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태풍 하이옌으로 가장 큰 재난을 당한 지역은 타클로반이다. 타클로반은 레이테섬 북동쪽 사마르 지역과 연결되는 깊은 만에 있어서 태풍이 지나갈 때 쓰나미가 함께 덮쳤다. 바람이 지붕과 벽을 뜯어내고 파도가 사람, 물건 가릴 것 없이 쓸어 내렸다. 타클로반은 태풍으로만 피해를 입은 지역보다 상황이 심각했고, 이 때문에 수많은 구호 단체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필리핀 정부는 12월 31일로 긴급 구호를 종결하겠다고 선포한 상태다. 앞으로는 장기적인 재건으로 방향을 전환한다는 것이다. 전 세계 NGO들의 경쟁적인 구호 속에서 타클로반은 벌써 레이테주 북쪽에 신시가지를 만들 계획을 하고 있다. 시가 각 구호단체들에게 집을 지을 땅을 주고, 구호단체들은 집을 지어 시에 환원하는 것이다. 이미 상당 부분 계획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타클로반시는 현재 레이테섬 북쪽에 신시가지를 건설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정부가 임시 거주촌을 만드는 모습. ⓒ뉴스앤조이 구권효

예장합동·인광교회·임마누엘교회, 타클로반하비스트교회 중심으로 집 지어 주기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은 필리핀 긴급 구호에 거의 손을 쓰지 못했다. 총회는 11월 20일에야 모금을 시작했고,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할 총회세계선교회(GMS)도 12월 5일 필리핀 구호에 대한 결의를 했다. 의결 과정을 여러 번 거쳐야 하는 교단 구조상 NGO처럼 바로 나설 수는 없지만, 예장합동은 예장통합이나 감리회 등 타 교단에 비해서도 늦었다. 하지만 긴급 구호만큼 장기적인 재건 계획도 중요하기 때문에 아직 예장합동이 할 몫은 남아 있다.

예장합동과 인광교회(정순재 목사), 필리핀 임마누엘교회(조현묵 목사)가 12월 18일 타클로반하비스트교회(박노헌 선교사)를 중심으로 태풍 재해에 대한 장기적인 지원책을 논의했다. 타클로반에는 집이 무너져 살 곳을 잃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집을 지어 주자는 의견에 모두가 동의했다. 하지만 시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할 것인지, 아니면 따로 땅을 구입해 집을 지을 것인지 논의가 필요했다. 이들은 타클로반하비스트교회에서 4시간 동안 마라톤 회의를 했다.

회의에는 예장합동 GMS 김호동 선교총무와 선교사들, 인광교회 정순재 목사와 장로 세 명, 임마누엘교회 장로·집사 두 명과 박노헌 선교사가 참여했다. GMS 인사들은 12월 17일, 박노헌 선교사를 후원하는 인광교회는 16일 타클로반에 들어왔다. 임마누엘교회 교인들은 11월부터 매주 타클로반하비스트교회를 방문해 구호물자부터 인력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 예장합동 GMS, 인광교회, 필리핀 임마누엘교회가 12월 18일 타클로반하비스트교회에서 장기적인 지원책을 논의했다. GMS는 총회로 모인 1억 7000만 원 중 1억 2000만 원을 집을 짓는 데 사용하고, 5000만 원을 교회 복구에 사용하기로 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예장합동 총회에 필리핀 재해 구호금으로 답지한 1억 7000만 원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가 회의의 핵심이었다. 논의를 거듭한 후 GMS는 1억 2000만 원을 들여 타클로반하비스트교회 인근 지역에 집 70개를 짓기로 했다. 임마누엘교회가 섭외한 건축 전문가에 따르면, 벽돌을 기반으로 하는 집을 짓는 데 필요한 돈은 한 채당 150만 원 정도다. 집을 지을 땅 약 3000평은 인광교회가 구입하기로 했다. 임마누엘교회는 이 계획에 도움을 주면서 지속적으로 박 선교사와 장기 지원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타클로반하비스트교회에도 태풍으로 집과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많다. 약 30명이 교회 안에 있는 허름한 건물에서 생활하고 있다. 교회는 이들에게 매일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한다. 예장합동과 교회들은 단기적으로 집을 잃은 교인과 지역 주민이 생활할 수 있는 집을 지어 주고, 장기적으로는 그곳에 기술학교를 만들어 그들이 자립해 나갈 수 있도록 돕기로 했다.

