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 <21세기 민중신학> / 황용연 외 6인 지음 / 김진호·김영석 엮음 / 정용택 외 2인 옮김 / 삼인 펴냄 / 416면 / 1만 8000원
"누가 오늘날의 오클로스(민중)인가?"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김진호 목사와 미국 버지니아 유니온대학의 김영석 교수가 공동 편집자로 참여한 <21세기 민중신학>의 한 물음이다. 어떤 이들은 민중신학의 시대가 끝났다고 말한다. 이제는 이념 대립의 시대가 가고, 통합과 갈등의 치유에 힘써야 할 시대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21세기 민중신학>에 참여한 이들은 한결같은 목소리로 "이 세계의 '고통pain'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20세기 한국 민중의 고통당하는 삶의 자리에서 출발한 민중신학은 이제 지역의 한계를 넘어 전지구적 차원에서 엄습하는 고통의 진화에 응답하고 있다. 민중신학의 '세계화'를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세계 신학자들과 더불어 안병무 신학 다시 읽기가 요청되고 있는 현실은 우리 시대에 이르러 '비참함wretchedness'으로 진화한 민중의 '고통'이 국경의 테두리를 넘어 전지구적 차원에서 엄습하고 있는 절박한 상황임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민중신학의 새로운 전거를 마련하는 기념비적인 시도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민중신학의 세계화를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비교적 최근인 지난 2010년에도 <민중신학, 세계 신학과 대화하다An Emerging Theology in World Perspective : Commentary on Korean Theology>(동연, 2010)라는 번역서가 출판된 적이 있지만, 1980년대의 상황에서 민중신학의 세계화를 모색한 연구의 뒤늦은 출판이었다는 점에서 공헌과 동시에 한계를 설정하고 시작된 작업이었다. 1990년대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신자유주의 체제의 본격화와 더불어 세계의 정치·경제·사회적 정황이 급변했기 때문이다. 1세계와 3세계 사이의 장벽이 이전보다 낮아진 오늘날, 지역적 차원의 문제는 '빈곤의 세계화'라는 측면에서 전지구적 차원의 문제와 깊은 상호 관련을 맺고 있다. 이 점에서 <21세기 민중신학>의 출판은 신자유주의적 질서로 촘촘하게 얽힌 관계망 속에서 지역 신학과 세계 신학이 동일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대화할 수 있는 접점을 마련하며, 민중의 고통의 문제에 협력적으로 대응해 나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Ⅱ.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제1부 '안병무를 말하다'는 안병무 민중신학의 얼개를 그린다. 선생의 '사랑받는 제자'이자 이 책의 공동편집자인 김진호 목사는 내면성과 민중적 타자성의 개념을 중심으로 안병무의 민중신학을 재서술한다. 제2부 '안병무가 말하다'에는 선생의 918편의 글 가운데 선별된 네 편의 논문(<예수 사건의 전승 모체>, <예수와 민중-마가복음을 중심으로>, <민중신학-마가복음을 중심으로>, <민족·민중·교회>)을 실었다. 이 네 편의 논문은 영어권 독자들에게 안병무의 신학을 알리고 그들의 반응을 이끌어 내기 위한 목적으로 고심 끝에 선별된 논문이다. 그러므로 안병무의 방대한 저술의 양에 부담감을 느끼는 일반 독자들이나 안병무 민중신학의 요체를 '하룻밤에' 파악하기를 바라는 신학생들에게 훌륭한 텍스트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백미는 제3부 '안병무를 통해 말하다'이다. 여기에는 안병무의 신학에 대한 세계 신학자들의 비판적 논의가 포함되어 있으며, 각각의 논문은 그의 오클로스론이 지니는 신학적 현재성을 체감케 하는 다양한 관점의 논의를 포괄하고 있다. 이 책의 공동 편집자들은 3부의 기고자들에게 일련의 질문 지침―"누가 오늘날의 오클로스(민중)인가?" "민중이 겪고 있는 다양한 측면의 고통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민중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공동체 내지는 사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가?"―을 마련하여 안병무의 오클로스론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에서 응답을 이끌어 내고자 했다(19쪽). 전공과 문화적 배경을 감안하여 선정된 저자를 통해 신약성서학, 페미니스트신학, 탈식민주의신학, 기독교윤리학, 민중신학, 조직신학 등 서구 신학의 분과학문적 경계를 포괄하는 통전적이고 간학문적인 논의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이 책이 지닌 분명한 장점 가운데 하나라고 하겠다.

Ⅲ.

