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교보문고 종교 분야 베스트 키워드는 단연 스님이다. 1위는 '즉문즉설' 투어로 뭇 중생들과 사찰 밖 '야단법석(野壇法席)' 중인 법륜 스님의 <인생 수업>이다. 2위 역시 법륜의 <스님의 주례사>다. <인생 수업> 출판일은 작년 10월 9일. 불과 3개월 만에 종교 분야 1위, 종합 베스트셀러 13위에 올랐다. 이 책은 2000년 이후 종교 분야로 출간되어 최초로 주간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2010년 출간된 <스님의 주례사>는 공고하게 스테디로 자리 잡았다.

▲ 2013 교보문고 종교 분야 베스트 1~3위(왼쪽부터) <인생 수업>(법륜, 휴), <스님의 주례사>(법륜, 휴), <성경과 5대 제국>(조병호, 통독원).

개신교 서적은 종교 분야 절대 강자?

3위 이후로는 개신교 책들이 강세다. 수년간 종교 분야의 절대 강자는 개신교였다. 실상은 좀 다르다. 작년 법륜의 책 판매량만 한정해 봐도 개신교 책들의 판매 부수는 스님들의 적수가 못 된다. 과거 법정이나 최근 혜민의 책처럼 스님들의 책은 일반 출판계에서 에세이 분야로 독자들을 만난다. 실제로 법정이 베스트셀러 순위를 오르내릴 때 종교 분야에서는 법정 이름을 찾아 볼 수가 없던 이유다.

IMF를 기준으로 베스트셀러를 살펴보면 저자 목록에 스님의 법명이 빠진 적이 없다. IMF 이후 불교계는 법정과 같은 '파워 저자'를 통해 줄곧 대중과 소통해 오고 있다. 입적 후에 출판 시장에서 자신의 법명을 스스로 지운 법정의 저자 파워가 고스란히 법륜으로 이어진 듯하다. 2012년과 2013년 양 해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혜민까지 치면 출판계의 스님들 용맹 정진이 확실히 먹힌다고 할 수 있다.

반면, IMF를 기준해서 개신교권에서 배출한 베스트셀러는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이나 <목적이 이끄는 삶> 정도다. 법정이나 법륜, 또는 혜민이 낸 책과 개신교 베스트셀러의 성격은 사뭇 다르다. <긍정의 힘>은 긍정적 사고를 강조하며 일반 독자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종교 서적이라기보다 자기 계발서로 독자들에게 다가선 지점이 있다. 개신교 안팎에서 책에 대한 여러 문제점들이 지적되었다. 내용적으로 개신교 복음을 담아냈다고 하기 어렵다는 게 비판의 골자다. <목적이 이끄는 삶>은 베스트셀러가 되긴 했지만 대다수의 독자가 개신교 신자였다. 개신교 독자 외에 일반 대중으로 외연을 넓혔다고 보기 어렵다.

스님들의 책은 대중이 찾을 정도로 매력이 있으면서도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불교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비근한 예로 불교계 대표 베스트셀러 <무소유>가 그렇다. 물론 법정이나 법륜 외 혜민으로 대표되는 신세대 불교권 저자들의 책은 다소 연성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말랑말랑하지만 대중적으로 소화하기에는 더욱 편해졌다. 종교 책으로 포장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불교를 담아내 독자들과 소통하는 것이 불교권 저자들의 강점인 셈이다.

▲ 2013 교보문고 베스트 1~50위 중 32위까지.

트렌드나 시대의 요구에 부합했다는 점에서도 불교계 책은 주목해 볼만 하다. 2012년과 2013년을 가로지르는 키워드는 '멘토'와 '힐링'이었다. 세파에 찌들고 상처 입은 독자들은 스승과 위로를 찾았다. 이런 현상에 대해 비판적인 혹자들도 있다. 독자들이 스스로 상처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힘을 얻을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는 측면에서는 중요한 대목이란 점도 분명하다. 이런 면에서 '힐링'과 '멘토' 키워드 자체는 고무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불교계 저자들은 이 트렌드를 이끌거나 거기에 잘 올라탔다.

