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아대책은 1971년 미국에서 처음 설립된 기독교 구호 단체로 한국기아대책은 1989년에 만들어졌다. 기아대책은 지구촌 곳곳의 기아 현황을 알리고, 이들에게 식량을 제공하고 각종 개발 사업과 구호 활동을 통해 자립을 도와주고 있다. (기아대책 홈페이지 갈무리)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기아대책·이성민 회장)는 전 세계 굶주린 이웃에게 떡과 복음을 전하겠다는 정신으로 1989년 설립된 개신교 국제 구호단체다. 해외 80여 개국에 580명의 봉사단을 파견해 구호 활동을 하고, 국내에서는 결손가정, 홀몸 노인, 장애인을 위한 복지사업을 벌이고 있다. 현재 후원 회원 45만 명, 한 해 예산 1500억 원에 달하는 대형 NGO로 성장했다.

기아대책은 작년 11월 말 급작스럽게 별세한 정정섭 전 회장을 대신해 올해 2월 이성민 선교사를 회장으로 선임했다. 이 선교사는 기아대책 설립 당시 간사로 근무하다 1995년 캄보디아에 선교사로 파견되어 19년 동안 봉사단 활동을 해 왔다. 기아대책 이사회는 이 선교사가 국제 구호 활동의 경험이 풍부하고, 기아대책의 가치와 비전을 올바로 이해한다고 판단했다.

새 회장을 뽑은 기아대책은 안정을 찾은 듯했다. 그러나 2008년부터 42억 원을 지원하고 경영에 참여한 선한이웃병원이 작년 9월 파산한 문제와 함께 후임 회장 인선을 둘러싼 갈등이 최근 외부에 노출됐다. 기아대책은 사단법인을 모법인으로 그 밑에 4개의 법인을 두고 있는데, 그중 하나인 사회복지법인 이사장 윤희구 목사가 4월 1일 언론에 호소문을 보내 이 문제를 공론화한 것이다. 윤 목사는 사단법인 두상달 이사장이 책임지고 사퇴해야 기아대책이 공공 NGO로 바로 설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 회장과 사무국은 4월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윤희구 이사장이 돌출 행동을 해 기구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 회장은 정관에 명시된 적법한 절차에 따라 자신이 선임됐고, 선한이웃병원 문제는 정 전 회장과 일부 측근들이 전횡한 결과라고 했다.

선한이웃병원에 42억 투입…병원은 경영 악화로 휴업

▲ 서울 노원구 월계동에 있는 선한이웃병원. 2013년 9월부터 경영 악화로 휴업 상태다. ⓒ뉴스앤조이 한경민

기아대책 내부에서 불거진 갈등의 핵심은 선한이웃병원 문제다. 기아대책 이사회는 2008년 8월, CCC 산하 아가페의료봉사단이 운영하던 선한이웃병원에 20억 원을 지원하고, 병원 이사장과 과반의 이사, 행정본부장직에 기아대책 인사를 파견해 경영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민간 구호단체와 전문 의료 기관이 결합해 전문적이고 효율적인 보건 의료 사업을 펼칠 수 있게 됐다고 호평했다.

그러나 선한이웃병원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2007년 4월부터 병원을 운영해 오던 아가페의료봉사단이 병원의 전 소유주와 채권자들이 제기한 소송에 휘말려 병원 경영 자금이 법원에 압류된 상황이었다. 기아대책은 2008년 20억, 2010년 14억 5000만 원, 2011년 7억 5000만 원 등 총 42억 원을 지급했지만, 병원은 경영 악화로 2013년 9월 중순부터 영업을 중단했다.

언론에 배포한 호소문에서 윤 목사는 재무 구조가 부실한 선한이웃병원에 후원금을 지원한 것은 전적으로 CCC 출신들이 요직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현재 명예이사장인 윤남중 목사는 고 김준곤 목사를 보필해 CCC 총무를 오랫동안 지낸 인물로 2008년 당시에는 사단법인 기아대책의 이사장이었다.

사단법인 두상달 이사장과 정정섭 전 회장 역시 김준곤 목사의 제자로 유명하다. 올해 회장으로 선임된 이성민 선교사와 김 아무개 경영지원본부장도 대학생 시절 CCC에서 활동했다. 이 중 윤남중 목사와 두상달 이사장, 정정섭 전 회장, 이성민 회장은 기아대책 설립 멤버이기도 하다.