21세기 한국의 민중신학은 시장의 단일적 지배에 저항하며 시장의 주권에 귀속될 수 없는 (비)존재들의 신학적 주제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민중신학이 탈이념적 시대의 혼돈을 지나 이제 본격적인 '리부팅'에 접어든 느낌도 든다. 여기에는 오늘날까지 20여 년에 걸친 세월 동안 신학의 '방외자'를 자처하며 끈질기게 연구를 지속해 온 민중신학자 김진호의 헌신이 밑거름이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점에서 김진호의 최근의 학문적 성취라고 할 수 있는 <리부팅 바울>(삼인, 2013)의 주된 논의―김창락의 바울의 의인론에 대한 인권신학적 재해석―와 더불어 이 책에 실린 그의 논문 <민중신학과 '비참의 현상학'>은 민중신학의 본격화에 박차를 가하는 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진호는 "1980년대 말 이후 '민주화'는 염원의 대상이 아니라 제도화의 대상이 되었다(345쪽)"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산업사회의 민주화가 '국민의 시민화 과정(345쪽)'이었다면, 소비사회의 민주화는 정치적 주체로 전환된 시민을 '시장화'한 '시민의 시장화 과정(348쪽)'에 다름 아니었다. 다시 말해 민주화 시대의 과제는 국가의 주권으로부터 시민의 주권으로의 이동이었던 반면, 민주화 이후의 과제는 시장의 주권 아래로 급속히 편입된 시민적 주권의 자율성 획득에 집중되어 있다는 진단이다. 이것은 물론 김진호 만의 문제의식은 아니다. 시장의 주권적 지배가 불러오는 배제와 폭력성에 관한 논의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관한 논의의 핵심이며, 다양한 지점에서 분화되는 시장에 대한 저항 담론의 한 축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중신학자로서 김진호의 탁월성은 이러한 '시민의 시장화'의 과정 속에서 배제된 민중의 '비참함'을 읽어 내고, 이로부터 안병무의 오클로스론의 신학적 현재성을 환기시킴으로써 민주화 이후 민중신학의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는 데 있다.

김진호에 따르면 안병무의 오클로스론의 핵심은 '귀속성(attribution)을 비자발적으로 박탈당한 존재(333쪽)'로서의 오클로스라는 문제의식에 있다. 안병무는 마가복음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귀속성을 지닌 존재를 뜻하는 '라오스'라는 낱말이 단지 두 차례 사용된 반면, 군중과 무리를 뜻하는 '오클로스'는 "지시대명사를 빼고도 무려 36회(93쪽)"가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안병무는 '라오스'로 귀속되지 못하는 존재인 '오클로스'의 비존재성으로부터 20세기 국민 국가에서 '국민'으로 귀속되지 못하는 '민중'의 비존재성과 그에 따른 고통을 읽어 내고자 했던 것이다. 김진호는 마가복음으로부터 오클로스의 '고통'을 읽어 낸 선생의 관점을 이어받아 전지구적 차원에서 시장의 지배 질서에 귀속되지 못하는 오클로스의 '비참함'에 주목한다. 이를 통해 20세기 한국 민중의 '고통'에 대한 응답으로 출현한 안병무의 민중신학을 21세기 오클로스의 (비)존재성에 내재된 '비참함'으로 읽어 냄으로써 민중신학의 현재성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탈이념적 신학의 지향성을 분명히 설정하는 효과를 획득하는 것이다.

Ⅳ.

그러나 20세기의 '고통'이 21세기의 '비참함'이 되는 과정은 더욱 복잡하고 중층적인 현실에 대한 이해를 요청한다. 20세기 투쟁의 전선에서 적과 아군을 식별하던 명확한 이념의 잣대가 유효성을 상실한 시대에 이르러 민중신학은 오클로스의 혼종적 정체성 앞에서 당혹감을 느껴야 했기 때문이다. 21세기의 오클로스는 신자유주의라는 '친밀한 적(김현미)'과의 (비)자발적 동거를 선택함으로써 시민적 자유와 (소비)주권을 획득하였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오클로스는 안병무가 관심을 둔 갈릴리 오클로스의 특징뿐만 아니라, 예수를 팔아넘긴 메트로폴리탄(예루살렘) 오클로스의 특징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지난 세기의 노조 운동은 착취계급에 대한 인권 투쟁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이 비교적 명백하게 드러났으나, 오늘날 국내외의 정규직 노조의 파업을 두고 이러한 단선적 시각을 대입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는 것이 사실이다. 비정규직과 무정규직이 무차별적으로 양산되는 총체적 억압의 현실 속에서 사회적 공공성의 관용적 범주를 넘어서는 과도한 시민적 개별성에 대한 주장이 얼마만큼의 정당성을 지닐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논쟁적인 과제로 남아 있다.

