개함을 계몽하기 위한 뜻으로 하나님이 일본에 의한 식민화를 허용하셨고 공산화를 막기 위해 미군의 개입을 허용하셨고 국가 발전을 위해 독재를 허용하셨다는 것이다.

성경에서야 하나님의 뜻을 명약관화하게 구별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과거 역사와 증거들과 증인들이 생존해 있는 상황 속에서 '숙명론'으로 근현대사를 판단하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상당히 많은 목사들이나 심지어 신학자들도 문 장로의 주장에 동의하는 것이 단지 정파적 이해에 동의하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하나님의 뜻을 근현대사에 손쉽게 적용하려고 했던 한국 기독교의 타성에 의존하려는 시도가 아닌가 한다. 사실 성경 해석은 역사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과거의 역사를 통하여 현재와 미래를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이러한 역사 해석은 지나치게 단순화하거나 이념화해서, 서양 문화 전파적인, 혹은 파당적이거나 숙명론적 해석의 또 다른 모양으로 이해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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