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성금요일'이라고 불리는 날입니다. 영어로는 'Good Friday'라고 하지만 적어도 오늘만은 결코 '좋은 금요일'은 아닙니다. 엊그제 전라남도 진도 앞바다에 475명을 태우고 인천을 출발하여 제주도로 가던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해 온 나라가 슬픔과 비탄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179명만 구조되었고 나머지는 사망했거나 실종 상태에 있습니다. 실종자의 상당수가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라는 것이 더욱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승선한 단원고 학생 325명중 75명만 구출되었고 나머지 250명은 숨졌거나 실종 상태입니다. 국가적 총력을 다 쏟아 실종자들을 찾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비탄의 그림자는 진도 팽목 항구 바닷가에 깊게 드리우고 있는 실정입니다. 비극의 날들입니다. 끔찍한 금요일입니다.

때마침 전 세계의 기독교회는 예수님의 고난을 기념하는 수난주간을 지나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오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금요일입니다. 끔찍한 금요일이었습니다. 결코 좋거나 거룩한 금요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흘 만에 예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기적의 새벽을 맞이하게 됩니다. 부활주일입니다.

한국교회는 오늘을 지나면 내일모레 부활주일을 맞게 됩니다. 올해는 몇 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의 교회들이 교파를 초월해서 연세대학교 광장에 함께 모여 부활절 새벽 연합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부활절을 맞아야 할까요? '세월호' 침몰로 인해 혼란스럽고 공황에 빠진 당사자 가족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런 상황을 보면서 혼란스런 마음과 고통스런 심장을 갖고 부활절을 맞이해야 하는 크리스천들에게 교회의 지도자들은 뭐라고 말해야 하는가?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어떻게 부활절을 맞아야 할까?"라는 매우 도전적인 질문에 직면해 있는 것입니다. 매번 연합 예배를 조직할 때마다 "누가 어느 순서를 맡을 것인가?"와 같은 치졸한 자리싸움으로 얼룩졌던 과거를 기억할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거룩성을 상실한 지 오래된 병든 중환자처럼 너절하게 찢겨져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의 부패하고 무감각한 제사장 엘리의 '이카봇' 교회처럼, 한국교회와 그들의 몇몇 명예-탐욕스런 인사들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 버린 비극적 상태를 무시한 채 위험한 항해를 계속해 왔습니다. 이번 기회를 맞이하여 한국교회와 그들의 지도자들은 죽음을 경험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은혜로만 부활이 예기치 못한 선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경험하기를 소원하는 바입니다.

어쨌든 "이번 부활절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라는 피할 수 없는 질문에 정직한 대답을 해야 합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 한국교회는 정말로 죽어야 합니다. 죽은 척이 아니라 정말로 죽어야 합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습니다. 무슨 말을 하겠다고 강단에 올라갑니까? 값싼 은혜가 통용화폐로 사용되고 있는 즈음에 싸구려 부활을 선포하는 일은 멈추어야 합니다. 그러니 까불지 말고 조용히 지내야 합니다. 심지어 부활절에도 말입니다. 교회는 지금은 애곡하고 슬퍼할 때이며 풍악을 멈추고 자화자찬의 연회를 끝내야 할 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부활절은 단순히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라고 선포하는 날이기 보다는 "주님, 우리도 당신과 함께 부활하고 싶습니다!"라는 간절한 고백이 이루어지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겁니다. 물론 부활의 시간은 오직 하나님만 아실 것입니다. 우리는 죽어 있어야 합니다.

언제가 부활하고 싶다는 고백을 드려야 하는 시간입니까? 달리 말해 부활절에 무슨 말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무슨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지금, 애통하는 지금, 우리의 가족들과 친구들과 아이들이 스올에 있을 때, 깊은 흑암 속에 있을 때, 깊음들 가운데 있을 때, 죽음의 문턱에 있을 때,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절망의 그림자가 너무 짙을 때, 그때 우리는 부활을 고백할 뿐입니다. 위엄 있는 선포가 아니라 겸손하고 비천한 고백입니다.

우리의 고백은 이렇습니다. 아주 오래 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절망, 죽음, 비통, 스올, 흑암, 혼돈, 심연의 때를 지나면서 눈을 지그시 감고 두 손을 모아 하늘을 향해 고백했던 고백입니다.

"죽음도 생명도 그 어느 것 하나도 내 것이 아닙니다. 죽음과 생명은 나의 신실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습니다. 이것이 내가 이 세상을 견디어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위로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서 제1조항)

류호준 /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장 

*이 글은 '류호준 교수의 무지개 성서 교실'에서 가져온 글입니다.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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