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향교회가 소속된 서울남노회가 12월 17일 예장고려를 탈퇴했다. 비록 총회 소속 한 개 노회의 탈퇴이지만, 서울남노회에는 재적교인 2만 명이 넘는 경향교회가 있어 사실상 총회는 두 쪽이 났다. 경향교회는 1976년 예장고신에서 분리된 이후 예장고려의 모교회의 역할을 해 왔다. ⓒ뉴스앤조이 한경민

한국교회에서 가장 보수적인 교단으로 손꼽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고려 총회(예장고려·천환 총회장)가 두 쪽으로 쪼개졌다. 총회 소속 서울남노회(김길곤 노회장)가 12월 17일 임시 노회를 열어 교단 탈퇴를 결의했다. 표면상 총회 소속 한 개 노회의 탈퇴이지만, 서울남노회에는 총회 전체 재적 교인 4만 명의 절반 이상이 등록된 경향교회(석기현 목사)가 있어 사실상 붕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경향교회, 임시 노회 통해 총회 탈퇴

▲ 경향교회가 총회를 탈퇴한다는 소식을 뒤늦게 안 장로들이 노회의 결의를 막으려고 뛰어왔지만, 이미 회의장은 굳게 잠겨 있었다. 김 아무개 장로는 불법 결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문을 열라고 소리쳤다. ⓒ뉴스앤조이 한경민
▲ 노회의 총회 탈퇴가 가결되자, 장로들은 불법 결의를 취소하라고 소리쳤다. 이들은 한동안 몸싸움을 벌였고, 충돌은 신고를 받고 온 경찰관에 의해 수습됐다. ⓒ뉴스앤조이 한경민

"이럴 수는 없어, 이건 불법이야!" 큰 키의 건장한 중년 남성이 임시 노회가 열린 경향교회 제2성전으로 뛰어오면서 소리를 질렀다. 제2성전은 굳게 잠겨있었고, 문 앞에는 정장을 입은 교회 전도사들이 일체 출입을 금지하고 있었다. 뛰어온 남자는 문을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리며 열라고 다그쳤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입구를 지키던 전도사들은 그를 쳐다만 볼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문을 열라고 소리를 지른 이는 경향교회 김 아무개 장로다. 김 장로는 교회와 노회가 불법으로 교단을 탈퇴하려 한다고 했다. 그의 뒤를 따라온 십여 명의 장로들도 같은 주장을 했다. 충돌은 제2성전 문이 열리면서 더욱 격화됐다. 장로들은 임시 노회를 끝내고 나가는 노회원을 향해 불법 결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소리쳤다. 몸싸움이 한동안 지속됐고, 신고를 받고 온 경찰관에 의해 가까스로 수습됐다. 홍 아무개 장로는 교회가 불법 단체가 됐다며 통탄했다.

장로들의 말에 따르면, 교회의 총회 탈퇴는 교회 설립자이자 현 석기현 담임목사의 아버지인 석원태 목사를 살리기 위함이다. 올해 불륜 의혹이 불거진 아버지 석 목사를 총회가 제명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임시 노회가 열리기 하루 전인 12월 16일, 석 목사의 불륜 의혹을 조사한 총회는 만장일치로 석 목사를 제명하는 데 동의했다.

▲ 1973년 교회를 개척한 석원태 목사는, 교회를 재적 교인 2만 명에 육박하는 대형 교회로 성장시켰다. 1976년 예장고신에서 나온 이후에는 예장고려의 실질적인 지도자로 교단을 이끌었다. 총회장과 총회 유지재단 이사장, 고려신학교 교장의 지위를 오랫동안 맡았고, 교회 내 모든 조직의 대표로 있었다. (경향교회 석원태 목사 설교 동영상 갈무리)

사실 총회의 석 목사 제명 움직임은 파격적인 행보다. 석원태 목사는 신성불가침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총회에 상징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경향교회를 재적 교인 2만 명에 육박하는 대형 교회로 성장시킨 석 목사는, 1976년 예장고려가 예장고신에서 분리된 이후 총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했다. 총회장과 총회 유지재단 이사장, 고려신학교 교장이라는 지위에 오랫동안 있었다.

