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TBC '뉴스9' 성탄절 메인 뉴스의 배경은 성탄절 예배 풍경이 아닌 조계사였다. 경찰의 수배를 피해 잠적했다가 성탄절 밤 조계사에서 모습을 드러낸 철도 노조 박태만 수석부위원장은 "(더 이상)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조계사밖에 없었습니다"라고 했다. (JTBC '뉴스9' 다시 보기 갈무리)

"오늘은 성탄절입니다만, 저희 기자들은 사찰에 가 있습니다." 12월 25일 전파를 탄 JTBC '뉴스9' 손석희 앵커의 오프닝 멘트가 한국교회의 현주소를 후벼 판다.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날, 사람들은 교회당에서 울려 퍼진 성탄 메시지가 아닌 조계사 마당에서 무슨 얘기가 나왔는지 귀 기울였다. 철도 노조 파업을 주도한 죄로 경찰에 쫓기고 있는 노조 수뇌부 중 네 명이 조계사에 피신해 있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조계사밖에 없었습니다." 경찰의 수배를 피해 잠적했다가 이날 조계사에서 모습을 드러낸 철도 노조 박태만 수석부위원장의 탄식 어린 발언이다. 병력 5000여 명을 동원해 민주노총 본부를 강제 진입하는 등 경찰의 대대적인 수사망을 피해 다닌 끝에 이들이 최후의 피신처로 삼고 들어간 곳이 조계사였다는 것이다.

조계종 호법국장은 "나가라거나 계속 머무르라거나 어느 말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에둘렀지만, 어느 신문기사의 제목처럼 조계사는 사전 허락도 없이 찾아온 이들을 품었다. 2008년 촛불 정국 때도 경찰에 쫓기던 광우병 국민대책위 집행부의 피신처가 되었던 조계사는 이제 권력에 맞서다 쫓기는 이들의 마지막 은신처로 각인되었다.

언론 보도로 퍼진 어느 조계종 관계자의 발언처럼 "찾아오는 짐승도 쫓지 않고 먹이를 주는 게 불교 정신"이라면, 기독교에는 구약의 도피성 제도가 있었다. 도피성이란 구약의 민수기와 여호수아에 등장하는 곳으로, 레위 지파가 거하는 성읍 중 피해 다니는 과실치사자들을 받아 주고 살 곳을 마련해 주도록 한 여섯 성읍을 말한다. 가톨릭의 명동성당이 민주화․인권 운동을 하다 수배된 이들을 보호해 준 명분도 구약의 도피성에 근거했다.

박 부위원장이 조계사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두 시간 전, 시청 광장에서 성탄 예배를 마친 목회자들은 십자가를 앞세워 조계사까지 행진했다. 이들은 조계사 정문 앞에서 함께 온 개신교인들과 정부의 철도 노조 탄압을 규탄하는 선언문을 낭독했다. 성탄절에 스님들이 교회당을 찾아온 게 아니라 목회자들이 사찰을 찾아간 역설적 순간이었다. 이날 펼쳐진 풍경은 당사자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한국교회의 초라한 자화상을 보여 주었다. 한국교회는 왜 그들의 도피성이 되지 못했을까.

▲ 12월 25일 시청 광장에서 성탄 예배를 마친 목회자들은 십자가를 앞세워 조계사까지 행진했다. 성탄절에 스님들이 교회당을 찾아온 게 아니라 목회자들이 사찰을 찾아간 역설적 순간이었다. ⓒ뉴스앤조이 한경민

국민TV 김용민 PD가 페이스북에 "만약 철도 노조 지도부가 여의도순복음교회로 피신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물었다. 150여 개나 달린 댓글의 화살은 비단 여의도순복음교회뿐 아니라 한국교회를 겨누고 있다.

일단 주거 침입으로 고소했을 것이라는 말이 눈에 띈다. 거의 모든 교회당은 평소 아무나 들어갈 수 없게 출입문을 걸어 잠근다. 박 부위원장은 사전 허락을 구하지 못했지만 조계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열린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당은 정해진 시간에 문을 열어 교인들을 위해서만 공간을 사용하는 폐쇄적 공간이 됐다. 홍익대 건축학과 유현준 교수는 얼마 전 <매일경제> 칼럼에서 "절은 외부 사람이 들어와도 그저 정원 마당에 들어가는 느낌"인 반면, 주일예배 중심으로 구성된 교회 건축 공간은 "비신자가 문을 열고 들어가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며 전도를 중시하는 교회가 건축적으로는 더 폐쇄적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당장 경찰에 신고했을 것이란 댓글도 많이 달렸다. 여기에는 교회가 권력에 맞선 이들의 편이 아니라는 인식이 담겨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뿐 아니라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교회는 거의 모두 권력의 편, 가진 자의 편으로 인식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보수·반공 세력을 대변하며 심심찮게 대규모 집회를 열어 존재감을 과시한 한기총과 장로 대통령 만들기에 혈안이 되었던 일부 목회자들의 행보도 이런 인식 조성에 한몫했을 것이다. 권력을 피해 다니는 이들이 권력의 편에 선 듯 보이는 곳에 몸을 맡길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물론 현대사에서 교회가 공권력을 피해 다닌 이들의 도피성이 되어 준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87년 6월 광주 서현교회는 거리에서 민주화를 외치다 최루탄을 맞고 경찰에 쫓기던 군중들을 껴안았다. 6·29선언이 있기까지 서현교회는 12일 동안 150~300명의 군중을 먹이고 재웠다고 한다. 종로5가는 어떤가. 7, 80년대 목요 기도회는 시대가 억누르던 외침이 울리던 광장이었고, 기독교회관은 명동성당과 함께 불의한 권력에 맞서던 이들의 은신처이자 주요 거점이었다.

성장주의와 개교회 이기주의에 함몰돼 사회적 신뢰를 잃은 교회가 이제라도 공공성을 회복하고 약자들에게 귀 기울여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하지만 수천억을 들여 범접하기조차 어렵게 화려한 교회당을 지어 놓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주저 없이 왕래하게 해 달라는 '유체이탈'식 기도가 울려 퍼지는 게 한국교회의 현주소다.

오늘도 한국 사회 어딘가에는 누군가의 도피성이 되어 주는 교회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폐쇄된 공간에 교인들만 모아 놓고 낮은 자리에 오신 예수의 탄생을 기뻐할 때, 갈 곳 없이 쫓기는 이들이 교회가 아닌 사찰로 찾아간 이 사건을, 구약의 도피성 정신을 상실한 한국교회 전체에 울리는 경종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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