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김형국 목사(나들목교회)가 기고한 것입니다. 먼저 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에서 발표했고 두란노서원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목회와 신학> 2월 호에 실렸습니다. - 편집자 주

 3. 하나님나라와 복음

가) 하나님나라가 복음이 되는 이유
하나님나라의 복음(눅 4:43; 16:16) 또는 천국 복음(마 4:23; 9:35; 24:14[비교, 막 13:10 복음])이라는 말은 실제로 예수께서 쓰신 표현이다. 예수의 중심 사상이 축약되었다고 볼 수 있는 막 1:15에서도 하나님나라와 복음이 함께 나타난다. 하나님나라와 복음은 예수와, 초대교회에서 불가분의 메시지였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하나님나라가 복음이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구약 전체에서 '주의 날', '그 날', 또는 '그 때'에 일어나는 가장 두드러진 일은 심판이다(예를 들어 사 13:9). 하나님나라가 도래하게 되었을 때, 이 도래를 이끌고 오실 메시아, 또는 주의 종이 나타나실 때, 악인들은 정죄를 받고, 열방들, 특히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였던 나라들은 심판을 받는다. 하나님나라의 소식은 사실 대부분이 사람들과 민족에게 복음이 아니라, 심판의 메시지이다. 그런데 하나님나라의 메시지를 심판이 아니라 복음이라고 선포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면 심판을 면하고,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선포했다(막 1:15; 마 3:3; 눅 5:32; 13:5).

이 회개는 단순히 죄를 자백하고 결단을 하는 것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사복음서가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 예수의 죽으심의 의미를 받아들일 때 유효한 것이다. 예수 자신의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함이라는 설명(마 20:28; 막 10:45), 하나님나라 비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한 알의 씨앗이 떨어져 죽는 것에 대한 강조(마 13장), 예수의 살과 피에 대한 마지막 밤의 가르침(마 26:26-30; 막 14:22-26; 눅 22:15-20), 사도 요한이 증언한 영원한 양식이 되는 예수의 살과 피에 대한 예수의 설교(요 6장) 등은 예수의 죽음의 의미를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 이 예수의 죽음, 십자가에서 나타난 그의 사랑이 하나님나라가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는 복음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심판 아래 있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의지하지 않으면, 그들은 "이미 심판을 받은 것"(요 3:18-19)이 된다. 하나님나라의 소식이 모든 사람에게 심판의 메시지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복음이 되는 것이다.

나) 이방인들을 향한 보편적인 복음
구약의 전통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유대인들에게 집중하여 사역하셨던 예수와 그의 청중들은 인격적인 하나님의 다스림, 회개와 메시아의 나라에 들어감 등이 자연스러운 개념이었다. 그래서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이 유대인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에는 큰 문화적 장벽이 없었을 것이다. 다만 예수가 보여 준 메시아상이 그들이 기다리던 모양의 정치적 메시아가 아니었던 것이 문제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난 이후에야, 제자들은 구약의 메시아 예언과 관련된 말씀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했고, 이미 임한 하나님나라의 소식이 그들에게 복음이 되어 회심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그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방인들의 경우는 이와 달랐다. 이들에게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설명은 쉽지 않았다. 초대교회가 처음에는 고넬료와 같이 유대교에 익숙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유대인의 회당을 사역의 근거지로 삼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행 13:5, 14; 14:1; 17:1; 18:4; 19:8).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유대교적 배경이 전혀 없는 사람들(행 17:16-34; 24:10-24; 26:1-32; 28:31)과 지역에도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한다.

사도바울은 하나님나라 사상을 그대로 이어받아서, 이를 비유대교적 또는 헬라적 상황에서도 보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표현들을 사용하여 가르치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그가 구원을 설명하기 위해서 가져온 다양한 신학적 용어는 하나님나라가 어떻게 복음이 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바울은 물론 속죄(propitiation)와 같이 유대교적인 배경에서 온 개념도 사용하였지만, (바울은) 비유대인들에게 익숙한 다양한 이미지와 개념을 통해서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 설명한다. 법정 이미지에서 의롭게 됨(justification), 노예 시장의 이미지의 구속(redemption), 로마 시대의 풍습에서 양자됨(adoption), 일반적인 관계에서 사용되는 화목(reconciliation)등을 사용하여, 비유대인들에게 예수가 가르친 하나님나라를 설명한 것이다. 이러한 개념들을 통해서 사도바울은 어떻게 죄가 많은, 정죄 받은, 죄의 노예로 팔려 간, 고아와 같았던, 깨어진 관계를 가졌던 사람들, 즉, 죄로 인해 곤경에 빠진 보편적인 인류가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설명하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속죄, 의롭게 됨, 구속, 양자됨, 화목 등의 다양한 단어로 묘사되는 구원의 실제를 사도바울은 삼중의 시제로 설명하고 있다. 구원을 이미 받은 실체로 설명(엡 2:8; 딛 3:5)하기도 하는 바울은 구원이 아직 이르지 않은 미래에 받을 것이라는 소망을 피력하기도 했고(딤후 4:18; 롬 10:13; 고전 3:15), 더 나아가 현재 구원이 '이루어지고 있다'거나 '이루어 나가라'는 현재형으로 구원을 표현한다(고전 1:18; 빌 2:12). 이는 혹자들이 주장하듯 사도바울이 일관되지 못한 가르침을 펼치고 있다기보다는, 그가 하나님나라의 종말론적 이중구조의 틀 속에서 구원을 이해하고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미 임한 하나님나라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이미 구원을 받은 것이고, 그들은 앞으로 올 온전한 하나님나라를 대망하기에 마지막에 나타나기로 한 구원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나라 백성은 이 세대 속에 살면서 오는 세대를 기다리며 현재의 삶 속에서 구원을 이루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과거, 현재, 미래의 세 가지 시제를 통해 하나님나라를 설명하는 모습은 바울의 서신서에서는 여기저기에서 흩어져 나타나지만, 사도 베드로의 경우에는 그의 첫 번째 서신 첫째 장에서 이 세 가지 시제를 모두 다루고 있다(1:3, 5, 9). 이렇게 예수님의 하나님나라 가르침에 기초한 구원에 대한 이해는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보편적인 것이었으며, 신약의 저자들 중 가장 많은 저작을 남긴 사도바울은 예수가 가져온 하나님나라의 메시지가 어떻게 복음이 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을 이방인 세계 속에서의 그의 사명으로 여기며 사역하였다.

