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 북부 왼쪽에 있는 반타얀 섬. 섬은 작지만 타클로반, 오르목 다음으로 많은 피해를 입은 곳이다. 24명이 죽었고 수천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한국일보>는 지난 11월 반타얀 섬의 피해가 다른 지역에 비해 알려지지 않았고 거주하는 사람 중 90%가 빈민이라 복구가 어렵다고 보도했다. 구호에 소외된 이곳에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이 집을 지어 주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12월 21일 반타얀 섬으로 향했다.

험난한 반타얀 여정

타클로반에서 반타얀으로 가는 여정은 쉽지 않았다. '길어야 1박 2일이겠지'하고 출발한 반타얀행은 꼬박 2박 3일이 소요됐다. 오르목에서 반타얀으로 가는 배가 있다고 하길래 타클로반에서 3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오르목에 도착했다. 오르목 역시 태풍으로 건물 지붕이 형편없이 망가져 있었다. 하지만 항구는 배를 타려는 사람들과 노점 상인들로 활기가 찼다. 몇몇 은행과 음식점도 문을 열고 손님들을 받고 있었다.

▲ 오르목 항구. 버스를 기다리는 곳 지붕이 날아가 철골만 앙상하다. 비록 태풍이 쓸고 간 흔적이 아직 남아 있었지만 항구는 사람들로 북적대 활기찼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오르목에서 반타얀으로 직접 가는 배는 찾을 수 없었다. 무조건 세부를 거쳐야 했다. 세부로 들어가면 또 버스를 타고 배가 있는 지역으로 5시간을 올라가야 해서 날이 저물 것 같았다. 어떻게든 오늘 내로 반타얀에 도착해 보려고 방법을 찾았다. 항구 사람들이 레이테 섬 북쪽 산 이시드로(San Isidro)로 가면 배를 탈 수 있다고 했다. 서둘러 산 이시드로로 가는 봉고차를 탔다.

다시 3시간 정도 차를 타고 산 이시드로에 도착했다. 산 이시드로는 작은 항구 마을이었다. 이곳도 태풍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타클로반이나 오르목보다는 상황이 나은 듯했다. 지붕은 어느 정도 다 보수했고 마을 일부에서는 전기가 들어오기도 했다. 봉고차에서 만난 한 아저씨가 반타얀으로 가는 배를 소개해 준다며 안내했다.

하지만 이곳도 반타얀으로 가는 배는 끊긴 상태였다. 날은 이미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산 이시드로에서 하루를 묵어야 했다. 반드시 오늘 가야 한다는 조급함을 떨치자 그제야 항구 마을의 소박한 풍경이 보였다. 저무는 해에 바다가 붉은빛으로 물들어 갔다. 저녁으로 먹은 꼬치는 맛이 일품이었다. 아이들은 천진난만했고 마을 사람들은 친절했다.

▲ 반타얀 섬으로 가는 배가 끊겨 산 이시드로에서 하루를 묵을 수밖에 없었다. 작은 항구 마을의 석양은 아름다웠다. 카메라를 든 외국인이 나타나자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다음 날 아침 일찍 세부 북부로 가는 배를 탔다. 대나무를 엮어 만든 배였다. 잠깐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풍경이 떠올랐다. 열댓 명이 배에 올랐다. 4시간 동안 배를 타고 세부 북부 마야 말라파스쿠아(Maya Malapascua) 항구에 도착했다. 버스로 한 시간을 더 이동해 하그나야(Hagnaya) 항구에서 반타얀 섬으로 가는 배를 탔다. 1시간 30분 만에 드디어! 반타얀 섬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 다음 날 산 이시드로에서 대나무로 만든 배를 탔다. 이 배로 바다를 건넌다고 하니 잠깐 망설여졌다. 4시간 동안 배를 타고 세부 북부에 도착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한교연, 3000만 원으로 집 20채와 구호물자 지원…앞으로도 계속 집 지을 계획

반타얀 섬 산타 페(Santa Fe) 항구가 눈에 들어오자 양옆으로 아름다운 해변이 펼쳐졌다. 에메랄드빛 바다는 맑고 투명했다. 반타얀은 다이버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라고 한다. 멀리서 바라보는 반타얀의 해변은 멋진 휴양지였다. 나도 모르게 연신 셔터를 눌렀다. 날씨가 흐린 게 조금 아쉬웠다.

