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장합동 소속 목회자와 총신대 재학생 및 졸업생 50여 명이 6월 5일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세월호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촛불을 들었다. 80년대 총신대에서 민주화 운동을 벌였던 민주동문회가 이번 촛불 기도회를 주도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 소속 목회자들과 총신대학교 재학생 및 졸업생 50여 명이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고 사건의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촛불을 들었다. 이들은 6월 5일 서울 광화문에서 촛불교회(최헌국 목사)와 함께 기도회를 열었다. 

누가, 왜 그랬는지 반드시 진상을 밝혀내야 한다고 예장합동 목회자들은 외쳤다. 김영진 목사(푸른마을교회)는, 예수가 당시 권력자의 손에 죽었다고 성경이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다고 설교했다. 세월호 참사도 이처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며 유가족들의 요구대로 성역 없이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그 어느 누구도 조사와 처벌의 예외는 없다고 강조했다.

개신교 목사들의 잇따른 '막말'도 대신 회개했다. 구교형 목사(찾는이광명교회)는 생명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겨야 할 한국교회가 돈과 성장이 지배하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앞장서 온 배반자였다고 참회하는 기도를 드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부끄러움에 입을 가리기는커녕 희생자와 유족들을 다시 한 번 욕보이는 망언을 서슴지 않은 목사들이 있다며, 이들의 행태를 기억하고 질책해 달라고 기도했다.

▲ 30년 전에도 투쟁에 앞장섰던 김영진 목사가 설교를 맡았다. 김 목사는 이 땅에 하나님나라를 이루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이, 회개하고 일어나 행동해야 한다고 설교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총신대 재학생들이 발언하는 순서도 있었다. 신학과에 재학 중인 노 아무개 씨(21)는 총신대의 교시인 '신자가 되어라'는 말 그대로, 고통받는 자들과 함께하고 그들을 신원하기 원하는 진짜 신자가 되겠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후배의 용기 있는 선언에 박수를 보냈다. 그의 발언을 요약해 옮긴다.

"발언을 하기에 앞서 용기 있는 선배님들의 역사와 결단을 말아먹은 파렴치한 후배로서, 또한 본교가 속해 있는 교단에서 이뤄지는 망자에 대한 능욕과 희생자에 대한 모욕에 대해서 고개 숙여 사죄드리고자 합니다. 저희는 거리로 나서 미동도 하지 않는 정부를 향해서 물었습니다. '희생자를 살려 내라. 아이들을 구출하라.' 외치고 또 외쳤지만 사실 저들은 구출할 생각도 살려 낼 생각도 애당초 없었습니다. 아니, 저들은 저들의 권력과 야욕과 욕망을 위해, 저들의 폭력을 구조하였고 저들의 착취를 구조하였으며 저들만을 위한 대통령을 구조하였습니다.

총신대학교의 첫째가 되는 교훈은 '신자가 되어라'입니다. 신학생이 우리가 믿는 절대자, 우리가 따르고자 하는 하나님을 믿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우리에게 '너희가 무엇을 믿느냐', '어떤 하나님을 믿느냐'고 묻는다면 저희는 결코 떳떳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희는 자본의 예수를 믿었습니다. 저희는 기업의 예수를 믿었고 정권이 만든 폭력의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것이 저희가 따르고 예배하고 기도했던 예수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지난 5월 8일 감신의 형제들이 세종대왕상을 점거하고 힘없고 고통당하고 있는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대변했을 때, 저희는 신성하고 거룩한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15일 이 자리에서 한신의 형제들이 이 땅의 모든 신학생들을 향해 행동할 것을 촉구하는 제안서를 내놓았을 때, 우리가 내놓을 수 있는 대답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총신이라는 학교의 이름이, 우리에게는 우리의 치사함과 비겁함과 우리만을 생각하는 야만적인 신앙을 덮는 핑곗거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이제 신자가 되려고 합니다. 그 신자는 세상의 어떠한 권력, 가이사와 헤롯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고, 그들의 지배로부터 우리가 해방을 얻었다는 공고한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다스릴 자는 오직 야훼 하나님, 고통의 순간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신하며 그 자리에 앉아 계시는, 그 사람들을 대신하여 오늘도 일하시고 신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전하는 것이 '신자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 한국교회에서 규모가 가장 큰 예장합동은 목회자 수만 3만 명에 달한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데에는 참여가 미약한 수준이다. 거리로 나오는 교단 출신 목사들은 극소수다. 교단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무관심이거나 색깔론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기도회가 끝난 후에 사람들은 서울파이낸스센터에서 세종문화회관까지 행진했다. 행진하면서 찬송가를 부르고,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 있는 행동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이번 기도회는 총신대 민주동문회가 주도했다. 민주동문회는 1980년대 총신대를 다니면서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들은 예장합동 목회자들과 총신대에 이번 기도회를 알리고 참여를 요청했지만 참석은 저조했다. 특히 학생들은 10명 안팎이었다.

교단의 전반적인 정서는 이들의 주장과 다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슬픔이 책임자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예장합동의 대표적인 대형 교회인 사랑의교회의 오정현 목사는 '국민이 미개하다'는 말이 틀린 건 아니라고 얘기한 바 있다. 기도회에 참석한 한 목사는 "시위에 참석하는 사람을 아직도 종북·좌파라고 말하는 게 예장합동 목사들의 현실"이라며 혀를 찼다.

이런 분위기는 총신대도 마찬가지다. 한 신학과 학생은 학교 안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의 목소리를 규합해 보려 했지만, 학생들은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집회·시위·촛불과 같은 말 자체에 알레르기를 느끼는 것 같았다. 그는 "우리가 감신대·한신대 학우들처럼 1선은 못 돼도 2·3선은 돼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다. 하지만 총신대는 점점 더 내적인 경건만을 강조하고 있는 추세다. 신학과 학생들이 유독 더 그런다"고 말했다.

이날은 세월호가 침몰한 지 50일째였다. 촛불교회 최헌국 목사는 지방선거가 끝났지만 세월호 참사는 끝나지 않았다며, 계속해서 이 사건을 기억해 줄 것을 호소했다. 그는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서명이 1000만 명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아직 100만 명도 채 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 기도회가 끝나고 참석자들은 세종문화회관까지 행진했다. 총신대 재학생들이 십자가를 들고 앞장섰다. 이들은 박근혜 정부가 책임지라는 구호를 외쳤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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