교회 내에서는 1990년 경복여고와 경복여정고(현재 경복비즈니스고)를 인수해 학교법인 경향학원을 설립해 이사장을 지냈다. 또 교회가 소유한 복지 법인과 선교회, 출판사의 대표 역시 석 목사였다. 따라서 석 목사가 없는 총회와 교회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처럼 절대적인 지위를 가졌던 석 목사는 2003년 장남인 석기현 목사에게 담임목사직을 세습했다. (관련 기사 : 고려파 대표 교회 경향교회 "너마저 세습!")

아내를 통해 불거진 불륜 의혹

총회와 교회에서 일인자의 지위를 누렸던 까닭에 석 목사의 불륜 의혹은 충격적이었다. 교회 안에서 석 목사의 간통 소문이 처음 불거진 것은 올해 7월이다. 놀랍게도 이 문제는, 석 목사 아내의 폭로로 교회에 알려졌다. 석 목사의 아내가 석 목사와 한 여권사의 불륜 사실을 주변인들에게 털어놓은 것이다.

▲ 교회 내 일부 안수집사들을 중심으로 석원태 목사의 회개를 촉구하는 개혁집사회가 조직됐다. 이들은 '개혁하라'라는 온라인 사이트를 만들어 석 목사의 불륜 의혹과 관련된 자료를 모아 게재했다. ('개혁하라' 홈페이지 갈무리)

이 소문은 석원태 목사가 30여 년 전에도 고려신학교 한 여직원과 내연 관계를 맺었다는 소문과 함께 일파만파 교회 안에 퍼져 나갔다. 일부 남전도회 안수집사들은 석 목사의 회개와 참회를 요구하며, '개혁집사회'를 조직했다. 이들은 석 목사의 불륜 의혹 관련 정황증거들을 수집해 교인들에게 폭로했다. 이들은 온라인 사이트 '개혁하라'를 만들어 관련 자료를 게재했다.

경향교회는 석원태 목사가 원로목사직을 포함한 모든 공식 직위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석기현 목사와 교회 장로들은 8월 25일 당회를 열어 석 목사의 사임서를 수리하고, 다시는 불륜 의혹을 제기하지 않기로 결의했다. 석 목사가 맡고 있던 경향선교회 회장직과 경향학원 이사장직은 아들인 석기현 목사가 물려받았다.

개혁집사회, 진상 조사와 징계 요구…총회는 인정, 교회는 면직·제명

교회 개혁파 장로들과 개혁집사회는 간음죄를 지은 석 목사의 사임 처리는 솜방망이 징계라고 반발했다. 개혁집사회는 석기현 목사와 당회가 석 목사의 죄를 은폐하고 있다며, 사건의 분명한 진상 조사와 합당한 징계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11월 4일 석원태 목사의 제명을 호소하는 내용의 글을 총회 소속 200여 명의 목회자에게 발송하고, 21일에는 노회에 같은 내용을 청원했다.

서울남노회는 실체가 없는 의혹만으로는 재판을 열 수 없다고 개혁집사회의 청원을 기각했다. 김길곤 노회장은 제명을 하려면 그에 대한 명확한 사유가 있어야 하는데, 석 목사의 불륜 의혹은 소문만 있고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고 했다. 만약 재판하려면 당사자들과 관련자들을 모두 소환해 조사해야 하는데, 그러면 교회가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얻게 될 것이라고 했다.

반면, 총회는 개혁집사회의 손을 들어 줬다. 노회와 교회로부터 거부당한 개혁집사회가 노회 내 문제의식을 가진 목사들의 힘을 얻어 총회 운영위원회에 석 목사의 불륜 의혹을 조사해 줄 것을 청원했고, 총회가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총회는 석 목사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12월 5일 총회장을 위원장으로 한 현교단상황에대책수립을위한전권위원회(전권위·천환 위원장)를 구성해 조사를 벌였다.

▲ 경향교회는 12월 8일 임시 당회를 열어 개혁집사회 핵심 회원 5인을 치리했다. 이들이 석원태 목사의 불륜 의혹을 다시는 제기하지 않는다는 당회의 결의를 거역하고, 불법 자료를 만들어 교인들에게 유포했다는 이유다. (경향교회 홈페이지 주보 게시판 갈무리)

총회 전권위 조사에 압박을 느낀 경향교회는 개혁집사회를 쫓아냈다. 교회 당회는 12월 8일 임시 당회를 통해 개혁집사회 핵심 회원 5인을 면직·제명했다. 이들이 악의적으로 교회와 담임목사를 비방하고, 불법 자료를 만들어 교인들에게 유포했다는 이유다. 또 8월 25일 석 목사의 불륜 의혹을 종결한 당회의 결의를 거역했다는 것이다.

