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역 사랑의교회에서 취재를 마치고 기사를 쓰러 근처 카페에 들렀다. 교회 바로 밑 카페라서 그런지 전국 목사 장로 기도회(목장기도회)에 참석한 목사·장로들이 몇몇 보였다. 자리에 앉았는데, 테이블에 주황색 빈 봉투가 버려져 있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 로고가 박힌 봉투였다.

많이 봤다. 예장합동 총회가 목사·장로들에게 교통비 명목으로 건네는 '돈 봉투'다. 누군가 돈만 빼고 봉투는 놓고 간 것이다. 예장합동 총회는 행사를 할 때, 설교라든지 대표 기도라든지 어떤 순서를 맡은 사람에게 일정 금액을 준다. 예장합동만 그런 건 아니다. 교계의 오랜 관행이다.

낯설지 않은 봉투가 버려져 있는 걸 보니 이번에도 얼마씩 준 모양이다. 얼마씩 줬을까. 이번에 강의를 맡은 사람에게 물었다. 20만 원 받았다고 한다. 대표 기도한 목사·장로들은 5만 원씩 받았다고 한다. 한 총회 관계자는 강의자를 제외한 순서자들에게 5만 원씩 줬다고 말했다. 각각 보면 그렇게 많은 액수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목장기도회에 순서를 맡은 사람은 150명에 달한다. 2~3달이 아니다. 2박 3일 동안 말이다. 전체 집회 및 강의에 55명, 트랙별 강의에 88명이 사회, 대표 기도 등의 순서를 맡았다. 트랙별 강의 강사만 22명이다. 계산해 보면, 순서비로만 1000만 원 이상 지출한 셈이 된다.

▲ 순서자가 적혀 있는 목장기도회 책자. 전체 집회와 22개 트랙별 강의마다 사회, 대표 기도, 강의 등의 순서자가 빼곡히 쓰여 있다. 2박 3일 동안 순서자는 150명에 달하고 순서비만 1000만 원이 넘는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목장기도회는 목사·장로, 즉 교회의 지도자들이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리자는 취지의 기도회다. 벌써 51번째다. 근 몇 년간 목장기도회에는 2000~3000명의 교단 목사·장로들이 모였다. 9월 총회를 제외하고 교단에서 가장 큰 행사이기 때문에 총회에서도 신경을 많이 쓴다.

하지만 기도회는 '전시성'으로 전락했다. 150명에 달하는 순서자에게 일일이 돈 봉투를 주는 것만 보고 하는 말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전국에서 참석하는 2000~3000명을 등록하는 절차만 해도 수천 만 원의 행정 비용이 든다. 총회 임원들, 전 총회장들, 이 외 귀빈(?)들에게 행하는 의전은 따로 있다. 이런 걸로 또 수백만 원이 날아간다.

많은 인원을 한꺼번에 수용할 공간이 많지 않으니 장소를 물색하는 것도 일이다. 예장합동은 목장기도회를 강원도 홍천 비발디파크에서 몇 번 개최한 적이 있다. 2박 3일 동안 중대형 강당 몇 개와 숙소를 대여하고, 밥 먹는 데에만 도대체 얼마가 들어가는 걸까.

기도회 성공을 진단하는 척도도 결국 '몇 명이 왔느냐'다. 교단지를 비롯해 몇몇 교계 신문은, 이번 기도회 전 5000명 이상의 참석을 예상하며 '연 인원 2만 명 참석', '역대 최대급 기도회'라는 수식어를 써서 홍보했다. 2012년 목장기도회는 총회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판을 키워서 6000여 명이 참석하는 성과(?)를 거뒀다. 예장합동은 최고의 대회였다고 자부했지만, 그 후 교단은 추락 일변도였다.

참석하는 목사·장로들도 별로 기도할 마음이 없는 것 같다. 목장기도회는 2박 3일인데 날이 갈수록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빠진다. 이번에도 개회 예배에는 2000여 명이 참석했지만, 폐회 예배에는 100명 남짓이 참석했다. 기도회가 조금 길어지면 그냥 자리를 뜨는 목사·장로들이 많다. 강의 시간에 밖에서 수다 떠는 목사·장로들도 있다. 이런 광경은 매년 비슷하다.

정작 순수하게 기도하는 시간은 별로 없다. 저녁 집회 때, 대표 기도를 제외하면 기도 시간은 15분 남짓이다. 한 목사는, 트랙별 강의 때 마무리 10분간은 통성기도하기로 했다고 한다. 22개 강의가 모두 한국교회의 기도 제목이라는 의미에서 기도 시간을 확보한 것이다. 하지만 10분 동안 기도하는 곳은 없었다. 대부분 2~3분 기도하고 말았다. 강의가 길어져 기도를 하지 않은 곳도 있다.

게다가 이번에는 교계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지탄받은 사랑의교회 새 예배당에서 기도회를 열었다. 비발디파크를 빌려서 하는 것보다 비용은 줄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교단 목사·장로들이 인정하든 안 하든, 세속화의 상징이 되어 버린 사랑의교회 예배당 안에서 세속에 물든 죄를 회개하는 건 무슨 상황인가. 또 한 번 비웃음거리만 될 뿐이다.

이쯤 되면 '이런 걸 도대체 왜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기도회에 참석한 예장합동 목사·장로들이 모두 문제의식이 없는 건 아니다. 개중에는 형식적인 면을 줄이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도원에 들어가 금식하고 기도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되면 과연 몇 명이 참석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 그나마 이번 목장기도회에서 건졌다고 생각하는 건, 둘째 날 저녁 집회 때 나온 황규철 총무의 고백이다. 비록 사퇴는 아니지만, 황 총무가 9월 총회 때 총무직 3년 연임을 노린다는 소문이 공공연한 시점에서 나온 말이다. "저같이 무식하고 무도하고 불행한 총무가 교단에 다시는 없기를 바란다"는 말만큼은 전시성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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