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승의 날이기도 한 5월 15일 저녁, 파이낸스센터 앞에 기독교인들이 모였다. 세월호 추모와 진실 규명을 촉구하는 기도회였다. 평화누리 김희석 사무국장은 많아야 500여 명이 모일 줄 알았는데 1000명이 넘는 인원이 참석했다고 말했다. 박득훈, 김병년, 김경호, 김형국, 김근주, 김정태 목사 등 기독교계에 잘 알려진 이들도 집회 장소 곳곳에 보였다. ⓒ뉴스앤조이 유재홍

5월 15일, 오후 7시 30분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단 이들이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 하나둘 모였다. 유모차를 끌고 책가방을 메고, 퇴근길에 하굣길에 모인 1000명이 훌쩍 넘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월호 희생자 추모와 진실 규명을 촉구하는 촛불을 밝혔다. 촛불교회에서 지난 4월 17일부터 목요일마다 같은 자리에서 열어 온 세월호 참사 기도회에, 교회개혁실천연대,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기독청년아카데미 등 12개 기독 단체들이 함께했다.

여러 교회와 단체에서 두루 모였기 때문에 곳곳에 서로 알 만한 이들이 많았으나, 사람들은 반가운 이를 만나도 크게 웃지 않고 조용히 인사를 건넸다. 이들은 무고한 희생에 대한 책임과 진실을 물으며 담담한 표정으로 촛불을 밝혔다. 길거리 집회에 처음 나와 봤다는 30대의 한 남성은, 죄 없는 어린 학생들의 죽음에 책임을 회피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곤 교회에서 기도만 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마침 페이스북에 올라온 기도회 소식을 듣고,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에 왔다고 했다.

▲집회 장소에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유가족의 요구를 정부가 받아들여야 한다는 서명 운동도 진행했다. 집회에 참석한 많은 이들이 서명에 동참했다. ⓒ뉴스앤조이 유재홍

어른들 틈에서 함께 온 아이들도 촛불을 밝혔다. 10살 남자 아이에게 사람들이 왜 기도회를 하는지 아냐고 물었다. "사람들이 슬퍼서 나온 거잖아요"라고 답했다. 곁에 서 있던 그의 누나(12)는 "언니 오빠가 많이 죽어서 위로해 주려고" 왔다고 했다. 그는 책임감 없는 어른들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했다. 또래의 한 학생(13)은 "처음엔 기적을 달라 기도했지만, 이젠 기적이 좀 늦은 거 같고…저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느껴서" 촛불을 들었다고 했다. 나란히 촛불을 밝히고 있던 서울불암초등학교 6학년생 3명은, 집회에 모인 어른들의 기도가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남은 실종자를 서둘러 찾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랐다.

촛불 기도회는 추모보다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을 촉구하는 성격이 강했다. 사회를 맡은 구교형 목사(찾는이광명교회)는 슬픔과 애도를 넘어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 처벌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설교에서 강경민 목사(일산은혜교회)는 세월호 참사가 이 나라의 총체적 비리를 드러냈다고 했다. 이 시대 목사, 종교인, 언론이 거짓 예언을 하며 불의한 권력을 지적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침몰에 대통령이 책임지고 하야해야 마땅하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국민들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정권 심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모를 쫓아 촛불 기도회에 나온 아이들의 표정도 엄숙했다. 나이는 어려도 세월호 사고로 많은 사람이 죽었고, 그것을 위해 사람들이 기도하러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뉴스앤조이 유재홍

설교 이후 한신대 신학생 3명이 세월호 참사 정부 규탄 성명서를 낭독하고, 예배 이후엔 삭발식을 거행했다. (관련 기사 : 한신대 신학생들, "대통령이 책임져라" 삭발 농성) 이들은 5월 21일까지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노숙 단식 농성을 한다. 경찰은 거리 행진으로 사람들이 자리를 옮기는 중에 한신대 신학생들의 가방 및 개인 물품을 빼앗으려 하며 농성을 훼방하기도 했다.

촛불 기도회는 거리 행진으로 이어졌다. 1000여 명의 사람들은 "미안합니다 행동하겠습니다", "함께 울겠습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움직였다. 외신을 의식한 듯 영어로 된 피켓도 눈에 띄었다. 경찰을 비롯해 촛불 기도회 참여 단체 활동가와 사역자들이 거리 통제를 도우며, 사람들은 종각역 부근을 거쳐 행진 마지막 장소인 세종문화회관으로 향했다.

▲한신대 신학생들은 삭발식을 거행하고,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을 위한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은 희생자 가족들의 요구 무조건 수용, 현 내각 총 사퇴,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의 주체가 될 것을 요구했다. 5월 21일까지 현 정부가 성실한 태도로 응답해 달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유재홍

행진 중에 합류한 한 중년 여성은, 자신은 불교도이지만 나라가 세월호에서 한 사람도 구해 내지 못했는데 집회를 기독교인이 했든 누가 했든, 행렬 시위에 동참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자신을 베이비부머 세대라고 밝힌 그는, 경제성장과 자기 이익만 추구하고 살아왔던 과거를 세월호 참사를 통해 반성했다고 말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우리 자식들에게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선, 공동체로 함께 연대해야 한다고 했다.

집회하는 모습을 보고 버스에서 내려 행렬에 합류했다는 정일권 씨(56)도, 교회는 배타적이고 편협해서 싫지만 세월호 참사를 두고 하는 이런 행사는 옳다고 말했다. 행진 중에 먼저 만난 서울불암초등학교 6학년생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사진을 찍었는데, 정일권 씨는 예전엔 젊은 세대들이 시위를 장난처럼 여기는 것 같아 그런 모습을 좋지 않게 여겼지만, 이제는 젊은 세대들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특성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행진을 멈추고 찬양을 했다. 목소리가 모여 크게 울렸으나, 행인들은 더 시끄럽게 해야 한다며 집회를 응원했다. 찬양 후, 방인성 목사는 책임 없는 권력자를 질타하고 이 나라에 공의를 세워 달라며 집회의 마침 기도를 했다. 또 "규명하라! 처벌하라! 책임지라!"를 함께 외친 뒤 소리 내어 기도했다.

김경호 목사(들꽃향린교회)는 5월 20일 오후 4시 반 기장총회 주관으로 명동 향린교회에서 단원고 유가족 대표의 증언을 듣고, 대한문으로 행진한 후 저녁 7시 연합 기도회를 할 예정이라고 광고했다. 10시가 넘어 끝난 집회에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기도회와 침묵 행진 중에 못 다 나눈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구령을 맞춰 "박근혜 퇴진"을 외치기도 했다. 

▲ 촛불 기도회에서 이어진 거리 행진은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문들아 머리 들어라'라는 찬양으로 마무리됐다. 광화문 일대에 퍼진 찬양 소리에 거리를 지나던 이들도 걸음을 멈췄다.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집회가 아니라면, 세월호 사건에 대해 더 시끄럽게 해야 한다는 행인도 있었다. 한편, 경찰은 광화문으로 향하는 길목을 막아섰다. ⓒ뉴스앤조이 유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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