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 11월 15일 교회재정건강성운동본부가 주체한 2013년도 교회재정세미나 '가이사의 것을 하나님에게?'의 발제문 요약문입니다. 총 3회로 나눠 게시하기로 했던 발제문 전문을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요약문으로 변경해 올립니다. 발제자가 직접 요약한 발제문입니다. -편집자 주

Ⅰ. 여는 글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복지 세금 국가로 접어들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기독교 공동체가 지녀야 될 세금에 대한 바람직한 입장을 정리해 보고자 함이다. 복지 세금 국가란 복지 수요를 세금으로 조달하는 형태의 국가재정 상태를 의미한다. 2014년도의 경우 우리나라의 세입액은 230조 원으로 추산되고 이 중 복지 지출은 103조 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를 풀어 설명하면 세금 1000만 원을 납부하면 이 중 400만 원 정도는 국가로부터 복지 예산(육아 수당, 출산 수당 등)의 명목으로 돌려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납세자는 종전의 세금에 대한 입장, 즉 국가에게 재산을 강제로 빼앗긴다는 시각에서 이제는 '정당하게 납부(세금)하고 합당하게 돌려받는(복지) 시대'로 시각이 변모하고 있다.

반면 기독교 공동체는, 목회자의 납세 여부를 둘러싼 논쟁처럼,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것이 마치 특권인 듯이 비춰지는 현실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기독 공동체가 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나라의 확장에 있는 것이다. 아울러 기독 공동체가 국가로부터 급여 생활자, 영리법인 등에 비추어 상대적·우월적 세금 대접을 받는 것이 과연 전도에 유익한지는 살펴볼 일이다.

Ⅱ. 세금을 둘러싼 정치권과 종교계의 갈등

세금의 역사는 인권 투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그나카르타의 주된 내용은 세금 조항이다. 같은 내용이 권리청원에서도 반복되고 있고 명예혁명에서는 "의회의 승인 없이는 과세할 수 없다"까지 발전하였다. 프랑스 인권선언(1789)에서는 현대 조세제도의 근간인 조세법률주의와 조세공평주의가 선언되었다.

1. 세금의 역사

세금의 존재는 국가가 인류 사회에 등장하기 전부터 존재했다. 부족국가 시대에도 외부로부터의 적의 침략을 방어하고 스스로 공동체를 운영하기 위해 부족 구성원들이 일정량의 곡식을 거두었다.

동양에서의 대표적인 세금은 조(租)·용(庸)·조(調)로 구분된다. 조(租)는 토지의 사용 대가로 국가에 내는 부담금을 의미하고, 용(庸)은 국민의 노동력을 국가에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조(調)는 특산물을 납부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를 공물(貢物)이라고 한다.

2. 신약성경 시대의 세금

예수님 생존 당시의 세금을 살펴보면, 로마법에 근거하여 식민지가 부담하는 세금과 유대인 자치법에 따른 종교세(성전세)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마태복음의 저자인 마태의 직업은 세관장이었다. 즉, 예루살렘 성곽을 중심으로 그 성문을 출입하는 사람 또는 물건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였다. 같은 무렵에 삭개오가 등장한다. 당시 세제는 로마가 일정한 할당액을 이스라엘 세무 당국에게 부여하면, 세무 공무원은 그보다 20~30% 이상 징수하고 그 차액을 착복했다. 오죽했으면 세례요한도 "너희에게 정해 준 것보다 더 받지 마라"고 했을까(눅 3:13). 이래서 당시 이스라엘인들은 로마인보다 오히려 세리를 더 증오하고 악질적인 사람으로 여겼을 것이다. 이 시대에 군중들로부터 왕따를 당한 삭개오의 슬픔 모습도 보인다(눅 19:1~10).

한편, 유대 종교 자치세로 성전세(Temple Tax)가 있다. 예수님이 자기 집을 들어가는데도 성전세를 납부해야 하는가? 예수님의 세금관은 분명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해야 하니, 네가 바다로 가서 낚시를 던져, 맨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서 그 입을 벌려 보아라, 그러면 은전 한 닢이 그 속에 있을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내어라(However, we don't want to offend them, …and pay the tax for both of us)."요즘 시대는 세관이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한편, 바리새인과 헤롯당원은 예수님을 조세 불복 운동의 주동자로 몰아서 처형할 목적으로 로마 식민지 정부에 대해 세금을 납부하여야 하는지 떠본다. 이에 대한 대답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Give to Caesar whats belongs to him. But everything that belongs to God must be given to God)"이다.