불교 출판계에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저자 쏠림 현상이나 종의 다양성 부족 등의 문제가 상존한다. 불교계 저자들이 대중들과 훨씬 잘 소통하고 메시지도 더 잘 담아낸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하기 힘들다. 복음이란 지상명령은 내부 결속을 다지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 전파하는 데 더 큰 지향성이 있다. 외부 시장 개척의 문제는 언제나 개신교 출판계에 약점으로 지적되는 부분이다. 작년 역시 여전히 다르지 않았다. 개신교 출판계에서 '메시지의 진정성'과 '대중과의 소통'이라는 두 마리 토끼 잡기는 진정 요원한 일일까.

주목할 만한 흐름, 이원석과 김지윤

▲ <거대한 사기극> / 이원석 지음 / 북바이북 펴냄 / 252면 / 1만 3500원

이원석의 <거대한 사기극>이나 김지윤의 <달콤살벌한 연애상담소>등의 활약은 인상적이다. 두 저자 모두 개신교를 바탕으로 자기 계발서 비판이라는 문화 영역, 연애 카운슬링 영역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 주었다.

<거대한 사기극>은 출간 즉시 일간지 북 섹션에 수차례 소개되며 출판계에 주목을 받았다. 2013년 한국출판평론상을 수상하며 콘텐츠 측면도 검증됐다. <긍정의 힘> 유형의 개신교 기반의 자기 계발서를 열독하던 저자가 비판자로 돌아섰다는 이력도 인상적이다. 저자 이원석은 신학을 전공하고 문화 이론을 연구하는 연구자다. 개신교 내부에서 역량을 쌓고 이를 기반으로 비판적인 태도로 세상으로 나섰다. 개신교 신학과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지만 세상의 언어로 사회와 문화를 비판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눈여겨볼 만한 저자다. 기왕의 개신교 저자나 책들이 긍정적인 태도와 마음가짐을 기반으로 세속적인 성공을 거두자는, 자기 계발적인 접근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선 것과 대척 지점에 서 있다. 이런 면에서 이원석은 확실히 개신교 출판계 내부나 일반 출판계 모두에서 차별화에 성공을 거둔 셈이다. 다만 출판계나 매체들이 주목한 만큼 대중적으로 독자들의 호응을 얻지 못한 점은 다소 아쉽다.

김지윤은 SNS에서 큰 호응을 얻은 유튜브 강의 동영상으로 일반 독자들의 눈도장을 찍었다. 원래 그의 연애 강의는 개신교 대학 선교 단체나 교회 청년부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강의 내용 자체가 개신교 바깥의 대중들이 들어도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강의가 세상에서 먹힐 수 있던 비결이다. 한편 그는 '멘토'와 '힐링' 키워드에 부합해 개신교 쪽에서 가장 대중과 성공적으로 소통한 저자라고 평가할 수 있다. 내용적인 측면에서 그의 연애 강의에서는 오랜 신앙생활과 대학 선교 단체의 간사 경력을 통해 깔린 개신교 정서와 세계관이 느껴진다. 이를 바탕으로 '연애의 기술'이라는 훅으로 대중을 일단 휘어잡고 '연애의 진정성'에 대해서 전한다. 저자의 진심에 대중들이 반응한 것으로 보인다. 강연 중심으로 활동한 탓에 책이 제대로 부각되지 못한 부분은 있다. 저자에게는 '멘토'나 '힐링' 트렌드가 시들해져 가는 지점에서 어떻게 보폭을 넓혀 갈지도 숙제다.

'스테디가 베스트', '저자 파워' 현상 여전

▲ <메시지 - 구약 역사서> / 유진 피터슨 지음 / 복 있는 사람 펴냄 / 672면 / 1만 3800원

종교 분야 3위는 통박사 조병호 목사의 <성경과 5대 제국>이다. 개신교로만 치면 1위다. 조병호 목사의 1위는 이미 예견되었다. <성경과 5대 제국>은 2013년 내내 개신교 베스트셀러 수위권을 맴돌며 저력을 보여 주었다. 이 책 역시 2010년도에 출간된 책이다. 조병호 목사는 이외에 '통 시리즈'인 <전체를 보면 지름길이 보인다>, <통 성경 길라잡이> 두 권을 종교 베스트 100위권 안에 올려놓았다.

