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학이란 무엇인가> / 알리스터 맥그래스 지음 / 김기철 옮김 / 복있는사람 펴냄 / 1180면 / 4만 9000원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적어도 세 번은 놀라게 된다. 먼저 책의 분량에 놀란다. 무려 1177쪽이나 된다. 두께로는 자그마치 8cm. 300페이지 책 4권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겉만 봤을 때 책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쉽게 못할 것 같다. 책을 펼치자마자 두 번째 놀라게 되는데, 이 두꺼운 신학 책을 "16세 어린 학생들이 재미있게 잘 이해하면서 공부했다"는 이야기가 소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덮을 수 없다. 하지만 정작 더 놀라는 것은 책을 덮으면서다. 이처럼 방대한 신학 이야기를 어쩜 그리 잘 정리해 놓았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가 소개하는 자료의 양은 정말 경이롭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라! 정말 쉽게 읽힌다.

이처럼 분량과 주제에 비해 내용이 쉽고 간결한 것은 알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E. McGrath)가 기독교 신학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집필했기 때문이다. 교회의 역사와 신학 용어 등이 생경할 수밖에 없는 이들도 신학이라는 매력적인 학문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공부해 나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렇다고 내용이 빈약한 것은 결코 아니다. 목사인 내가 새롭게 접하는 내용이 많을 정도로 전문성도 갖추었다. 중요한 용어들은 해당 페이지 여백에 따로 소개하고 있고 책 마지막에 용어와 인명 색인을 따로 마련해서 필요하면 언제든지 찾아보도록 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읽어도 되지만 항상 옆에 두면서 필요할 때마다 찾아보며 도움을 얻는 책으로 활용하기에도 충분하다.

이 책의 초판은 이미 1993년에 나왔고 우리 손에 들려진 것은 2011년에 5판으로 출간한 것이다. 이렇게 판을 거듭한 것은 그동안 꾸준히 내용을 수정 보강했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학생들은 물론이고 여러 사람들의 의견에 귀를 열어 놓고 있다는 증거다. 그는 신학이 신학자들과의 끊임없는 소통과 대화를 통해 성장해 나간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신학함이 무엇인지 그가 이 책으로 몸소 보여 주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멈추지 않고 계속 내용을 고치고 보완해서 6판 출판(2016년)을 준비하고 있다니 정말 대단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책의 초판을 대한기독서회에서 <역사속의 신학>이라는 제목으로 1998년에 번역 출간한 바 있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길라잡이 : 시대, 주제, 인물로 본 기독교 신학'인데 기독교 역사를 초대교회부터 현대까지 시대, 주제, 인물별로 간추린 것이다. 전체의 1/5에 해당하는 이 부분만 잘 공부하더라도 기독교 역사에 대해 기초적이면서도 폭넓은 지식을 가질 수 있다.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스콜라주의와 중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보기에 스콜라주의란 기독교의 개념들을 더 명확하게 만들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그리고 중세는 암흑기가 아니라 도리어 은총과 칭의의 교리가 발전한 시기다. 이런 중세가 있었기에 종교개혁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더구나 종교개혁의 울타리 속에 가톨릭의 개혁을 포함시킨 것은 매우 이채롭다.

2부는 '자료와 방법론'인데 신학의 정의를 비롯해서 신학이라는 학문을 이루어 가는 자료와 방법에 대해 설명한다. 성경뿐만 아니라 전통과 이성 그리고 종교적 경험이 신학의 자료로 어떻게 활용되어 왔는지 200페이지에 걸쳐서 살핀다. 이것은 자연신학 즉 일반 계시와 직결되고 철학의 위치와도 관련이 있다. 그는 특히 신학의 분과 중 역사신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역사신학을 공부하면서 "신학에서 형성된 개념들은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이 아니고 부적합하거나 도움이 안 되는 것으로 판명된 과거의 신학 공식은 수정할 수 있다(260쪽)"는 것을 배우기 때문이다. 이런 그의 신학 방법론이 고스란히 이 책에 묻어 있다.

3부는 '기독교 신학'인데 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교의학의 주제를 따라서 신론, 삼위일체론, 기독론, 인간론, 교회론, 종말론은 물론이고 다양한 종교 이론을 소개하면서 타 종교를 바라보는 기독교의 시각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간다. 이는 종교 다원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 이 시대에 매우 적절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주의를 비롯한 개신교의 여러 교파에서부터 가톨릭, 정교회까지 기독교 역사에서 울려 퍼졌던 다양한 의견들을 간략하면서도 자세히 그리고 담담하게 서술해 가고 있다. "설명은 하지만 설득은 하지 않는다"는 집필 의도를 끝까지 관철하는 셈이다.

