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무언'. 진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세월호 침몰 사건에 관한 뉴스를 보면서 저는 이 사자성어를 생각했습니다. 희생당한 사람들을 생각해도 그렇고, 사고가 났을 때 책임 있는 사람들의 대처 방법을 생각해도 그렇고, 이런 사고를 원천적으로 만들어 낸 사람들을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슬픔이 정도 이상을 넘어가면 할 말을 찾을 수 없는 법입니다. 분노가 정도 이상을 넘어가면 적당한 말이 생각이 나지 않는 법입니다. 정말, 유구무언입니다.

이런 사건이 생기면 사람들은 묻습니다. "하나님은 어디 계셨습니까? 왜 하나님은 이런 일을 일으키셨습니까?"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신 분이니 그 사고 현장에도 계셨을 것입니다. 꽃다운 청춘들이 물에 잠겨 있는 그곳에도 하나님은 계실 것입니다. 그곳에서 함께 우셨을 것이고, 함께 아파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아무 일도 하지 않으셨냐고요? 왜 처음부터 그 사고를 막지 않으셨냐고요?

그 사고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이 사고는 수많은 사람들의 크고 작은 탐욕과 그릇된 선택이 쌓이고 쌓여서 발생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 사고를 막으려면 그 사람들 모두의 마음을 고쳤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실 때 자유의지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인간을 노예나 로봇으로 만들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며 살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마음을 고쳐먹지 않으면 하나님은 억지로 마음을 뜯어 열고 고치시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의 자유는 상실되고 맙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에게서까지 자유롭기를 원하면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면 왜 하나님이 막지 않았느냐고 질문합니다. 그렇게 질문하면서도, 자신이 행하는 일은 막지 말아 주기를 바랍니다. 모순도 이만저만한 모순이 아닙니다.

사실, 하나님은 그들 모두의 마음을 고칠 준비를 이미 오래 전에 해 두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우리의 죄 된 마음이 새로 지어지고 거룩하고 의롭게 살도록 마련해 두셨습니다. 이 사고를 예방할 만한 준비는 다 해 놓았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저마다 그것을 외면하고 자기 욕심대로 살기를 선택한 것에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희생자들의 고난의 현장에서 함께 아파하는 것 밖에 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십자가를 또 한 번 지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실종자 구조 과정에도, 사망자 수습 과정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의 애도 과정에도, 사고 원인 조사 과정에도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함께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소식을 듣고 함께 아파하며 기도하는 모든 이들에게도 함께하실 것입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만들어 내시도록 돕느냐, 아니면 여전히 우리 각자의 타락한 욕심을 따라 사느냐에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비난할 자격이 없습니다.

다시 한 번 주님의 자비를 구합니다.

김영봉 / 와싱톤한인교회 담임목사·목회멘토링사역원 원장, <가장 위험한 기도, 주기도>·<사귐의 기도> 등 저자

*이 글은 김영봉 목사의 와싱톤한인교회 목회 칼럼으로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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