4. 하나님나라의 복음과 교회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그들이 혼자가 아니며, 그들에게 한 아버지가 계시고, 머리이신 한 주인이 계시고, 그들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신 한 성령께서 계신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여 하나님나라에 입성하지만, 하나님나라의 백성됨은 개인주의적인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렇듯 하나님의 가족,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전이라는 공동체적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이 단어들 자체가 집합적 또는 공동체적이다. 신약성경이 보여 주는 회심은 개인적 결단으로 시작되지만, 공동체적 유대와 결속으로 온전하여진다. 즉, 하나님나라의 복음은 개인적 회심과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만들어 낸다. 이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를 교회라고 부른다.

가) 하나님나라 복음 공동체인 교회의 특징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 교회에는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이 나타난다. 먼저 그들은 한 아버지에게 입양되었기 때문에 서로 사랑한다. 예수께서 보여 주신 사랑을 하나님나라 백성들 가운데에서 누리는 것은 교회의 가장 큰 특징으로, 이러한 공동체 속에서 일체의 차별이 불가함을 사도들은 가르친다(갈 3:28, 골 3:11, 약 2:1-13). 차별 없이 서로 사랑하는 것을 넘어서서 어린 그리스도인들을 영적으로 보살피는 특징이 있다. 이런 보살핌은 죄와 잘못된 가르침으로부터 하나님의 가족들을 보호하는 권징(discipline, 마 18:18-20)도 포함하고 있다. 이렇게 복음에 굳건히 서서 요동치 않게 돕는 영적 양육과 지도가 교회의 중요한 특징이며, 더 나아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 삼으시는 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변증, 전도, 선교 등)이 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특징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머리로 삼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통치를 그리스도를 통해서 드러낸다. 예수께서 오셨을 때, 그가 계신 곳이 하나님나라가 임한 일종의 해방구였던 것처럼,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은 자들 속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이 교회의 주인이 예수님이심을 믿으며(마 16:18), 예수께서 이끄심에 따라 교회를 세워 나간다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나라를 받아들인 자들이 그의 통치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공동체적 삶에 드러낼 것인가에 마음을 집중하며, 그에 걸맞은 조직인 의사 결정 구조를 발전시킨다. 또한 각각의 다른 지체는 자신의 은사를 가지고 역할을 감당하여 몸으로서의 다양성과 하나됨을 드러낸다(롬 12장; 고전 12, 14장).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는, 깨어지고 허무에 굴복하는 세상을 충만케 하는, 즉 만물을 회복하는 사역에 부르심을 받아(엡 1:23; 4:13, 16; 골: 1:15-23), 자신의 공동체 내부에서 이러한 회복의 사역을 감당할 뿐 아니라, 세속 사회 속에서도 선한 일에 힘쓰며(롬 12:17; 13:3; 고후 8:21; 엡 2:10; 4:28; 골 1:10; 살후 2:17; 딤전 3:1; 5:10; 딤후 2:21; 3:17; 딛 1:16; 2:7, 14; 3:1, 8; 몬 1:14; 히 13:21; 벧전 2:12), 이러한 선을 행하다가 겪는 고난을 기쁘게 받아들인다(롬 5:3-5; 벧전 2:20-21).

성령의 전으로서 교회는 하나님의 영으로 그 하나됨을 지킨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통해서 완전히 드러날 하나님나라, 즉 하나님 아버지가 영원히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엡 2:22; 벧전 2:4-8), 그의 영의 이끄심을 받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이다. 성령이 성도 개개인이 구원받았음의 확실성을 보여 주는 인치심(롬 15:28; 고후 1:22; 엡 1:13; 4:30)이며, 또한 미래에 받게 될 구원에 대한 확증으로서의 보증(고후 1:22; 엡 1:13-14)이 되셨기 때문에, 이 성령을 따르는 자들은 단지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을 넘어서서, 종말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산제사를 드리는 종말론적 예배 공동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의 다시 오심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라나타의 공동체인 것이다.