윤 목사는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2008년 병원에 20억 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이사회의 이사들 과반이 CCC 출신이고, 정 전 회장과 선한이웃병원 이사장이었던 이건오 장로는 막역한 지기였다고 했다. 2012년 2월 총회에서 정 전 회장과 두상달 이사장이 병원 문제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기로 했는데, 현재까지 두 이사장은 물러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이성민 회장은 4월 23일 기자회견에서 선한이웃병원 지원은 CCC 출신 인사들 때문이 아니라 정정섭 전 회장과 측근 참모들이 독단적으로 밀어붙인 결과였다고 반박했다. 2008년 이사장과 이사로 있었던 윤남중 목사와 두상달 장로는 병원 경영을 반대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정 전 회장은 이후 이사회의 승인도 없이 2010년과 2011년 20억 원이 넘는 후원금을 병원에 지급해 손실을 더 크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이 회장은 정 전 회장과 참모들에 의해 이사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며, 현재 이사회 기능을 바로 세워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있다고 했다. 두상달 이사장도 적법한 절차를 따라 후임 이사장이 선임되면 즉시 이사장직을 내려놓겠다고 했다. 2014년 2월 총회에서 인선위원회를 구성했고, 현재 후임자를 물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기아대책은 4월 23일 서울 강서구 염창동 사무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성민 선교사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 회장이 됐다고 밝혔다. 또 윤희구 목사가 돌출 행동을 해 기구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뉴스앤조이 한경민

정 회장 측근들 '보복성' 인사 조치 주장…이성민 회장, "정당한 징계"

기아대책은 작년 한 해 후임 회장과 이사장을 인선하는 과정에서도 극심한 분쟁을 겪었다. 애초 2013년 2월 총회에서 구성한 인선위원회는, 후임 회장과 이사장으로 기아대책 이사였던 카이스트 김영걸 교수와 기아대책 산하 재단법인 국제개발원의 최대원 이사장을 내정했다.

하지만 윤남중 명예이사장과 두상달 이사장은 인선위원회가 자체 내규를 무시하고 명확한 기준 없이 후보를 뽑았다고 비판했고, 인선위원들의 반대와 불참으로 인선위원회는 파행을 맞았다. 김영걸 교수는 올해 1월 초 기아대책 이사직과 후보직을 사퇴했다. 윤남중 명예이사장과 두상달 이사장이 중심이 된 이사회는 이성민 선교사를 새 회장으로 선임했다.

부임 직후 이 회장은 정 전 회장 시절 핵심 참모였던 직원들의 직급을 낮추고, 지방으로 발령했다. 일례로 사무국에서 가장 높은 직급인 '특급 1호'이면서 총괄본부장이었던 김 아무개 목사는 지난 1월 16일 직급은 한 단계 떨어진 '1급'으로, 직책은 세종지역본부 부본부장으로 인사 조치됐다.

김 목사는 정 전 회장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자마자 두상달 장로와 이성민 회장이 사무국 본부장들을 향해 칼을 빼 들었다고 비판했다. 동료 중에는 권고사직을 당한 이들도 있다며, 10년 넘게 기아대책에 충성한 이들을 하루아침에 내치는 행태는 일반 기업에도 없는 일이라고 분개했다. 김 목사는 지난 1월 말 사직했다.

이에 대해 기자회견에서 이성민 회장은 정당한 징계 조치였다고 반박했다. 이들이 과거 사무국을 장악해 전횡을 일삼을 때, 두상달 이사장의 결재 없이 임의로 직책을 높였기 때문에 제자리로 돌린 것이라고 했다. 지난 1월 24일에는 윤희구 목사와 함께 기아대책의 사회복지법인을 장악하려고 공모한 일이 발각되기도 했다며, 기구를 전복시키려고 한 불법행위에 대한 정당한 징계라고 설명했다.

본래 취지 무색해진 병원 경영…"장기간 발목 잡을 수도"

▲ 이성민 회장은 올해 안에 병원 매각을 통해 42억 원을 보전하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한경민

기아대책은 손해액을 보전하기 위해 병원을 매입할 인수자를 물색 중이다. 이성민 회장은 4월 17일 <뉴스앤조이>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병원을 사겠다고 나선 곳이 있다며, 일차적으로 기아대책의 42억 채권을 변제받을 수 있도록 협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새 인수자와 협상이 잘 안 된다면, 42억 중 이사회의 결의로 나간 20억은 이사들이 사비를 내어 보전하고, 정 전 회장과 측근들이 집행한 나머지 22억 원은 법적인 대응을 통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 회장은 올해 안에 손해액을 보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가페의료봉사단 소속으로 2010년 1월부터 2011년 9월까지 병원장을 맡았던 김 아무개 씨는, 선한이웃병원이 자산보다 부채 규모가 더 크고, 대출 이자가 연체되어 현재 경매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따라서 막대한 부채를 떠안으면서 병원을 인수할 곳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병원 문제가 장기간 기아대책의 발목을 잡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단지 기아대책만 겪는 것이 아니다. 한동대학교는 의과대를 만들기 위해 포항 선린병원과 합병했지만 늘어나는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병원을 매각했다. 이 학교는 병원을 매각한 후에도 노조와 소송을 벌였고, 2011년 4월 법원으로부터 60여억 원의 퇴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예장고신의 복음병원도 부도 사태로 총회 전체 교회가 허리띠를 졸라야 하는, 총회 때마다 논란이 되는 뜨거운 감자였다.

기아대책이 국내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이웃을 돕는다는 취지로 선한이웃병원을 지원했으나, 경영 부실로 본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십시일반으로 모이는 후원금을 낭비한 셈이 됐다. 전문 의료 기관이 아닌 기독교 단체가 병원을 운영하려다가 어려움을 겪은 경우를 반면교사로 삼지 않고 똑같은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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