한 저자가 여러 책을 베스트셀러에 올려놓은 현상은 개신교 베스트셀러의 뚜렷한 경향이다. 내한 후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닉 부이치치의 책도 여러 권 보인다. 대체로 TV에 소개된 저자들의 책이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고 베스트셀러가 되는 경우가 많다. 닉 부이치치의 매체 출연 파괴력은 다소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닉 부이치치의 플라잉>, <닉 부이치치의 허그>, <닉 부이치치의 점프> 세 권 모두 종교 베스트셀러 50위 권에 이름을 올렸으나 기대만큼의 판매로 이어지지 못했다. 유튜브 동영상이나 매체에 이미 자주 노출되어서인지 책이나 저자 모두 독자에게 새롭게 다가서는 데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 저자가 여러 책을 목록에 올려놓는 현상에서 주목해 볼 만한 것은 단연 유진 피터슨이다. 유진 피터슨은 '메시지' 성경으로 교계에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작년 하반기에 출간된 <메시지 예언서>는 출간 후 개신교 분야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메시지 예언서>뿐 아니라 전에 출간된 <메시지 신약>(영한 대역 포함), <메시지 모세오경>, <메시지 역사서> 등도 모두 베스트 목록에 포함되었다. 성경이 이 정도로 독자들의 폭넓은 관심과 사랑을 받은 적이 또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성경 곁에 두고 읽는 성경, 즉 '곁 성경'의 흐름이 개신교 안에 생겨나고 자리 잡아 가고 있다. 한편으로는 교계 내부나 출판사에서 <메시지>를 전도나 선교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교계나 개신교 신자들 사이에서만 소화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메시지'가 되어야 할 과제가 <메시지>에 남았다.

집 나간 트렌드는 어디로 갔나

▲ <달콤살벌한 연애상담소> / 김지윤 지음 / 포이에마 펴냄 / 264면 / 1만 2000원

닉 부이치치와 유진 피터슨 외에도 여러 저자들이 다수의 책을 목록에 올렸다. 이런 현상의 배후에는 개신교 출판계의 흐름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놓여 있다. 저자 파워와 스테디만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정체를 의미한다. 한 저자가 줄곧 유지해 온 논조의 새 책과 수년 된 책들이 팔려 나가는 현상은 개신교 시장에서 트렌드가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증거다. 과거 개신교 출판계에는 '제자 훈련'이나 '영성', '선교' 등 나름의 트렌드가 존재했다. 베스트셀러나 출판 트렌드라는 것은 그 사회의 단면을 보여 준다. 현재 개신교 출판 동향으로는 개신교의 움직임을 도무지 파악하기 힘들다.

이와 관련해서 국내 기독교 저작권 전문 에이전시 '알맹2'의 맹호성 이사의 페이스북 게시물이 눈에 띈다. 맹 이사는 해외 출판사에 제시할 국내 출판사 판매 보고 자료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부각된 두 가지 정황을 포착하고 이를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첫째는 "작년에 이어 점점 더 스테디셀러가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정황이 흥미롭다. "무거운 신학서 내지는 진지한 책들이 점점 기독교 출판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일반 출판 시장으로 치면 '인문서스러운' 신학 책들이 개신교 출판 시장에서 점점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그간 마땅히 소개되어야 할 진지한 신학서가 국내에 잘 소개되지 않은 점은 종종 지적받은 바다. 이런 면에서 보면 일시적인 종수 증가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점을 고려한다고 해도 무게감 있는 책들이 속속 번역 출간되고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내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맹 이사는 이런 현상에 대해 "(개신교 출판 기획자) 모두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 "신학 지식이 있으면서 동시에 시장 감각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페이스북을 통해 말했다. 맹호성 이사가 포착한 기류가 과연 2014년 "진지한 신학서 트렌드"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개신교 출판사나 저자는 과연 언제 옷장 밖으로 나가게 될까? 한 동안 집 나갔던 트렌드는 과연 다시 집으로 돌아올까? 두 가지 중차대한 사안이 고스란히 개신교 출판계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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