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있는 인맥이나 정치 행태를 보면, 누구는 유신 잔당이라는데 잔당이 아니라 유신 본당이죠.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배경이나 환경이 유신에 근거한 것 아니냐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정의평화위원장 허원배 목사.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정의평화위원장인 허원배 목사(62)는 시종일관 차분한 목소리였으나 국가기관 대선 개입부터 이른바 '종북 몰이'까지 현안에 대해 박 대통령과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허 목사는 국기기관의 대선 개입에 대해 "주권재민이라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이 유일하게 자기 권리를 행사하는 선거에 국가기관이 개입해 특정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활동한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문제"라고 규정했다.

기독교계는 지난 1월 이후 대책위를 구성해 매주 목요일 국정원 등의 대선 개입에 대한 진상 규명과 관련자 처벌을 촉구하는 기도회를 열고 있으며 광화문까지 거리 행진을 하기도 했다. 또 8월에는 목회자들이 대규모 시국선언을 하기도 했다.

대학교 71학번인 허 목사는 "1학년 때 박정희의 3선 개헌이 있었고, 2학년 때 유신이 시작됐다"며 "누구는 박근혜 정부를 유신 잔당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유신 본당"이라고 말했다.

허 목사는 유신 독재의 정치 행태로 중앙정보부의 '정보 정치, 조작 정치'를 꼽았다. 그는 "국정원이 심지어 국방부, 경찰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정보·조작 정치를 하는 것은 유신 시대와 똑같다. 오히려 요즘은 유신 회귀가 아니라 유신보다 더한 것 같다"고 말했다.

허 목사는 1978년 충남 농촌 지역에서 목회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저임금·저곡가 정책에 맞서 농산물 가격 보장을 촉구하는 투쟁을 하는 한편 1983년 무농약 농업을 하는 생산자 조합을 결성하기도 했다. 최근 시국 미사 강론으로 '종북 신부'로 공격받고 있는 박창신 신부와 비슷한 농민의 아픔을 함께하는 농촌 목회 활동을 10년 넘게 했다.

정부 여당과 보수 단체가 박 신부의 강론 내용을 빌미로 정치적 압박을 하는 것에 대해 허 목사는 박근혜 대통령을 직접 지목하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신부님이 말씀한 것은 국가기관 선거 개입에 대해 명백하게 수사기관과 법원에서 밝히라는 것이다. 핵심은 빼고 지나가는 이야기를 붙들고, 거의 1년 동안 국민들이 문제 제기할 때 일언반구 하지 않던 박 대통령이 강론 나오자마자 부차적인 내용을 잡고 국론 분열 운운하는 것은…. 지도자로서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다."

허 목사는 "이대로라면 국정원이 유신 시대 했던 것처럼 예배나 미사에 대한 정보 수집이나 사찰을 자행할 가능성도 있겠다"고 우려했다.

최근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는 이른바 '종북 몰이'와 관련, 그는 "종북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출현해서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정리하는 토론회를 정의평화위원회 차원에서 해 볼 생각"이라며 "앞장서서 종북이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 대다수가 군대도 제대로 다녀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대선 부정선거 문제를 두고 여야, 그리고 정부와 종교계·시민사회의 대립이 갈수록 격화하는 상황에 대해 허 목사는 "대통령에게 시국 상황이나 국민 목소리를 보고하는 길이 막혀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며 "대통령 면담을 신청하는 등 국민 여론을 전달하기 위해 NCCK 차원의 노력을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허 목사와의 인터뷰는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이뤄졌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이다.

"지도자로서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다"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정의평화위원장 허원배 목사.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 지난 8월 시국 선언을 하는 등 국가기관 대선 개입 문제에 꾸준히 관심 갖고 노력해 오셨다.

주권재민의 민주 사회에서 국민이 유일하게 자기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투표다. 투표 과정에서 정부 기관이 개입해서 특정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활동한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 이런 입장에서 금년 1월 NCCK 정평위는 국정원선거개입대책위를 구성해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여러 기독교 단체와 협의해 매주 목요일마다 기도회를 진행하고 광화문까지 행진도 했다.