이처럼 "이 책은 신학적으로 중립을 지키며, 특정 교파의 견해를 옹호하지 않는다. 또한 특정한 견해들에 제기된 비판을 다루지만, 이 책 자체가 그러한 견해들을 비판하지는 않는다(16쪽)"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런 객관성은 처음부터 끝까지 놀라울 정도로 쭉 유지된다. 이것이 이 책의 큰 장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어렵다. 내용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신학적 견해를 듣고 스스로 평가하고 자신의 신학을 정립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독자들에게 대단히 유용하다. 그러나 알다시피 이것은 매우 힘든 작업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자신이 속한 교파의 신학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전수받는다. 그래서 그 교파의 신학을 뛰어넘기란 매우 어렵다. 물론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신학적 전통을 소중이 여기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다른 교파 신학에 대한 배타성으로 전환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저자도 이것을 기독교 신학의 가장 큰 약점으로 파악하고 있다(369쪽). 다른 교파의 신학은 아예 들으려 하지 않고 존중하지도 않는다면 스스로 입지를 좁히는 것이고 그 명맥이 장차 사라질 위험마저 있다. 지금 우리에게 전수된 신학은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것도, 땅에서 솟아오른 것도 아니라 여러 신학자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씨름해서 얻은 열매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바르트에 대한 이야기가 페이스북을 뜨겁게 달구었던 적이 있다. 알다시피 바르트 신학은 완전하지 않다. 하지만 그가 그 시대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리고 그가 20세기 신학의 교부라고 칭송을 괜히 받는 것이 아님을 안다면 그를 터부시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바르트와 대화하지 않고 그의 이야기에 귀를 막아 버리는 분들이 있다. 그래서 바르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린다. 그래서 이 책이 한국교회에 더 절실한지 모르겠다. 바르트를 비롯하여 교회사를 통해 꼭 집고 넘어가야 할 신학자들의 사상을 제대로 소개해 주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을 향한 비판이 있다는 점도 빠뜨리지 않는다.

맥그래스는 우리가 대화해야 할 상대에 가톨릭을 포함시킨다. 가톨릭을 이단으로,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알고 있는 보수적인 성도의 입장에서 보면 가톨릭에 대한 소개는 매우 전향적이다. 그는 이미 <기독교 그 위험한 사상의 역사>(국제제자훈련원, 2011)에서 가톨릭을 개신교, 정교회와 함께 기독교의 범주 속에 포함시키고 있다. 만일 이게 일반적인 견해라면 한국교회는 세계적인 흐름에서 이탈한 셈인데 어떻게 이 간격을 좁힐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이 책에 소개된 아퀴나스를 비롯한 가톨릭 신학자의 글은 물론이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자료들을 통해 이들과도 대화하며 가톨릭의 신학을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설명만 하고 설득하지 않는 것이 꼭 유익한 것만은 아니다. 책을 읽다 보면 그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을 만나게 된다. 예를 들어 피터 와그너는 신사도주의 운동으로 교회에 큰 물의를 일으킨 사람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여기에 대한 언급은 없이 오순절 운동을 주도한 인물로 소개한다. 마르키온 역시 정경의 형성 과정에서 이단으로 정죄된 사람인데 맥그래스는 그를 급진적인 인물로만 소개하며 루터와 연결시킨다.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대한 그의 설명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은 기독교 안에서만 주장해야 한다고 말한다(647쪽). 그는 아마도 타 종교에 대해 포괄적 입장을 견지하는 것 같다. 물론 보수 신앙인으로서 그의 견해에 동의하기 어렵다.

그러나 맥그래스가 자신의 입장을 받아들이라고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안다면 그리 놀랄 만한 것은 아니다. 종교 다원주의와 관련한 자신의 생각을 견지하면서 또 다른 입장을 듣고 배우면 된다. 그 또한 자신과 다른 나의 생각을 듣고 배울 준비가 된 사람이다. 혹시 자유주의와 바르트 그리고 가톨릭의 견해를 배우면서 그리로 경도되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도 이런 분들은 틀림없이 최근 논란이 되는 영화 '노아'를 보지 말라고 할 것 같다. 보면 위험하다고 생각해서다. 그러나 영화가 과연 위험한지는 차치하고서라도 그 영화를 보고 위험하다고 판단했다면 다른 사람도 그렇게 판단할 것이라는 생각은 못하는 것 같다. 보지 않는 것이, 읽지 않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칼뱅은 개혁된 교회는 계속해서 개혁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자신의 개혁 즉 자신의 신학이 완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겸손하게 인정한 것이다. 미완의 개혁 미완의 신학을 후배들이 보완해 주기를 기대하며 과감하게 자신을 밟고 지나가라고 등을 내준 것이다. 우리는 이런 훌륭한 선배를 두었다. 자신이 속한 교파의 신학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신학의 진보는 다른 생각을 가진 자들과의 대화와 소통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책은 이런 소통을 돕는 멋진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신학생들의 필독서다. 전수된 신학을 보수하면서 교파 신학의 담벼락 너머에 있는 사람들과도 대화하며 소통할 수 있는 여유가 절실하다. 이 책을 통해 교회의 역사를 통해 피고 진 다양한 생각들을 살펴보며 자신의 견해를 키워 나갔으면 좋겠다. 신학에 관심을 가진 대학생들과 평신도들에게도 이 책은 마른 땅의 가뭄을 해갈하는 단비와 같은 책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제대로 '신학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한국교회는 그야말로 '신학'이 있는 교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두껍다고 비싸다고 망설일 일이 아니다. 지금 당장 사서 책꽂이에라도 꽂아 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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