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김형국 목사(나들목교회)가 기고한 것입니다. 먼저 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에서 발표했고 두란노서원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목회와 신학> 2월 호에 실렸습니다. - 편집자 주

들어가며 : 위기의 한국교회

한국교회가 위기라는 말은 이제 양치기 소년의 외침처럼 더 이상 위기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이다. 많은 분석과 비평이 있었고, 모두 이 시점에서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비평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상 아래에는 심각한 신학과 신앙의 오류가 있다. 그것은 예수가 가르치신 중심 사상의 분리이다. '하나님나라'와 '복음'이 이혼을 했다고 할까?

한국의 대부분의 보수적 그리스도인들을 생각해 보자. 그들은 예수를 신앙의 중심에 두고 충절을 바친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의 중심 사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보수적인 교인들은 사랑, 십자가, 구원, 복음, 제자도, 선교, 헌신, 섬김, 예배 등이라고 대답한다. 사복음서를 읽고 설교를 수없이 들으면서, 예수의 중심 사상을 거침없이 '하나님나라'라고 말하는 성도가 극소수라는 사실은 놀라움을 넘어 기가 막힌 일이다. 하나님나라를 마음에 임하는 평안 내지는 죽어서 가는 천당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의 보수 교회는 '십자가의 복음'을 꾸준히 선포하여 왔으며, 개인의 회개와 회심, 그리고 이를 통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 대한 강조 또한 빼놓지 않았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갖는 강점이지만, 예수의 중심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나라가 없는 복음에 대한 강조는, 복음의 총체적 이해와 종말론적 역사 이해를 놓치게 된다. 그리하여 보수 교회는 기껏해야 개인 경건주의에 충실하고 교회 봉사에 헌신한 성도 이상을 배출해 내지 못한다.

반면 하나님나라를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 특히 정의를 사회에 적용하는 것 정도로 이해하는 대다수 진보적인 교회에서는 복음이 없는 하나님나라가 선포된다. 사회 곳곳에서 행해지는 불의에 민감하고, 한국 사회가 하나의 공동체로서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것에 강조점을 두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토록 강조하셨던 자신의 죽음의 의미가 단지 정의를 위한 희생 정도로 희석될 때, 진보적인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기껏해야 선량한 시민이나 건전한 시민운동 단체 이상이 되기 힘들다.

보수 그리스도인들은 개인 구원을 강조하지만, 사회와 역사에 대한 의식이 거의 없다. 진보 그리스도인들은 사회 구원을 강조하지만, 회심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은 빈약하다. 후자는 예수를 다른 종교의 지도자들과 같은 반열로 강등해 예수에 대한 인격적 헌신을 약화시키니 교인의 수는 점차적으로 줄고, 교회는 점점 약화되고 있다. 전자 역시 사회적 역사적 무지와 무관심으로 인해 사회로부터 외면당해 교회와 교인 수가 줄어든다. 물론 보수 기독교의 경우, 여전히 메가처치 중심으로 교인들이 이합집산을 계속하고 있어, 아직도 사회적인 힘과 재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국의 보수 교회 전반은 급격한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렇게 보수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나라에 대한 무관심과 진보 그리스도인들의 복음에 대한 무관심이 한국교회 전반을 약화시키고 있는 근본적인 요인이다. 이 같은 '하나님나라와 복음의 이혼'이라는 문제는 단지 한국교회만의 문제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서구 교회와 신학계에서도 끊임없이 '예수와 바울'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 지속되어 왔다. 예수가 가르친 유대적인 하나님나라를, 바울이 범세계적(또는 헬라적)이고 개인주의적인 복음으로 전했다는 생각, 바울은 예수의 신실한 제자가 아니라, 기독교의 창시자라는 주장 등이 이러한 생각의 저변에 깔려 있다. 이렇게 예수와 바울의 이원화, 그리고 하나님나라와 복음의 이혼은 서구 교회를 성경이 가르치는 통합적인 교회가 아닌, 때로 개인주의적 신앙만을 강조하는 교회로, 때로는 제국주의에 이용당하는 집단으로, 또 때로는 사회를 구원하는 일에 경도된 사회운동 단체로 전락시켰다. 이러한 현상을 짧은 한국교회의 역사 속에서 극복하지 못한 것은 우리의 한계이며 또한 우리 다음 세대를 위해 극복하고 승화하여야 할 사명이기도 하다.

