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 선포, 혹은 영적 학대> / 데이빗 존슨, 제프 반본데른 공저 / 김광남 옮김 / 비전북 펴냄 / 388쪽 / 1만 6800원

2000초에 기윤실에서 건강교회운동본부 총무를 역임한 이후로 나의 머릿속을 항상 떠도는 주제는 바로 한국 기독교의 권위주의와 그에 따른 다양한 범죄와의 상관관계의 해명에 관한 것이었다. 이것이 한국교회만의 문제인지, 그러한 문제들의 기원은 무엇이며, 어떠한 결과를 낳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총무를 사임하고도 직간접적으로 이러한 문제들에 관여하게 되고 지켜보고도 별다른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문제였다. 그런데 최근에 읽은 본서가 그 많은 문제의식에 대한 객관적이고 철저한 분석과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요즘 우리나라도 대놓고 '상담'이 붐이다. 예전에는 주로 일대일로 비밀 상담이 있었는데, 요즘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한 상담이 인기다. 물론 건강 상담 등이 주류를 이루기도 했지만, 심리적 상담이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예를 들자면, "아이가 변했어요", "남편이 변했어요", "직장 상사가 변했어요", "선생님이 변했어요", 그런 류의 프로그램도 인기 상승 중이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들의 인기 비결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여러 차례 상담을 받으면 변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변하고 싶어하며 좋은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요즘에 새로 생긴 프로그램은 오랜 앙숙지간으로 지내는 사람들끼리 함께 지내면서 서로에게 가진 분노와 오해를 푸는 사례를 다룬다. 이들은 알아서 부대끼면서 서로 다투고 슬퍼하면서 양자 사이에 벌어진 문제들을 조금씩 풀어 간다.

이와 같이 개인이나 가족이나 직장과 같은 소규모 사회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들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정말로 기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다른 국면에서 남아 있다고 본다. 아니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이러한 것들은 빙산의 일각이다. 이와 같은 불화가 제도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심지어 특정한 집단이나 지역사회나 조직이나 국가적 차원에서 벌어진 문제라면, 그것이 범죄와 관련이 된 것이라면… 이러한 측면에서 발생한 문제들은 쉽게 공개적으로 방송국 프로그램으로 다뤄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한국과 같은 권위주의적이고 반민주주의적인 사회에서는 해결책을 찾기가 아직까지는 더 어려울 수 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볼 때도, 교회가 갖고 있는 폐쇄성 등으로 인한 영적인 학대(spiritual abuse)에 대한 논의는 시의적절하다고 본다. 이러한 영적인 학대는 이단 종파나 신흥 종교들의 독특한 문제가 아니라, 바로 소위 정통적인 교회들에서도 발견되는 '흔한' 문제라는 데 있다.

본서의 중요한 논지는 현재의 교회 상황 속에서 '좋은 밭에 나쁜 씨앗을 뿌리는 자들'과 '짊어지기 무거운 짐을 나귀에게 지우는 짐꾼들'을 발견하려는 시도다. 본서를 읽는 독자들은 미국적 상황 속에서 기록된 사례들이 완벽하게 한국교회의 상황에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놀랄 것이다. 본서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영적 학대와 그 희생자들을 다룬다. 2부는 학대하는 지도자들이 학대에 빠지게 된 이유를 다룬다. 3부는 영적 학대로부터 회복되는 방법을 다룬다.

1부: 영적 학대와 그 희생자들

교회에 다닌다고 문제가 없으란 법도 없고 문제가 있더라도 교회에서는 내색하지 말아야 한다는 법은 웬 말인가? 교회의 담임목사들을 포함한 교회 지도자들(심지어 일반 신도들)은 모든 문제를 인내와 기도와 믿음으로 해결되는 '영적인 문제'로 환원하는 버릇이 있다. 불평과 불만은 불신앙의 표시일 뿐이라고 말하거나 모든 문제를 영적으로 다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오만과 편견에 빠져 있다. 이와 같은 신도들의 문제뿐만 아니라, 교회의 리더십이나 제도를 통해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침묵하거나 순종하거나 믿음으로 행하기를 강요하는 모습이 쉽게 발견된다. 이와 같이 '영적인 지위를 사용해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거나 지배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영적인 학대인 것이다. 이때 당사자에게 주어지는 '영적인 무거운 짐'을 지게 하는 행동이 바로 영적인 학대인 것이다. 이것은 육체적, 성적, 정신적, 영적 영역에서 강압적으로 수행되기도 한다. 이것은 가정에서나 학교나 직장이나 지역사회에서나 국가적 측면에서도 행해질 수 있는 것이지만, 그것이 영적인 측면에서 강압될 때 영적인 학대인 것이다. 이것은 마녀사냥 혹은 희생양의 형태로도 나타난다. 그것은 지도자 개인, 혹은 지도자들, 혹은 교회, 혹은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시되어 강압적으로 순종하라는 요구로 나타난다.