이것은 비단 노동운동의 현실에서뿐만 아니라 통일 운동을 비롯한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추동했던 다양한 '운동' 속에 내재된 오클로스의 혼종적 정체성과 욕망의 문제와 더불어 불거진 문제의식에 다름 아니다. 한 마디로, 적과 동지의 명확한 구분 자체가 사라진 데 따른 혼선이 생활 세계 전반에 뿌리 깊게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대다수의 시민들은 시장의 지배 질서에 따라 '먹고사는 문제'의 절박함으로 회귀한다. 골치 아픈 현실을 들여다보기에는 몸도 마음도 피곤한 까닭이다. 신학(자)도 예외가 아닌데, 산업사회의 민주화 운동과 더불어 교회와 창조적 갈등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신학은 급속도로 신자유주의적 제도화에 편입되면서 친시장적 특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게 되었다. 시장이라는 친밀한 적과의 (비)자발적 동거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제도권의 현실 속에서 체제에 속한 신학적 지식인들은 끊임없는 자기 분열에 시달리게 되었으며, 시장적 제도화의 압박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소리 없는 투쟁에서 정신적 '피로감'이 극대화되는 소진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이 점에서 "제국주의와 식민 지배로 얼룩진 상황에서 민중은 균질한 집단으로 범주화되지 않는다(210쪽)"는 사실을 지적하는 그렉 케리Greg Carey의 연구와 마가복음의 오클로스가 "민족적 성향이 강한 갈릴리와 제국주의적 성향이 강한 예루살렘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친 불안정한 지위에 처해 있었다(230쪽)"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고 있는 데이비드 아더 산체스David Arthur Sanchez의 연구는 오늘날 외부가 없는 신자유주의적 질서의 내부에 놓인 민중의 자기 분열적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이들의 연구는 민중에 관한 탈식민적 비평의 지점을 형성함으로써 오늘날 시장의 포괄적 지배 안에서 분열증적 주체로 살아가고 있는 민중의 실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기지촌 여성의 주체화의 문제를 다루는 배근주의 연구와 성적 소수자(LGBQT: Lesbian, Gay, Bisexual, Queer, Transgender/Transsexual) 담론에 얽힌 유언비어 분석을 통해 새로운 창조적 담론의 공간을 모색하는 조민하의 연구는 안병무의 오클로스론에서 종종 간과되곤 했던 젠더gender의 이념성을 환기시키는 훌륭한 사례를 제공하고 있다. 황용연의 논문 역시 민중신학의 역사적 전개를 검토하고 구원의 행위 주체로서의 민중의 '증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중신학의 현재성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가장 아쉬움이 남는 글은 페르난도 엔스Fernando Enns의 논문이었는데, 다른 저자들이 안병무 민중신학의 현재성과 씨름한 것과 대조적으로 나는 여기에서 안병무의 신학에 대한 서구(독일) 신학의 기득권적인 '인준' 이상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했다.

Ⅴ.

21세기 민중신학은 '오늘의 오클로스'가 겪고 있는 고통을 증언하기 위해 어떤 방법론적인 노력을 기울일 수 있을까? 김진호는 신학-인류학적 연구(theological-anthropological study)를 민중신학의 방법론으로 제안한다. 신학이 '인류학적' 연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그것이 고통을 겪고 있는 이의 경험에 공시적이고 통시적으로 얽힌 다층적인 인과성을 살피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또한 '신학적'이라는 표현은 고통에 관한 철저한 인류학적 연구가 결국 "가학적 체제에 공모하고 있는 우리의 해방과 구원에 관한 것"임을 말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359쪽). 오늘날의 오클로스는 민족적 민중처럼 하나의 거대한 집합체가 아닌 '흩어진 존재들'이다(365쪽). 그들은 삶의 전 영역에 걸쳐 포괄적인 배제를 체험하고 사는 사람들이다. 여기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 그리하여 김진호에게 오클로스를 신학적으로 묻는 일은 곧 "우리 시대의 지배적 시선 혹은 통념적 시선에서 삭제되고 은폐된 이들의 기념비를 세우는 것, 곧 '탈영자들의 기념비'를 세우는 것(365쪽)"에 다름 아니다.

한국의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나라들 가운데 또 1위를 차지했다. 어린이·청소년의 행복 지수는 최하위를 기록했다. 시장의 지배적 시선에서 배제된 사람들, 귀속성을 비자발적으로 박탈당한 (비)존재들의 아우성이 도처에서 들려온다. 21세기 전지구적 차원에 이른 오클로스의 '비참함'은 더 이상 나와 내 가족만을 비껴가지 않는다. 민중신학은 누가 우리 시대의 오클로스인지를 물어 왔다. 그러나 이제 질문이 바뀌어야 할 것 같다. 하여, 나는 다시 묻는다. 누가, 우리 시대의 오클로스가 아닌가?

홍정호 / 신반포감리교회 목사, 연세대 대학원 박사과정(선교학)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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