이 글은 예수의 중심 사상인 하나님나라를 요약하고, 하나님나라가 복음과 어떤 관계에 있고, 하나님나라 복음이 교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간략하게나마 요약함으로 한국교회가 회복해야 할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살피는 데 목적이 있다.

1. 예수와 바울의 중심 메시지 : 하나님나라

가)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다스리심'의 맥락
비록 '하나님나라'라는 말은 예수께서 처음 쓰신 말처럼 보이지만, 하나님나라의 중심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주권과 다스림, 하나님의 통치, 왕이신 하나님 등의 개념은 구약의 중심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고, 그래서 만물의 주인(창 14:19, 22; 대상 29:12; 단 2:47; 비교 마 11:25)이시다. 그분은 눈에 보이는 세계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주인이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출 15:18; 민 23:21; 신 33:5; 사 43:15)이실 뿐 아니라, 이방 모든 민족도 복종해야 하는 만민의 주인이시다(왕하 19:15; 사 6:5; 렘 46:18; 시 22:28; 29:10; 99:1-4).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만 주인이신 것이 아니라, 앞으로 올 세대에도 주인이시다(사 24:23; 33:22; 52:7; 습 3:15; 슥 14:9하). 구약은 끊임없이 이 하나님의 주권(Sovereignty)을 강조한다. 물론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의 주권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나타났고, 하나님은 이 신정국가를 통해서 당신을 열방에 드러내려 하셨다. 구약성경은 이러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이스라엘이 반복적으로 거역하고, 하나님이 끊임없이 이들을 돌이키시려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 북 이스라엘, 그리고 남 유다에 이른다. 이러한 심판과 바빌론 포로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그 선지자' 또는 '다윗의 자손' '여호와의 종'을 간절히 기다린다(사 9:6-7; 11:1-10; 53). 하나님은 '주의 날'('The Day of the Lord', 욜 2; 사 13-14; 습 1:16 등), 또는 '그 날'이 이르면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부르시며, 악인들과 악한 나라들을 심판하시고, 의인들과 그의 나라를 회복하실 것뿐 아니라, 죄로 인해서 깨어졌던 만물이 회복될 것을 약속하신다. 구약은 이렇게 메시아를 대망하며 마무리된다.

나) 자신을 하나님나라를 가져오는 메시아로 주장하신 예수
예수는 바로 구약의 이러한 대망이 자신에게서 이루어졌음을 선언한다. 그가 전한 하나님나라는 그가 새롭게 창조한 사상이 아니라, 구약을 통해 그토록 기다리던 약속의 성취였다. 예수는 반복적으로 자신에게서 구약의 예언들이 성취되었음을 선언한다(눅 4:21[사 61:1-2]; 마 11:2-6[사 35:4-6]). 물론 구약의 예언은 모두 주의 날과 메시아, 그리고 메시아가 임할 때 일어나는 심판, 회복과 치유에 대한 것이었다. 복음서는 메시아이신 예수께서 가시는 곳마다 귀신을 내어 쫒으시고(막 1:21-28; 9:19-29), 질병을 치유하신 것을 증언하고(막 1;29-34; 2:1-12; 3:1-6; 5:21-43; 6:53-56), 더 나아가 자연현상을 지배하신 것까지 증언하고 있는데(4:35-41; 6:45-52), 이는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기 때문에, 즉 어둠 가운데 빛이 비추어 일어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마 12:29; 눅 17:20-21).