나) 하나님나라 복음 공동체인 교회의 사명
많은 신학자들이 이미 지적하였듯이 교회는 하나님나라가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나라를 받아들인 사람들의 공동체이며, 이미 임한 하나님나라를 살아 내며, 앞으로 임하시게 될 하나님나라를 대망하고 있는 공동체이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하나님나라의 종말론적 이중구조 속에서 교회의 역할은 중차대하다. 교회는 단지 수동적으로 하나님을 수용하고 기다리는 자들이 아니라 그들이 믿는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살아 내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어, 세상 사람들의 빛이 되고(마 5:14-16; 엡 5:8-9; 빌 2:15; 골 1:12; 살전 5:5), 우리 가운데 있는 소망에 대해서 질문하게 만드는 적극적인 사명을 갖고 있다(벧전 3:15).

그러므로 하나님나라의 복음으로 세워진 교회는 다음의 세 가지 일에 전념하며 열매를 거둔다. 첫째는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하여 온전한 회심을 이루는 것이다. 죽어서 천국에 가기 위해 내 죄를 용서받았다는 값싼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총체적인 복음, 즉 하나님나라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섬기는 사역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나라 복음의 핵심 내용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지 않아 곤경에 처한 개인과 인류가 비록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구속적 사랑에 힘입어 하나님나라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통치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나라의 맥락에서 복음을 이해하게 될 때, 주(Lord)가 먼저이냐, 구세주(Savior)가 먼저냐는 논쟁은 무의미해진다. 예수가 주이시기에 구세주도 되신다는 메시지(행 2:36)는 참된 회심으로 우리를 이끈다. 물론 이러한 회심은 공동체로의 회심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거절하는 죄의 특징 중의 하나가 철저한 자기중심주의인데, 이로부터의 회심은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있는 공동체 속으로의 귀속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회심은 교회의 두 번째 사명으로 이어지는데, 그것은 어린 그리스도인들이 장성하여 그리스도를 닮아 가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나라의 비밀 중 하나는 단지 우리가 신분상으로 하나님나라 백성이 되는 것(롬 8장; 엡 2:3-5)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주인이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마 5:48)과, 그 하나님을 우리 인간이 이해할 수 있게 드러내 보여 주신 예수님을 닮아 가는 것(고전 11:1)이다. 제자도는 다름 아닌 이 예수를 닮아 가는 삶의 여정을 뜻한다.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믿는 교회는 제자도를 단지 경건 생활과 교회 생활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한정하여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며 그분을 닮아 갈 것인지를 가르친다. 성과 속을 나누는 이원론적 분리의 영성은 여기에 자리 잡을 수 없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연습하고 배운 삶의 원리를, 자신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삶의 터전에서 어떻게 드러낼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나라 복음에 기초한 제자도, 영성 형성, 영적 성숙을 꾀하는 교회들의 특징이다.

이렇게 하나님나라 복음이 전파되어 회심하고 사람들이 성장하는 터전은 하나님나라 백성의 공동체, 곧 교회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나라 복음 전파와 영적 성숙을 건강하게 이룰 공동체를 세우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신약성경을 조금 과장하고 단순화하여 설명한다면, 그 반은 구원의 도리에 대해서, 그리고 나머지 반은 교회에 대해서 쓰여졌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성경은 하나님나라의 복음과 그 복음의 공동체적 삶에 대해서 집중하고 있다. 과거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국교회뿐 아니라, 세계 교회의 문제는 성경에서 이토록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가르치고 있는 교회에 대해 충분히 집중하지 않았고, 초대교회가 드러냈던 하나님나라 백성의 삶을 자신의 세대에 적실한 각각의 옷을 입도록 노력하지 않은 데에서 비롯되었다. 위에서 살핀 하나님의 가족,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전으로서의 교회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드러낼 것인가가 바로 하나님나라 복음을 받아들인 교회가 천착하는 세 번째 사명이다.

맺으며 : '하나님나라 복음'을 따르는 자들이 절실하다

한국교회의 위기는 총체적이다. 이 위기의 중심에는 예수의 중심 가르침인 하나님나라 복음의 상실이 있다. 하나님나라와 복음이 이혼한 상태이다. 한국교회는 이 불행한 이혼을 청산하고, 하나님나라의 복음에 기초한 삶과 사역을 해내야 한다. 무엇보다 하나님나라 복음에 기초한 온전한 회심과 이에서 시작되는 진정한 제자도가 절실하다. 선한 일을 추구하는 진정한 제자도는 고난을 피할 수 없고 이는 종말론적 대망의 삶을 가져온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가장 본질적으로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나라 복음을 받아들여 그것을 살아 내려는 그리스도인과 그들의 공동체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나라와 복음 중 하나만 붙잡을 수 없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이며, 결혼한 상태처럼 나뉠 수 없는 것이다. 복음만 강조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나라만 강조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나라 복음'을 따르는 자들과 그들의 공동체가 일어날 때, 우리 교회는 점차적으로 교회로서의 면모를 회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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