- 그러나 다수의 국가기관이 대선에 개입한 것이 밝혀지고, 수사에 외압이 가해지는 등 상황은 악화하고 있다.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은 명백하게 검찰과 법원에 의해 밝혀져야 하고 불법행위는 처벌돼야 한다. 그러나 채동욱 총장을 강제 사퇴시키고 윤석열 수사팀장을 교체하는 것은 일반 국민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많은 분들이 분노하고 있다.

- 보수단체는 박창신 신부를 국가보안법과 내란 선동 등의 혐의로 고발하고 검찰도 수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박창신 신부 강론을 문제 삼는 것은 본질을 왜곡하는 행위다. 신부님은 국정원 국가기관 선거 개입 문제에 대해 명백하게 수사기관과 법원에서 밝히라고 말씀하셨다. 그 외 이야기는 그 외다. 핵심은 빼고 지나가는 이야기를 붙들고, 거의 1년 동안 국민들이 부정선거라고 할 수 있는 국가기관 선거 개입에 문제 제기할 때 일언반구 하지 않던 박 대통령이 강론 나오자마자 부차적인 내용을 국론분열 운운하는 것은…. 지도자로서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다.

- 연배 높으신 분들은 종교계가 인권과 민주화 위해 싸우던 과거로 돌아간 것 같다고 한다.

나는 71학번이다. 71년에 3선 개헌, 72년에 10월 유신을 경험했다. 40년 전인데 그때로 회귀되나 생각되고, 아니 더 심해지는 느낌이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배경이나 환경이 유신에 근거한 것 아닌가 싶다. 72년 10월 유신된 다음, 74년 8월 15일에 육영수 여사가 서거한 후 영부인 역할하신 분이 박 대통령이다. 79년 10월 26일까지 5년 이상을 권력의 2인자로 행세했다. 추론해 보면 박 대통령은 10월 유신의 본당으로 활동을 재개한 것이라는 의구심이 든다. 김기춘 비서실장 등 주변 인맥이나 정치 행태가, 누구는 유신 잔당이라는데 잔당 아니라 본당 아니냐.

- 젊은 사람들은 사회가 나빠졌어 하는 느낌이지만 유신을 경험한 분들은 느낌 다를 것 같다.

유신의 핵심은 국정원, 즉 과거 중앙정보부의 정보 정치, 조작 정치다. 지금 국정원의 행태가 유신 시대 그대로다. 국정원이 심지어 국방부, 경찰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정보·조작 정치를 시도해 나가고 있다. 이건 너무 빠른 속도로 유신으로 회귀한 것 아니냐.

- 교회 설교도 앞으로 부담되시겠다.

유신 시대에 그랬다. 성직자들이 강론과 설교가 녹음되어 법적 문제될까 우려해서 조심스러웠다. 국정원 지금 구조라면 유신 시대 했던 예배나 미사에 대한 정보 수집이나 사찰도 자행할 가능성도 있겠다 판단을 하고 있다. 성직자라는 것 자체가 위협이고 부담이다. 정의와 평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으니(웃음).

"종북? 묘향산 기념관에 남한 주요 인사들이 보낸 김일성·김정일 생일 축하 선물 가득"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정의평화위원장 허원배 목사.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 몇 년 사이 종북이라는 말이 일반 용어처럼 널리 쓰인다.

종북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출현됐는가, 그리고 개념이 무엇인가 명확하지 않다. 지금 정부는 비판 세력을 다 종북으로 분류한다. 그래서 정평위에서는 언제 출현됐는지, 어떤 개념으로 쓰는지 정리하는 토론회를 가지려 한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의무 중 가장 큰 의무 중 하나가 국방의 의무다. 앞장서서 종북 운운하는 사람 중 얼마나 군대 갖다 왔나. 장관 인사청문회 보면 새누리당에서 추천한 후보들은 왜 다 군대를 안 갔다 온 건지, 그 자녀들마저도 안 가는 사람이 대다수다.

-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 역시 종북의 연장선상이다.