예수는 그의 가르침을 통해서 하나님나라가 어떠한지를 끊임없이 가르친다. 예수의 가르침을 다섯 묶음으로 모아 편집한 마태복음의 경우, 하나님나라 백성의 삶의 모습(마 5-7장), 하나님나라를 위한 사도의 삶과 사역(마 10장), 하나님나라 비유 모음(마 13장), 하나님나라 공동체적 삶(마 18장), 그리고 다시 임할 하나님나라(마 23-25장)로 구성되어 있다. 비록 '천국'이라는 한국어 성경 번역으로 인해서 하나님나라를 마태복음에서 놓칠 수 있지만, 사복음서가 예수의 끊임없는 가르침 '하나님나라'에 대한 다양한 증언을 중심축으로 삼고 있는 것을 지나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수는 그가 이 땅에 오심으로, 그의 사역과 그의 가르침을 통해서 하나님나라가 이미 임하였다고 여러 번 주장하였다. 사역과 가르침을 넘어서, 그는 다양한 죄인들을 영접하고(막 2:13-17; 눅 5:27이하; 7:34; 15:1; 19:1이하) 이스라엘의 지파를 대표하는 열두 명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자신을 따르는 자들의 공동체를 세운다(막 13:13-19; 마 10:1-4; 눅 6:12-18). 실제로 그의 제자들의 공동체는 당시에 절대로 함께할 수 없는 자들이 예수를 중심으로 모여 있는 모습을 통해 이미 임한 하나님나라를 보여 주고 있다.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 위해서 예수는 자신의 가르침과 사역의 절정인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이 불가피함을 세 번이나 반복하여 가르친다. 공관복음, 곧 마태, 마가, 누가복음이 비록 각각의 강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가가 그의 복음서에서 채택한 이 세 번의 예고(8:31-38; 9:30-32; 10:32-34)를 마태(16:21-28; 17:22-23; 20:17-19)와 누가(9:22-27; 9:43-45; 18:31-34)도 받아들여 강조하고 있다. 또한 각각의 복음서가 예수의 생애 중 마지막 한 주간에 그 분량의 삼분의 일 이상을 할애하고 있는 것 역시, 복음서는 단지 예수에 대한 증언이 아니라 하나님나라를 이 땅에 도래시킨 메시아가 어떻게, 그리고 왜 죽고 부활하였는지에 대한 증언임을 보여 주고 있는 증거이다.

예수는 구약으로부터 기다려 왔던 하나님나라가 자신의 가르침, 사역, 제자 공동체, 자신의 오심과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이 땅에 임했다고 선언하였다.

다) 자신의 재림을 통한 하나님나라의 완성
예수는 하나님나라가 이미 임했다는 것을 보여 주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나라가 아직 완전히 임하지 않았다고 반복적으로 가르치기도 하였다(마 25:41; 마 13:36-43; 눅 13:28-29). 이는 하나님나라가 미래의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성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때는 모든 민족이 주께로 돌아오는 구약적인 비전이 완전하게 성취될 것이고, 전우주적인 회복이 일어날 것이다(마 24:29-30; 25:31-46). 예수는 이러한 완성이 있기 전에 고통스런 시간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마 24:3-14, 15-22)도 하셨지만, 이 속에서 인내로 기다리며 그 주인에게 충성된 자들을 결국 찾아오셔서 그들에게 상 주시고, 새로운 세계, 완전히 회복된 메시아 왕국을 이루실 것이라는 예언 또한 하셨다(마 24:45-51; 25:1-13, 14-30). 그러므로 구약이 기다림으로 끝난 것과 같이, 신약 역시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로, 기다림으로 끝나고 있다(계 22:20; 고전 16:22).