이제 집을 지어 주는 것으로 큰 방향을 잡았을 뿐 아직 구체적인 부분은 준비되지 않았다. 땅만 하더라도 어디를 얼마에 구입할 수 있는지가 정해져야 한다. 사람들이 지금 살던 곳에서 너무 먼 지역에 집이 지어진다면 실제로 그곳에 가서 살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일자리나 인간관계 등 삶의 기반이 이미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가격도 적절해야 하고 도로·전기·상하수도 시설이 원만하게 들어올 수 있는 지역인지도 살펴야 한다. 집을 누가 지을 것인지도 논의가 필요하다. 살게 될 사람들이 직접 지을 건지 아니면 봉사자들을 동원할 건지도 정해야 한다. 의결 절차도 남아 있다. GMS는 예장합동 총회 구제부(노경수 부장)에 계획을 보고해 승인을 받아야 하고, 인광교회도 당회의 결의를 거쳐야 한다.

GMS는 나머지 5000만 원을 PCP(필리핀장로교) 소속 교회를 대상으로 부서진 예배당을 복구하는 데에 사용하기로 했다. 타클로반에 있는 4개 교회에 800만 원, 예장합동 소속 송명식 선교사에게 1000만 원, 일로일로 지역에 있는 PCP 소속 교회에 1000만 원을 지원하고, 나머지는 태풍으로 피해를 입은 PCP 소속 교회와 복음주의 교회에 쓰기로 했다.

▲ 타클로반하비스트교회에도 집과 가족을 잃은 교인들이 많다. 약 30명의 교인들이 예배당 앞 건물에서 생활하고 있다. 박노헌 선교사는 매일 이들의 먹을 것과 잠잘 곳을 책임지고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예장합동, 이번에는 '배달 사고' 없어야

2010년 아이티 대지진 이후 근 4년 만에 해외 구호를 진행하는 예장합동의 걸음은 조심스럽다. 지금까지 해외 구호를 할 때마다 배달 사고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2008년 미얀마 사이클론 재난 때 '구제부 횡령 사건'을 시작으로, 2009년 일본 대지진, 2010년 아이티 대지진 때도 모금한 금액이 피해 지역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물의를 빚었다. 특히 아이티 구호금 사건은 4년 가까이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심은 대로 거뒀다. 예장합동 소속 교회들은 총회의 모금을 불신하고 있다. 재난이 일어났을 때 총회가 모금을 해도, 교회들은 헌금을 모아 구호단체에 전달하거나 직접 현장에 나선다. 이번에도 역시 그런 교회가 많다. 대구에 있는 한 교회는 총회가 아닌 모 NGO에 1억 원을 내놓았다. 인천의 한 교회 장로는, 총회에 돈을 보내면 중간에 새는 일이 많기 때문에 직접 피해 지역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교단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서 총회 구제부는 11월 20일 교단지에 광고를 내고 모금을 시작했다. 구제부 노경수 부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교단의 현실을 인식하고 있으며 구호금이 많이 모이지는 않겠지만 적은 금액이라도 투명하게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GMS 김호동 선교총무도 큰일을 벌이지 않고 작은 일이라도 제대로 마무리 짓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필리핀 구호를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교단이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도록 투명하고 정직하게 일하겠다고 말했다.

구제부는 12월 31일까지 모금을 진행할 예정이다. 열흘 남짓한 기간 동안 성탄절이 끼어 있어 구호금은 약 2억 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구제부 임원들은 내년 1월 타클로반을 방문해 피해 지역을 직접 둘러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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