북한 조선기독교연맹 초청으로 NCCK에서 공식 대표단으로 평양에 간 적 있다. 묘향산 김일성·김정일 기념관에 안내해서 관광 갔다 놀랐다. 남한 주요 인사들이 김일성·김정일 생일날 보낸 선물이 전시돼 있는데 쓴 내용을 보니 국가보안법 정도가 아니라 적국 지도자에 대해서 칭찬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웃긴다고 생각했다. 종북과 같은 저질적인 논쟁은 이제 정부가 앞장서서 막아야 한다.

- 정부 여당은 유리하다 생각해서 매일이다시피 종북 운운이다.

최근 박 대통령 러시아, 중국, 베트남 방문해 지도자들도 만났다. 다 공산·사회주의다. 국가원수로서 활동이라지만 국보법 위반이다. 일방적으로 자기 의견을 주장하고 그에 따르지 않으면 다 적으로 모는 것은 봉건 체제에서나 있던 일인데 아직도 통한다고 생각하는 지도자가 있다니 기가 막히다. 가족 관계에서도 아버지다, 어머니다 해서 내 주장 따라와라 하면 안 따라온다.

- 정부 여당이 종북 몰이에 자신감 갖게 된 것은 종편 등 편향적 언론 환경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우려가 그대로 나타났다. 그러나 나는 국민들에 대한 신뢰가 있다. 일제 치하부터 자유당, 유신, 군부독재…. 우리 역사가 편하게 간 적이 없다. 다 국민의 힘으로 바꿔 놓았다. 진실이 아닌 것은 분명한 입장을 갖고 행동해 왔다. 이게 우리 국민의 특성이고 자랑이다.

- 경제 민주화나 복지 공약도 대부분 폐기되고, 권위적 통치로 돌아가고 있다는 평가도 많다.

본인이 공약한 것을 쉽게 폐기한다는 건 지도자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 폐기해야 하는가를 관련된 사람들과 충분히 협의해서 이해가 된다면 폐기하든지 해야지, 일방적으로 선언식으로 폐기하는 것은 지도자의 자세가 아니다.

-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이전과 다른 모습이다. 이명박 정부보다는 낫겠지 하던 기대감도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

여권의 동향을 봐도 대통령에게 상황에 대한 정확한 대화나 보고를 하는 루트가 약화된 것 같다. 대통령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다수 국민이 알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NCCK가 중심이 돼서 현재 상황을 전달하고 대통령이 결단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도록 촉구하려고 한다. 대통령 면담 신청도 할 것이다.

- 천주교 시국 미사 이후 종교의 사회참여를 두고 논란이 많다.

정치 참여와 정치에 대한 입장을 표현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정치 참여는 정치인이 되고자 하는 것이지만, 정부의 정치적 활동에 대해 입장을 표현하는 것은 사제로서 성직자로서 해야 할 일이다. 정치 참여가 안 된다는 이야기는 히틀러가 로마서* 13장 인용해서 처음 했다. 그러나 그것도 불의한 정권에는 정확하게 표현해서 잘못되지 않게 할 책임이 성직자에게 있다고 해석한다.

*로마서 13장 중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 목회 활동은 언제부터 시작하셨나

충남 농촌 지역에서 목회 활동 1978년 시작해서 1990년까지 했다. 유신부터 전두환 군부독재까지 수출 중심 성장 정책이었다. 저임금 유지해야 수출이 된다 하면서 저농산물 가격 정책과 수입 개방 정책 써서 농민들이 엄청난 피해를 봤다. 이런 문제로 대정부 투쟁을 하는 가운데 자구책으로 1983년 시작한 것이 무농약 농사다. 생산자조합을 결성해서 지금은 420여 명으로 성장했는데 '푸른들 영농법인'이라고 충남 아산에 있다. 연 270여억 원 매출을 올리는 한국의 모범적인 영농법인이 됐다.

- 작년부터 정평위 맡으셨다. 정의와 평화가 위협받고 있는데 이후 어떤 노력하시려 하나.

정평위 세 가지 큰 과제를 갖고 있다. 국정 10대 과제라고 해서 정부 예산편성 분석을 통해 사회적 약자들이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예산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갈등 구조 해소를 위한 평화 교육을 매년 12주 과정으로 실시해 사람들을 길러 내고 있다. 세 번째는 각종 현장에서 (사회적 약자들에게)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다.

고희철 / <민중의소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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