현대말로 바꾸면, 세법에 따라 세금을 내라! 그리고 동시에 율법에 따라 십일조를 정확하게 납부하라는 것이다. 이 무렵에는 종교와 정부가 일치하던 󰡐제정일치 시대󰡑에서 종교와 정부가 분리되어 가는 󰡐제정분리 시대󰡑로 가고 있었다.

따라서 헤롯의 유대 정부에게 납부하는 소득의 십일조 세금이 과연 합법적이고 종교적으로 문제가 없는지에 대해 그들도 고민을 하고 있었다. 왜냐면 그들이 납부한 세금이 유대가 아닌 로마 정부로 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세금을 안 낸다면 로마에 대한 반역죄가 될 것이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어려운 문제를 예수님에게 물어서 그를 제거하려는 의도였다고 본다. 특히 바리새인의 눈에는 예수님이 안식일에도 병자를 고치는 반(反)율법주의자의 지도자로 보였기 때문이다.

3. 중세시대의 성직자에 대한 세금 부과권을 둘러싼 쟁투

성직자에 대한 과세권을 국왕이 가지느냐 아니면 교황이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는 중세시대의 중요한 정치 문제였다. 십자군 전쟁 시절에는 성직자세가 부과되기도 했다. 이에 교황이 반발하여 성직자로서 국왕에게 세금을 납부하는 자는 파문을 하겠다고 했고, 이에 대응해서 당시 프랑스 왕이었던 필립 4세는 교황을 퇴위시키려고 까지 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성직자 및 교회의 면세 특권에 대한 시민의 저항과 반발 때문에 일어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결과 1789년 11월에는 정부는 교회 재산을 몰수하고 십일조는 폐지가 되었다. 그 대신 성직자들의 생활비는 국가가 책임을 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독일에도 영향을 주어 국가가 교회세를 징수하여 각 교단에 분배하고 있다.

Ⅲ. 기독 공동체의 세금 납세의무

정교분리 시대에서는, 싫든 좋든, 기독 공동체도 사회적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 민주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재정이다. 재정을 조달하기 위해 세금이 있다. 가장 이상적인 사회는 사도행전 4장 34절에 표현된 "그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세금)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복지)"고 본다.

이를 우리나라 헌법 제1조에서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에둘러 표현하고 있다. 공화란 의미가 바로 그것이다. 복지를 받는 자보다 복지 재원을 감당하는 자가 더 보람된 인생이 아닐까 한다. 그 이유는 하늘이 주신 달란트를 최대한 사용한 자이기 때문이다.

1. 국민개세주의 원칙

국민개세주의란 모든 국민은 적은 액수라도 세금을 내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이는 역사적으로 면세 특권을 누리던 귀족층에게 세금을 걷기 위해 도입된 논리다. 현대에 와서는 소득이 적은 사람일지라도 조금의 세금을 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종전에는 일반 서민이 면세 혜택을 받고 있는 부유층에게 하는 구호였지만, 지금은 증세론에 시달리는 부유층이 서민층에 대해 조금이라도 세금 부담을 하라는 취지로도 들린다.

더군다나 복지는 결국 세금으로 할 수밖에 없다. 빚을 내서 하는 것은 국가 채무를 증가시켜 나라 경제를 더 어렵게 한다. 국민 대부분은 세금을 떳떳하게 능력껏 내고, 복지 혜택을 정당하게 받겠다고 하는데 정작 정부는 ‘증세 불가 약속’에 발목이 잡혀 있는 것 같다. 가장 합리적인 복지 조세 국가 모델은 구성원이 능력껏 일하고 얻은 모든 소득에 대해 공평하게 과세하고, 동시에 구성원이 필요한 만큼의 복지 혜택을 주는 사회다. 복지를 제대로 하려거든 세제를 올곧게 운영해야 한다.

