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세월호 참사에 대한 방송과 언론에서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내용들을 보면서 욥기가 생각났습니다. 몹시 주관적인 느낌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우리 사회의 지식인들의 이런저런 설명과 주장이 욥의 세 친구의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말합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믿고 그분의 기적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자! 물론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때론 이런 기대가 달콤하지만 값싼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9.11테러, 대구 지하철 참사, 쓰나미, 일본 방사능 유출, 지진과 태풍 피해 등 온갖 참사를 뉴스를 통해 접했지만 하나님의 자비에 호소하는 수많은 간절한 기도에도 기적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 때론 우리의 기도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어떤 이는 십자가의 예수님이 그들의 고통과 함께하신다고 위안을 말하지만, 그 말은 고통당하는 당사자들이 할 말이지 지켜보는 우리가 할 말은 아닙니다. 상황 봐서 이야기 해야지 막상 본인들은 대체로 이런 말에 불난 집에 부채질한다고 더 분노합니다. 이를 WCC를 수용한, 혹은 다른 윤리적 죄악들 때문에 한국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는 이들까지 있습니다. 이 참사를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고 회개를 촉구하는 것은 지금 당사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엘리바스의 논지일 뿐입니다. 욥 5:17~27). 이 상황에서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도 안 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교리적인 차원에서 정답을 들이대는 것이 문제입니다. 욥기에서 가르치는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학적 정답이 아니라 고통당하는 당사자와의 올바른 관계 맺음입니다. 사랑과 연민이 넘치고 하나님의 지헤와 섭리를 파악하는 모습으로 와서 결국 당사자의 속을 뒤집어 놓는 욥의 친구들의 말과 행동은 위선만큼 나쁜 것입니다. 이제 욥의 세 친구같이 말하는 것은 삼갑시다.

기자들은 특보에 눈이 멀어 있는 듯 보입니다. 언론은 이 틈새를 노려 온갖 유언비어들로 가뜩이나 혹하기 쉬운 사람들을 현혹합니다. 사람들은 정부를 질타합니다. 분명히 합리적이지 못한 사고 지휘 체계로 실종자들을 구할 기회를 여러 번 놓친 것은 정말 망연자실할 일입니다. 그러나 부족한 면이 있겠지만 그들도 뒤늦게나마 자신의 관점에서 온 힘을 다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보면 이는 이해관계에 얽혀 세월호 수입 과정에서 부터 안전을 망각한 수 많은 책임자들의 개입과 이후 부실한 관리 체계, 안전 교육의 부족, 재난 대응 매뉴얼을 지키지 못한 정부의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이번 사고의 문제는 전문가들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괜히 나서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 있다는 책임 회피적인 태도로 방관하다 사고가 커진 것입니다. 이번 사건은 개인의 문제들을 넘어 국가적 살인이라 할 수 있지요. 뿐만 아니라 속보에 욕심을 내어 정확하지 않은 언론의 탐욕적인 보도 때문에 오히려 올바른 판단과 일의 진행이 더 더디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실제로 도움이 될 만한 정직한 발언, 현실적인 판단들도 쉬쉬하거나 매도당하고 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때 가족의 간섭은 절대 금물이라는 구조대의 철칙이 있습니다. 일은 이미 터졌고 위기 상황에 언론과 SNS의 여론 몰이는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다들 자기를 내세우거나 욕 안먹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들 눈이 뒤집힐 일이지만 그래도 분노에 휩싸인 질타는 삼가합시다. 아직 정확하지 않은 내용에 대하여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거리를 두고 조금은 무겁게 지켜보며 한발 느리게 판단합시다. 이럴수록 냉철한 이성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지도층은 어떨지 몰라도 평소라면 억만금을 주어도 들어가지 않을 장소에 국가의 명령에 따라 목숨 걸고 구조에 임하는 군인 잠수사들도 있습니다. 이미 생명을 잃은 분도 계시고요. 우리 구조를 위해 노력하는 모든 이들을 격려하면서 침착하게 우리의 일상에 충실했으면 합니다. 여러분이 하루종일 화가 나고 침울하다 해서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흔들림 없이 오늘 내 할 일을 합시다.

며칠 전 KBS 국장을 지내신 최길환 PD님과 이 참사에 관해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데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아프리카와 같은 제삼세계의 기아, 재해, 내전을 취재하다 보면 매일 사람들이 벌레처럼 죽어나가는 모습을 본다고요. 생명은 다 똑같이 소중하건만 우리는 그들에 대해 얼마나 많은 관심을 보였나요? 오늘 하루 동안에도 4만 명의 죄 없는 어린아이들이 기아로 죽어 갑니다. 천 원, 이천 원의 돈이 없어 해골에 가죽을 씌운 모습으로, 간단한 연고 하나가 없어 살이 썩어 들어가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단지 내 형제, 자매, 부모가 아니라는 이유로, 우리 국민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무관심 속에 죽어가고 있나요. 고통당하는 자들에 관한 관심이 거품 현상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답답한 마음은 이해합니다. 그래도 평상심을 잃지 않고 오늘을 충실하게 사셔야 불안한 우리 사회에 희망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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