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4일 저녁 7시 신도림역은 여느 때처럼 퇴근한 직장인들과 저녁 약속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로즈데이(연인끼리 서로 장미꽃을 선물하는 날)를 맞아, 장미꽃을 손에 들고 데이트를 즐기는 커플들도 눈에 띄었다.

1번 출구 앞에는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노란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서명운동'이라는 문구가 보였다. 지하철이 방금 왔다 갔는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몇몇은 피켓을 슬쩍 보더니, 고개를 숙이고 지나간다. 여성은 서둘러 입을 열었다. "시민 여러분! 세월호 사고 진상 규명을 위한 서명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긴장한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 김환희 씨는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서명운동'이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시민들에게 서명을 권하고 있다. 김 씨가 이렇게 나설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 자녀들이 보다 안전한 사회에서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 뉴스앤조이 박요셉

지하철역에서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해 서명운동을 하고 있는 이 여성은 삼일교회 김환희 집사다. 김 집사는 평범한 엄마였다. 시민운동이나 시위에 한 번도 나가 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대학교에서는 음악을 전공했지만, 졸업 이후에는 집과 교회밖에 몰랐다. 그런 김 집사에게 결정적인 변화를 준 사건은 삼일교회의 전병욱 목사가 여신도들을 성추행한 사건이었다.

전 목사가 여신도를 성추행한다는 말이 나왔을 때, 대다수 교인들은 믿지 않았다. 누구도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 하지 않았다. 일부 교인들만이 문제를 제기했다. 목사와 장로들은 "가만히 있어라.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는 말만 했다. 전 목사를 비호하고 문제를 덮으려 했다.

김 집사는 깨달았다. 잘못된 일을 보고 침묵하면,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주변 사람들의 피해를 방관하는 꼴이 된다는 것을.

세월호 사고를 보면서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무책임과 의혹투성이다. 두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로서 가만히 지켜볼 수가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우리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을까요? 수백 명의 아이들이 사고를 당했는데, 구조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지금은 아무도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려 하지 않잖아요. 아무도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결국 변하는 것은 없을 거예요. 누가 바뀌려 하겠어요." 김 집사는 삼일교회의 악몽이 떠올랐다.

4월 29일 김 집사는 한 시민 모임에 참석했다. 선대인 소장(선대인경제연구소)이 페이스북으로 주최한 모임이었다. 전날 선대인 소장은 페이스북에 세월호 사고를 보고 무엇이든 해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은 일단 모여 보자는 글을 남겼다. 60여 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다들 같은 마음이었다. 4월 29일과 5월 7일 각각 1·2차 모임을 가진 이들은 '세월호와 대한민국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세대행동)'이라는 모임을 결성했다(해당 카페 바로 가기).

유가족들은 정부가 투명하고 철저하게 사건 진상을 규명하기를 가장 원하고 있었다. 세대행동은 먼저 유가족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 주고자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유가족들의 서명운동에 동참하기로 뜻을 모았다. 지난 13일부터 김 집사를 비롯한 자원봉사자들은 매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22개의 지하철역 앞에서 2~3명씩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시민 여러분! 잠깐만" 예수 따르는 작은 외침

막상 용기를 갖고 행동에 나섰지만, 현실은 생각처럼 녹록지 않았다. 테이블을 설치하고 피켓을 들고 서 있으니, 시민들은 잠깐 쳐다보기만 하고 지나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김 집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시민 여러분! 잠깐만 시간을 내주세요." 군중을 향해 플롯을 연주해 본 적은 있지만 목소리를 낸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도 말이 끝날 때마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줄을 섰다.

시끄럽다고 김 집사에게 삿대질을 한 행인도 있었다. "다 알고 있으니 조용히 해라. 정부나 윗사람들이 알아서 할 텐데 웬 난리법석이냐"라며 한 남성이 김 집사에게 따졌다. 첫날 혹독하게 신고식을 치룬 셈이다. 그날 김 집사는 역 구석에서 한참을 울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래도 힘을 북돋워 준 것은 시민들의 격려였다. 유독 여성들이 많이 왔다 갔다. 어린 자녀와 손을 잡고 온 아주머니, 교복을 입은 여학생, 젊은 부부 등 여러 시민들이 서명을 하러 길게 줄을 섰다. 수고한다면서 음료수와 간식을 가져다주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시민들의 서명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을 보면서 김 집사는 2시간 고생한 게 모두 사라지고 무척 뿌듯해졌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소중한 마음 때문이었다. 3일 동안 1600여 명의 시민들이 서명에 참여했다. 

▲ 시민들의 서명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을 보면서 김 집사는 2시간 고생한 게 모두 사라지고 무척 뿌듯해졌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소중한 마음 때문이었다. 3일 동안 1600여 명의 시민들이 서명에 참여했다. ⓒ 뉴스앤조이 박요셉

김 집사는 교회도 동참하길 바랐다. 하지만 일부 교인들의 반응은 전병욱 목사 사태 때와 유사했다. 한국교회 강단에서는 세월호 참사를 놓고 자숙하며 기도하자는 말만 들려왔다. 세월호 사고를 통해 사회의 문제가 드러나고 있는 마당에, 왜 침묵하고 있어야 하는 것인지…. 말하던 김 집사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예수님은 시대의 악과 싸우고 불의에 저항했다. 예수를 닮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전도', '기도'만 외칠 게 아니라 적어도 이번 사고의 책임을 물으며 어떤 목소리라도 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김환희 집사와 헤어지고, 핸드폰을 켰다. 김 집사의 카카오톡 프로필에 적힌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단테의 말이었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도덕적 위기의 시기에 중립을 지킨 자들에게 예약되어 있다."

기사 내용 중 "김 집사는 교회도 동참하길 바랐다. 하지만 교회의 반응은 삼일교회 사태 때와 유사했다."를 "김 집사는 교회도 동참하길 바랐다. 하지만 일부 교인들의 반응은 전병욱 목사 사태 때와 유사했다"로 고칩니다. 삼일교회에는 세월호 사고를 놓고 함께 애도하며, 진도와 장례식장에 구호 물품을 지원한 교인들도 있고, 김환희 집사와 같이 서명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는 교인들도 있습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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