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상태 선생님에 이어서, 허형범 선생님도 양심선언에 나서는 모습을 보면서,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더 나아가 가뭄에 물을 만난 듯, 류상태 선생님은 ‘허형범 교사의 양심선언에 박수를 보내며’라는 글을 통해, 강요적 선교 방식을 철회할 것을 주장하고, 현직에 있는 기독교계 재직 선생님들을 향해 양심선언의 대열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글을 썼다. 마음이 참담할 뿐이다. 류상태 선생님의 글에 대한 반론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기독교계 학교의 건학 이념을 존중해주어야

숭실학교와 대광학교는 모두 선교를 위하여 세워진 학교다. 따라서 이러한 건학 이념을 부정하고, 선교를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과도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만일 교사 스스로 기독교를 부정하고, 선교적 입장에 동참하기를 거부한다면, 스스로 학교에서 물러나는 것이 옳은 것이지, 학교의 이념 자체를 바꾸라고 요구하는 것은 잘못이다. 학생들은 현재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학교에 들어왔다 하더라도, 교사들은 선택의 여지가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마치 다른 동료 교사들은 비양심적인 교사인양 매도하고, 혼자서만 양심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잘못이다.

분명 기독교계 학교에서 강요라고 생각되는 선교방식이 존재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허형범 교사는 여섯 가지 사례를 꼽았다.

(1) 아침 조회 경건회 및 종례 시 찬양 및 기도를 하도록 하는 행위
(2) 학생들을 제자 훈련 과정(알파코스)에 참여하게 하는 행위
(3) 일요일 종교 기관을 강제로 탐방하게 하는 행위
(4) 학생 예배 및 부흥회 개최 시 강제로 학생들을 참여하게 하는 행위
(5) 예배 시 학생들이 부담을 느낄 수 있는 헌금을 내도록 하는 행위
(6) 담임이 학생들에게 교회 출석을 권하는 행위

이러한 행위들은 학생들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고 하는 미국 내 기독교계 학교에서 행하는 것에 비하면 약과에 불과하다. 미국 내 기독교 학교에서는 단순한 성경 개요 정도가 아니라, 교리를 가르치고, 모든 행사 때마다가 기도를 하며, 식사할 때에도 단체로 기도하고, 선교사에 대한 후원을 하기도 하며, 마치 교회인지 학교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기독교식 교육을 진행한다. 한국의 미션스쿨은 성경 과목 시간이 있고, 예배 시간이 있으며, 수양회와 조회 때 기도하는 일도 있다. 미국의 미션스쿨에 비하면 너무 약과에 불과하다.

한국의 미션스쿨은 필자가 기독교계 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안다. 한국의 미션 스쿨에서는 더 나아가 의도적으로 기독교를 부정하는 학생들을 위하여, 어느 정도 자유를 허용하고 있다. 아침 조회 및 경건회 시 찬양을 하고 기도를 하지만, 찬양을 부르지 않는다고 하여, 기도할 때 눈을 감지 않는다고 하여 억지로 동참케 하지는 않는다.

사실 미션 스쿨의 문제는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다. 학생들에게 학교의 선택권이 주어져 있지 않고, 추첨에 의하여 입학하게 되는 시스템 하에서는 이런 문제점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계 학교는 동일한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학생들이 자신이 원하는 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학교의 선택권이 주어지는 방향으로 교육법이 개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경우, 공립학교는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학교로 가게 되어 있는 반면, 사립학교는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 학교를 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도 하루 빨리 개정되어, 학생들의 학교 선택권과 학교의 학생 선발권이 보장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보장이 없는, 현 단계에서 기독교계 학교는 선교적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 학생들을 강제로 기독교 의식에 동참시키기보다는 대안을 통해서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일에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류상태 선생님의 말처럼, 강요로 비쳐지는 선교에는 아무런 효과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발적으로 참석을 독려하고 기독교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법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미션 스쿨의 선교적 행위를 강요적 선교라고 매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불교계 학교나 천주교계 학교에서도 할 수 있을 법한 행위들을 의도적으로 강요적 선교라고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양심선언을 생각하는 선생님들에게

류상태 성생님의 선동을 듣고 있자면, 마치 대부분의 기독교 학교의 선생님들이 비양심적인 교사로 밥벌이를 위해 잠잠하고 있는 것처럼 비춰진다.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강요적 선교를 반대하는 양심선언이 아니다.

그 이유는 (1) 현재 미션스쿨의 선교 행위가 학교의 건학 이념을 따르는 것이며 (2) 거부자들을 위한 적절한 조치는 언제든지 강구되고 있고 효과적인 선교 방법에 대해서는 논의하면서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허형범 교사는 그동안 수차례 학교 측에 건의를 했지만, 무시당했다고 하는데, 과연 애정을 가지고 학생들을 신앙적으로 바르게 인도하기 위한 차원에서 그렇게 했는지 묻고 싶다. 허형범 선생님이 제시한 사례들을 듣자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 충분히 생각된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그들을 신앙으로 바로 서게 하기 위해서 기도했다면, 효과적인 선교방법을 참기위한 노력을 기울였다면 거부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교사들이 양심선언을 해야 할 것이 있다면, 비교육적 처사들에 대한 양심선언이 필요하다. 입시 지옥으로 몰고 가는 한국의 교육 체계, 성적순으로 학생들을 판단하고 획일화를 지향하는 교육 체계, 학생들의 특기와 재능들이 무시되는 교육 체계, 일방적 정치 이데올로기가 강요되는 교육 체계, 가족의 해체를 불러오는 교육 시스템,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교육 등. 한국 교육계에 있는 산적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기독교 선교 활동을 방해하는 방향으로 양심선언을 하는 것은 핀트가 맞지 않다.

이 시대의 문제는 기독교적 선교가 강요되는 데 있지 않고, 물질 만능의 세계관이 강요되는 데 있다. 허형범 선생님과 류상태 선생님은 이 시대의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그 문제를 개선하는 일에 동참해주기를 기원해본다. 기독교계 학교가 종교 색채를 배제하고, 영어나 수학을 잘 가르치는 것이 그 본연의 임무를 다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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