총회와 교회의 입장이 정반대로 갈리면서 하루 간격으로 갈등은 심화됐다. 경향교회는 총회 전권위가 진상 조사를 멈추지 않자, 12월 15일 임시 당회를 통해 행정보류(상위 기관의 행정절차를 따르지 않는 조치)를 결의했다. 이 과정에서 교회는 절차상 무리수를 뒀다. 장 아무개 장로는 행정보류 안건은 당회원 3분의 2의 찬성이 있어야 하는데, 석기현 목사는 과반수의 찬성으로 안건을 통과시켰다고 했다.

교회의 행정보류 선언에 총회는 12월 16일 석 목사 부자가 교단을 분열시키려 한다는 사유를 붙여 18일 제명하기로 했다. 대신 석기현 목사가 이틀 안에 행정보류를 철회하면, 제명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하지만 교회와 노회는 바로 다음 날인 12월 17일, 총회를 탈퇴하는 강수를 뒀다. 경향교회 석기현 목사는 12월 17일 임시 노회에서 총회 탈퇴 안건을 발의했다. 이 안건은 찬성 52 대 반대 10으로 가결됐다. 임시 노회에서 김길곤 노회장은, 총회가 노회와 당회를 무시하고 월권을 행사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석 목사가 제명되기 전에 총회를 탈퇴했으니, 이제 총회의 행정처분은 효력이 없다고 강조했다.

교회와 총회의 '성명전'…석기현, "교단 탈퇴는 교권주의 횡포 때문"

노회의 교단 탈퇴 이후 경향교회와 총회는 서로 성명을 내며 진실 공방을 벌이고 있다. 먼저, 총회는 노회의 탈퇴가 불법이라고 규정했다. 성명에 따르면, 총회 전권위는 12월 18일로 예정된 모임을 긴급하게 앞당겨 17일 오전에 석원태·석기현 목사를 제명하고, 노회가 총회를 탈퇴하기 전에 이 사실을 통보했다. 따라서 이미 제명 처리된 석기현 목사가 발의한 총회 탈퇴 안건은 자연히 무효가 된다고 했다. 경향교회 개혁파 장로 30여 명도 서명으로 동참했다.

석기현 목사는 총회 성명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교회 홈페이지를 통해 반박문을 발표한 석기현 목사는, 교회가 임시 노회 전 총회 전권위의 소집 통보를 받은 적이 없고, 노회 소속 전권위원들도 석원태·석기현 목사를 제명한 사실을 몰랐다고 했다. 또 총회에서 석기현 목사를 제명했다고 통보한 시각도 이미 탈퇴 안건이 발의되어 표결만 남은 때였다고 강조했다. 석 목사는 총회 성명에 동참한 30여 명의 장로 중에는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허위로 기재된 이들도 있다고 했다.

석기현 목사는 총회가 교회와 노회의 행정 절차를 무시하고 교회의 일부 집사들과 정치 목사들에 휘둘렸다고 비판했다. 적법한 절차를 따라 종결한 사건을 총회가 재론하여 혼란을 줬다는 것이다. 석 목사는 교권주의의 횡포로부터 교회와 노회를 보호하기 위해 합법적인 절차와 압도적인 찬성 표로 탈퇴를 결의했다고 했다.

경향교회바로세우기모임 발족…석원태 목사의 공적 회개 요구

▲ 경향교회 개혁파 장로와 집사들이 교회 개혁의 뜻을 모아 경향교회바로세우기모임을 12월 18일 연동교회 다사랑 카페에서 발족했다. 이들은 교회의 총회 탈퇴를 규탄하고, 석원태 목사가 한국교회 앞에서 공적으로 죄를 자복해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한경민

석원태 목사의 불륜 의혹으로 시작된 갈등이 총회 분열로 격화된 가운데, 경향교회 일부 교인들은 12월 18일 경향교회바로세우기모임(경바모)을 발족했다. 개혁집사회를 주축으로 장로 30여 명과 교인 100여 명이 교회 개혁에 뜻을 모아 결성했다. 경바모는 연동교회 다사랑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교회의 총회 탈퇴를 규탄하고, 석원태 목사가 죄를 자복하고 한국교회 앞에서 공적으로 회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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