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오늘을 돌아보고 내일의 대안을 만들어 가는 데 있어 중요한 도구입니다. 세월호로 인해 대한민국의 민낯이 드러난 오늘의 시대를 돌아보고 대안을 만들어 가기 위해, '공평과 정의'라는 성서적 원리에 비추어 조선과 대한민국의 역사를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민생의 근본인 토지제도를 개혁하고자 애썼던 한반도의 개혁 정치가들을 살펴보며 하나님나라의 통치 원리와 오늘의 시대를 돌아보려 합니다. 여말선초의 개혁 정치가 정도전에서부터 노무현 대통령까지 600년 한반도 역사 대장정을 시작합니다. -필자 주

한반도 역사 대장정의 첫째 주자는 민본 사상을 기반으로 한 조선의 설계자, 정도전입니다.

① 정도전과 하나님나라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② 정도전과 예레미야1 : 국가 멸망의 징조
③ 정도전과 예레미야2 : 왕조의 멸망을 대하는 두 사람
④ 정도전의 민본사상과 하나님나라의 공평과 정의
⑤ 두 진정성의 충돌 - 정도전과 정몽주의 우정과 갈등 : 하나님나라를 위한 연대와 우정
⑥ 계민수전, 과전법, 일전일주론 : 여말선초 각 세력들의 토지개혁론 톺아 보기
⑦ 역사 속 하나님의 통치는 유효한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 땅에 임하는 하나님나라가 주제인 성서의 배경은 주전 22세기부터 주후 1세기의 근동과 지중해 근해이다. 반면 정도전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은 주후 12~13세기의 아시아 극동 지역인 한반도이다. 시간과 공간이 너무도 다르기에 한반도 땅의 사건들이 어떻게 하나님나라와 관계가 있을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세워지고 정도전이 조선을 설계한 것이 하나님나라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 정도전과 하나님나라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이제 찬찬히 살펴본다. 사진은 KBS 1TV 대하드라마 '정도전' 포스터.

구속사와 세속사를 아우르는 하나님의 통치 원리 – 공평과 정의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성서 기자의 고백의 이면에는 하나님이 피조 세계의 주인이고 통치자라는 함의가 담겨 있다. 하나님이 피조 세계의 통치자이시며 역사의 주관자시라면 동양이든, 서양이든, 근동이든, 극동이든, 기원전이든, 기원후든 하나님의 통치 원리는 피조 세계 역사의 흥망성쇠를 결정짓는 키워드일 것이다.

성서는 하나님나라의 통치원리를 '공평과 정의'라고 말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나니 땅은 즐거워하며 허다한 섬은 기뻐할지어다
구름과 흑암이 그를 둘렀고 의와 공평이 그의 보좌의 기초로다(시 97:1~2)

시편에서는 하나님께서 피조 세계를 다스리기 위해 앉은 보좌의 기초가 '의와 공평'이라고 말한다. 의와 공평은 '츠다카(righteousness)'와 '미슈파트(justice)'로 성서 곳곳에서는 '츠다카'와 '미슈파트'를 '의와 공도, 정의와 공의, 공평과 정의, 법도와 의, 심판과 의' 등 본문에 따라 의역을 하고 있다.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사 5:4)

포도원 주인이 극상품 포도를 심었지만 들포도 열매를 맺는 포도원을 황폐하게 한다는 이사야서 5장에 나타난 포도원의 노래는 문명의 흥망성쇠 원리를 잘 보여 주고 있다.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사 5:7)

포도원 주인인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라는 좋은 포도를 맺기를 바라셨지만 이스라엘이라는 포도원은 포학과 부르짖음이라는 들포도 열매를 맺었다.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사 5:5~6)

가난한 이웃을 학대하고 착취하는 포학을 저질러 가난한 이웃들의 부르짖음이 하나님의 인내 임계치를 넘어설 때 포도원 주인은 포도밭을 헐어 버린다. 하나님의 통치 원리인 공평과 정의로 피조 세계를 다스리라고 위임받은 권력자들이 공평과 정의를 행하지 않고 포학과 착취를 일삼는다면 하나님은 그 왕조와 문명을 멸망시키신다는 것이다.

공평과 정의는 이스라엘에게만 적용되는 원리가 아닌가?