2. 목회자의 납세의무

기독교는 조선시대 말기부터 의료·교육 사업을 통해 이 땅에 감동을 주었다. 6·25 한국전쟁과 산업화 및 민주화 과정에서 교회는 힘없고 쫓기고 굶주린 사람들을 보듬었다. 이를 눈으로 본 청소년들이 자라 기독교인이고 되고 사회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나 목사가 헌신적이고 희생적임에도 요즘 기독교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혹독하다. 교회 세습, 불투명한 교회 재정, 성폭력, 교회 권력의 타락 등이 주된 요인이다. 이젠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세상이 오히려 교회를 걱정하고 있다. 부끄럽고 통탄할 일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목회자가 교회로부터 받는 금액은 당연히 과세 대상 소득에 포함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첫째, 교회로부터 받는 목회자 사례비는 그 명칭에도 불구하고 엄연한 소득이다. 그 많은 돈이 소득이 아니면 용돈인가. 모자(母子)지간 용돈도 큰 금액이면 증여세가 부과된다. 고용된 자가 아니다? 그래서 근로소득으로는 못 내겠다? 이는 교회 안에서나 할 말이지 교회 밖 세상에 대고 할 말은 아니다. 근로자인들 뭐가 어떤가. 목사는 예수님에게 고용된 자 아닌가. 특권 의식이다. 헌법은 특권계급을 인정하지 않는다. 군대에서 목회 활동을 하는 군목은 세금을 낸다. 미국의 목사도 근로소득으로 세금을 낸다. 한국 목사와 미국 목사는 그 사역이 다른가? 부끄러운 주장이다.

둘째, 이중과세라서 안 된다고 한다. 교인들이 세금을 내고 난 뒤에 금액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면 일반인들을 보자. 월급 탈 때 근로소득세, 물건 살 때 부가가치세, 죽으면 상속세를 근로소득으로 받은 금액이 감당한다. 어설픈 주장이다. 이 세상엔 이중과세가 아니라 삼중 또는 사중 과세도 수두룩하다.

셋째, 더구나 종교 차원에서 보아도 이 논쟁은 교회에 유익하지 못하다. 첫째, 예수님조차 자기 집인 성전을 드나들면서 당시 유대법에 따라 성전세를 납부했다.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불필요한 논쟁과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목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생을 바친 사람이다. 세상과 쓸데없이 다툴 이유와 시간이 없다. 사람이 아프면 병원에서 의사의 치료를 받듯 마음과 영혼이 아프면 교회에서 목사로부터 치유를 받는다. 교회의 본질과 목사의 기능은 분명 고귀하고 소중하다. 이를 통해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금 때문에 비난을 애써 사서 들을 이유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납세자가 되면 금전적 손해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국민연금·건강보험 등 여러 제도적 혜택이 부여된다. 통계상 90% 이상의 목사는 설사 세금을 부과하는 규정이 도입돼도 면세점 이하 수준으로 실질적인 금전 부담은 거의 없다. 그리고 세금 납부를 통해 교회의 재정과 집행이 투명해진다. 이를 제대로 하려면 모든 것이 정직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했다. 정직하지 않은 교회나 목사가 어떻게 세상에 대해 바르게 살라고 말할 수 있는가.

Ⅳ. 닫는 글

결론적으로 기독교인은 매일 예수님에게 내가 누구인가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물어보고 이를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자이다. 존재와 당위라는 문제 의식을 늘 머리맡에 두고 사는 사람이다. 세상은 아직도 교회에 기대가 남아 있어서 애증 어린 비판을 하고 있다.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 세금 납부는 최소한의 사회 규칙이다. 목사라고 예외일 수 없다. 예수님도 스스로 납부하셨다.

첫째, 적극적인 납세로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선교나 전도의 관점에서 보면, 전 국민이 납세의무를 다하고 있는데 기독교 공동체가 일반 국민의 눈높이도 못 미칠 정도의 납세를 하고 있다고 하면, 그 동기와 원인 여부를 떠나서 사회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본다.

둘째, 기독교 공동체의 적극적인 탈세 행위는 시급히 시정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수정 신고 등의 방법을 통해서 납세의무를 다하여야 하고, 국가권력도 한시적 기간을 부여하여 자정의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기독교 공동체가 스스로 납세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본다.

셋째, 그렇다고 해서 국가권력이 기독교 공동체의 수익이나 재산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세무조사를 하는 것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엄연히 비영리단체와 영리단체의 존재 목적은 구별되어야 하고 세무조사의 접근 방법도 달라야 한다고 본다. 미국 세법에서는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미국 국세청이 교회에 대해 세무조사권을 행사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넷째, 기독 공동체는 세법뿐 아니라 민법과 사법 등의 규정을 잘 준수하여서 교회 공동체(교회)의 업무 집행시 사회법과의 충돌과 마찰을 미연에 방지하여야 한다. 특히 교회도 비영리 단체이니 교회 내에서 절대적 권한을 행사하는 자는 그 행사시 더욱 민사법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 목회자나 교회의 세금 납부에 대해 여러 가지 시각이 존재하지만, 그 대안을 선택할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믿지 않는 자들이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자세를 가지고 있다면, 해결되지 못할 사안은 없다고 본다.

안창남 / 강남대학교 세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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