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까불고 장난치고 떠들고
잠시를 가만히 안 있던
웃음과 눈물로 세상을 배우며 흔들리며 꿈을 품던
친구와 다투기도 하고 몰래 분홍빛 사랑의 마음을 품기도 하던
하루에도 쑥쑥 몸과 마음의 키가 크던
제법 잘 자란 나무 같아 이내 큰 숲을 이룰 너희를 두고
얼마나 큰 무심함을 말하기 위해
하필이면 이름까지 '세월'이더냐

2
손바닥 뒤집듯
의리와 신의 하도 쉽게 뒤집는 세상
토사구팽의 '팽'(烹)이 떠오르기도 했다만
팽목항의 팽은
성, 나라 이름, 땅 이름 '팽'(彭)
배 하나가 아니라 이 땅과 나라가 뒤집혔더냐
나무가 거꾸로 솟았더냐

3
당혹감은 충격으로
안타까움은 슬픔으로
실망은 분노로
더 흐를 것도 없는 마른 눈물은 절망으로
맹골의 물살보다 더 빠르게
온 나라를 단숨에 삼키는 것 있다니

4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자다가도 몇 번씩
새벽 첫눈을 떠서도
한 가지 생각
꺼져 가는 등불 끄지 마소서
천 갈래 만 갈래
갈라지면서도

5
아무리 그래도 이럴 순 없잖아요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
누구에게 어디다 뱉어야 하는 것인지
하늘인지 땅인지
사방이 어둠이어서

6
감지 마라
눈을 감지 마라
생때같은 그 눈을 결코 감지 마라
눈을 떠라
감은 눈을 떠라
별빛 같은 그 눈빛 결코 거두지 마라
자식 같고 손자 손녀 같은 너희들을 두고도
한 마디 말도 없이
아니 거짓된 말만 남기고
저들만 아는 길로 서둘러 빠져나와
젖은 돈을 말리고 있던
거적을 깔고 앉아 벌을 기다리는
석고대죄(席藁待罪)도 모자란 판에
그 놈이 그 놈인 허공을 향해 호통만 치는
이 미친 세상 앞에
눈을 감지 마라
감은 눈을 떠라
이 땅의 거짓이 참으로 바뀌도록
고름보다 더러운 병이 드러나도록
너희들 두고 간 꿈이 이루어지도록
감은 눈을 떠라
눈을 뜨고 똑똑히 쳐다보라
거짓으론 결코 마주할 수 없는
이슬 같은 눈을 떠라

한희철 / 부천 성지감리교회 목사·작가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