성서에 나오는 공평과 정의는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한 선포이며 이스라엘에게만 적용되는 구절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하자만 하나님이 피조 세계 전체의 창조자이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통치를 이스라엘만으로 국한시키는 것은 자신의 고백에 대한 모순이 된다. 또한 예언서 곳곳에 나오는 열방에 대한 심판 본문들은 하나님의 통치가 이스라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역사 속의 수많은 왕조와 문명의 흥망성쇠를 살펴보아도 공평과 정의가 어그러지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착취와 억압이 임계치 이상으로 일어날 때 왕조와 문명은 쇠퇴함을 확인할 수 있다.

작은 반도 국가였던 로마가 지중해 전역을 제패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지켜야 할 자기 땅이 있는 자영농·소농 중심의 사회체제였다. 하지만 토지 독과점으로 인해 노예와 소작농으로 운영되는 대규모 농장(라티푼디움)의 지주가 중심이 되는 사회로 변질되면서 로마의 국력과 애국심은 현저히 떨어지며 결국 로마 문명은 멸망하고 말았다.

생산량이 급증하는 사회 속에서 빈곤이 급증하는 원인을 밝힌 <진보와 빈곤>의 저자인 19세기 경제학자 헨리 조지(Henry George)는 하나님의 통치라는 유신론적 표현들을 사용하지 않고도 문명의 흥망성쇠를 결정짓는 키워드가 공평과 정의임을 훌륭하게 논증하였다.

헨리 조지는 문명의 흥망성쇠를 결정짓는 원리가 '평등 속의 어울림'이라고 정의했다.

평등 속의 어울림이 진보의 법칙이다. 어울림은 정신력을 자유롭게 하여 개선에 바칠 수 있도록 해 주며 평등, 정의, 자유는 – 이 세 용어는 도덕 법칙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동일하다 – 정신력이 쓸데없는 싸움에 소모되는 것을 막아 준다. … 인간은 같이 모임으로써 진보하며 서로 협조함으로써 개선에 바칠 수 있는 정신력을 증대시키는 성향이 있다. 그러나 갈등이 발생하거나 어울림이 조건과 힘의 불평등을 조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진보 성향은 약화되고 결국에는 반전된다. -<진보와 빈곤> 中

빈부의 양극화, 권력의 횡포가 없는 평등한 관계 속에서 자유롭고 진취적인 어울림과 협동이 많아질수록 인간의 정신력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며 문명이 진보할 수 있는 동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평등 속의 어울림이 이루어지는 세상은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거나 수탈할 수 없도록 공평과 정의가 확립된 사회인 것이다.

공평과 정의의 관점에서 본 왕조의 멸망 조건

'정도전과 하나님나라 ②'에서 살펴볼 예레미야와 정도전은 자신이 섬겼던 왕조와 국가가 멸망하는 것을 지켜본 사람들이다. 이스라엘의 예언자 예레미야와 한반도의 정치가로 살았던 정도전의 시대적 배경은 1800여 년의 시간 차와 아시아 대륙의 극과 극에 위치한 공간 차가 있었지만 그들이 지켜본 멸망 직전의 남 유다와 고려의 사회 모습은 그리 다르지 않았다.

백성들의 경제 기반인 토지가 탈취당해 소수 지주들에게 독점되었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로 대표되는 사회적 약자들이 압제당하고 학대당했으며, 권력을 가진 자들에 의해 무죄한 피들이 곳곳에서 흐르는 사회였다. 공평과 정의가 행해지지 않고 불의가 만연한 국가를 황폐하게 하겠다고 하신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이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너희가 참으로 이 말을 준행하면 다윗의 왕위에 앉을 왕들과 신하들과 백성이 병거와 말을 타고 이 집 문으로 들어오게 되리라
그러나 너희가 이 말을 듣지 아니하면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노니 이 집이 황폐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22:3~5)

가난한 이들과 깊은 연대를 이루고 계신 하나님의 통치 원리는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전 세계에 나타나고 있다. 착취당하는 기층 민중을 자양분 삼아 서 있는 국가는 때가 되면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하고 만다.

이러한 공평과 정의라는 성서적 원리로 앞으로 5회 동안 여말선초 격동의 한반도 땅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비추어 보며 오늘 우리 시대에 주는 의미들을 찾아보고자 한다. 온고지신의 마음으로 옛 역사를 살펴볼 때 어두운 시대를 뚫고 나갈 한줄기 서광이 비추이길 바라며..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전 1:9)

이성영 / 희년함께 협동간사

* 공평과 정의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제20회 희년학교 김근주 교수의 강의안(바로 가기)을 참조. -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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