영적 학대는 최근에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이미 성경 속에서도 많은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현대의 영적 학대는 더 세분화되고 더 교묘하게 진행된다는 점에서 세심한 분석과 대응이 필요한 상태다. 앞서 말했듯이, 학대자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 혹은 말씀)과 동일시하여 절대적인 순종을 요구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에 더 강렬한 학대를 저지른다. 이와 같이 학대를 당하는 자들이 학대로 인하여 겪을 수 있는 10가지 어려움을 제시한다. 저자들은 학대당하는 자들이 학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조건)도 제시한다. 그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학대 구조를 깰 수 있는 능력의 결핍과, 학대 시스템이 갖고 있는 헤어 나오기 어렵게 만드는 '덫' 구조다. 그러한 분석하에서 가장 중요한 경우로서 영적으로 학대하는 교회의 특징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교회(혹은 신앙적 조직)는 영적 권위에 대한 지나친 강조, 특정한 행위 수행에 대한 강조, 불문율, 진리에 대한 불균형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저자들이 이야기하듯이, 이러한 교회들의 특정적인 귀결은 성폭력으로, 그리고 그에 대한 무감각이나 은닉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것은 최근까지 권위주의적 교회들에서 나타나는 많은 사례들과 유사하다. 학대자들의 특징들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이나 지도자들의 영적인 권위, 그리고 교회론을 '지나치게' 숭상한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곡해하거나 남용하는 경향이 크다.

2부: 학대하는 지도자들이 학대에 빠지게 된 이유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지도자들의 학대는 그들이 지도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들은 가짜 권위 혹은 주어진 권위 이상의 권위를 남용한다. 학대하는 지도자들에게는 이중생활과 허튼 소리를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의 말과 행동이 다르고 그러한 것들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학대와 관련하여 권위를 남용하거나 오해하여 사용한다. 교회 목회자들의 잘못된 리더십은 '이미지' 목회 때문에 비롯된다. 목회자들은 연예인들이나 사회 지도자들처럼 이미지 목회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다. 사실 그러한 면에서 더 더욱 가식적이 된다. 목회자는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지만, 현실적이지 못하거나 그럴 만한 상황이 되지 못함에도 그렇게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만이 아니라, 신자들의 경우에도 율법주의적이거나 형식주의적이나 이미지 신자 행세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다. 결국 이러한 태도들은 누구도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게 만든다. 바늘귀를 통과하려면 그 모든 무거운 짐을 벗어 놔야 한다. 이것은 '죄' 짐이 아니다. 과연 우리는 죄의 짐과 허례허식의 짐을 구별할 수 있을까?

3부: 영적 학대로부터 회복되는 방법

지금의 학대하는 교회들은 영적인 덫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종교 중독에 빠져 있는가를 먼저 점검해야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 교회를 탈출하는 것이 급선무인데, 그와 관련해서 저자들은 몇 가지 전제 조건들을 제시한다. 먼저 자신이 학대를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로 영적으로 세뇌 당했던 마음의 갱신이 필요하다. 셋째로 영적인 상처로부터 치유를 얻을 수 있는 안전한 관계를 경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주신 진정한 정체성을 인식해야 한다.

역자가 주장하듯이, 이와 같은 영적인 학대의 중요한 일차적 책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담임 목회자 혹은 주설교자에게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한국교회는 단지 교회리더십의 정점에 위치한 목양 책임자들의 개인적인 결단이나 목양적 변화에만 기댈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본다. 물론 누구도 그 중요성을 부인할 수는 없겠으나, 현시점에서 한국교회가 겪고 있는 영적인 학대는 개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제도나 신학 자체가 크게 변질된 상황이라는 점에서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판단은 지난 10여 년간 벌어진 교회들의 다양한 영적 학대의 사례들만 분석해 보아도 현시점의 심각성은 부인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심각성에 대한 평가와 해결 방법에 대한 인식은 사람들마다 심각하게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우선적으로 동의해야 할 사실은 한국교회를 파괴하는 가장 큰 요소는 철학적 문화적 포스트모더니즘이나 신학적 자유주의나 물질 만능주의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한 점에서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에게 본서를 시급하게 읽도록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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