▲ 드디어 반타얀에 도착했다. 반타얀 섬은 다이빙 관광지라고 한다. 바닷물이 맑고 투명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하지만 거리로 들어서자 태풍이 할퀴고 간 흔적이 역력했다. 지붕이 벗겨졌고 벽이 허물어져 있었다. 집터만 남은 곳도 있었다. 나무는 뿌리째 뽑혀 나뒹굴었다. 사람들은 대충 지붕을 고쳐 놓고 해외 구호단체가 준 텐트에서 생활했다. 텐트 안은 무더웠고, 집을 새로 짓는 것은 더뎠다. 반타얀 섬에서 사역하고 있는 아프리카 가나 출신 사무엘 목사는 완파된 집이 많고 거의 모든 집의 지붕이 날아갔다고 피해 상황을 전했다.

또 다른 현지인 목회자는 음식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집을 보수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항구와 인접한 오코이(Okoy) 바랑가이(한국으로 치면 시 아래 동)와 발드비드(Baldbid) 바랑가이를 둘러봤는데 정말로 멀쩡한 집이 한 곳도 없었다. 한숨이 푹푹 나오는데 아이들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부러진 나무에 올라타며 저희들끼리 놀았다.

▲ 거리에는 멀쩡한 집이 한군데도 없었다. 사람들은 지붕이 날아가고 벽이 무너진 집을 임시로 고쳐서 살아가고 있었다. 구호단체가 나눠 준 텐트에서 사는 사람도 많았다. 한 현지인 목사는 지금 반타얀에는 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오코이 바랑가이에 사는 시샤르(66)의 집도 태풍으로 주저앉았다. 아내도 자식도 없이 혼자 사는 그는 무너진 집을 대충 추스르고 살고 있었다. 하지만 시샤르는 올해가 가기 전 새집에 들어간다. 그의 허름한 집 옆에 작지만 새집이 지어지고 있다. 한교연이 구호금으로 짓고 있는 집이다. 한교연은 반타얀 섬에서 집을 잃은 빈민들과 노인·아이들을 위해 집을 지어 주고 있다.

타클로반과 오르목에 구호가 집중되는 상황에서 한교연이 반타얀 섬에 눈을 돌릴 수 있었던 것은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 소속 이창용 선교사의 도움이 컸다. 이 선교사가 협력하는 교회가 세부와 반타얀 섬 등에 있었다. 그는 반타얀 섬의 사정을 접하고 한교연의 지원을 받아 20채의 집을 건설하고 있다. 

한교연은 11월 12일부터 지금까지 8000만 원 정도를 모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1차로 이창용 선교사에게 3000만 원을 지급했다. 반타얀 섬에 짓는 집은 한 채당 재료와 인건비를 포함해 4만 페소(한화 100만 원) 정도가 든다. 여기에 이 선교사가 쌀·물·통조림·라면, 빨랫비누, 태양열 랜턴 등 900만 원 상당의 구호물자를 준비했다.

한교연은 12월 26일 박위근 대표회장과 기성 조일래 총회장 등 관계자 12명과 기자 4명을 대동하고 반타얀을 방문해 집 봉헌 예배를 할 예정이다. 모금액이 구호 이외의 비용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최대한 방지하기 위해, 목사들은 모두 개인이 경비를 부담하고 실무자 2명과 기자들만 구호금으로 경비를 충당하기로 했다.

한교연의 집 짓기는 이제 시작이다. 한교연 사회문화국 신광수 국장은 나머지 구호금 5000만 원과 앞으로 모금되는 금액으로 집을 계속 지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창용 선교사는 반타얀 섬 근처에 태풍 피해를 본 작은 섬들이 많다며 구호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 집을 계속 지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태풍으로 내려앉은 집 옆에 시샤르의 새 집이 지어졌다. 한교연은 이창용 선교사를 도와 반타얀 섬에 작은 집 20채를 짓고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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