이렇게 이미 임한 하나님나라와 아직 임하지 않은 하나님나라의 개념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 각각 개별적으로도 서술되지만, 하나님나라의 주요 가르침인 씨앗 비유에서 이 두 가지 개념이 함께 나타나고 있다(마 13장). 이미 씨앗이 뿌려졌고, 현재 그 씨앗이 자라가고 있으며, 어느 날 추수할 날이 있을 것이라는 삼중의 시제가 이를 보여 준다. 과거·현재·미래의 시제가 하나님나라와 관련하여 다 사용된다.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이를 하나님나라의 '종말론적 이중구조'라고 부른다. 이는 하나님나라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임하였고, 현재 하나님의 통치가 그의 백성들을 통해서 이루어짐을 통해 자라가고 있으며, 그가 다시 오실 때에야 비로소 완성된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이중 구조는 구약적인 사고, 즉 주의 날이 임하면, '이 세대(this age)'는 끝나고 '오는 세대(age to come)'가 시작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직선적인 역사관과 근본적인 사상은 공유하나, 두 시대가 겹쳐서 존재하는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면에서는 다르다. 예수님의 초림으로 '오는 세대'가 이미 임하였지만, '이 세대'는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이어지고, 현재는 이미 임한 '오는 세대'와 결국 끝날 '이 세대'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임한 하나님나라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앞으로 임할 하나님나라를 믿음으로 기다리는 하나님의 충성된 종이라는 것이다.

2. 사도들이 가르치고 살아 낸 하나님나라

하나님나라 사상이 예수님에게 중심 사상이었다는 것은 이것이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 이후에 제자들과 이야기를 나눈 주제였던 사실(행 1:3, 6)과, 빌립(행 8:12)의 사역 그리고 사도바울의 사역에 중심(행 14:22; 19:8; 20:25; 28:23, 31)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된다. 복음서를 기록하고 이어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예수의 중심 사상과 초대 교회의 중심 사상이 동일함을, 그것도 열두제자에 이어 사도바울의 가르침까지 동일 선상에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사도들, 특히 바울은 유대 지역이나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사역을 한 것이 아니라, 비유대 지역에서 이방인을 대상으로 주로 사역하였으며, 또한 예수님의 부활로 하나님나라가 임하였고 예수님의 재림을 통한 완전하게 임하는 하나님나라를 기다리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복음서에 드러난 하나님나라 사상과는 그 강조점과 적용점에 있어 약간의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었으며, 이러한 차이점이 다음과 같은 강조점들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가) 성령의 중요성
먼저 오순절 때의 사도 베드로의 설교로부터 시작해서, 복음이 중요한 지리적 한계를 넘어갈 때마다, 즉 사마리아인들에게, 또한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될 때마다 성령께서 주도권을 잡고 행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행 2장, 8장, 10-11장, 19장). 요한복음에서 특별하게 강조되었던 보혜사 성령께서 하나님나라가 시작되고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발견한다(요 14:16, 26; 15:26; 16:17). 사람들이 회심하고 회심한 사람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세워지는 과정은 성령의 역사를 빼놓고서는 설명할 수 없었다(살전 1:5). 많은 사람이 생각하듯, 성령은 구약에서는 침묵하다가 신약에 이르러 급작스럽게 나타난 것 같지만, 실제로 예언서들은 메시아의 오심과 하나님의 영의 흘러넘침에 대해서 풍성히 예고하고 있고 이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나타내는 것이었다(사 32:15 이하; 35:6 이하; 43:19 이하; 겔 11:19; 36:26-27; 37:11 이하; 39:29; 욜 2:28-29). 이러한 구약의 기대가 초대교회 이후 교회의 사역 속에서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성령은 가히 이미 임한 하나님나라와 완성될 하나님나라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는 하나님나라 백성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시다.

나) 이방인을 포함하는 새로운 이스라엘
초대교회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 중의 하나는, 형성 초기 유대인 중심으로 이루어진 교회에 어떻게 이방인이 유입되어, 새로운 이스라엘이 형성되었는가 하는 문제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나라가 이제 유대인의 영역을 벗어나 땅 끝, 곧 전 세계를 향하여 침투해 나가는 과정을 어떻게 신학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지가 초대교회의 중요한 과제였다. 사도행전은 이 주제를 중요하게 다루는데, 고넬료의 집안의 성령세례(행 10장), 안디옥 교회의 탄생(행 11, 13장), 예루살렘 공의회(행 15장), 그리고 사도바울의 로마에서의 하나님나라 선포(행 28장)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으로 이 일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보여 준다. 신학적으로는 사도바울의 초기 편지인 갈라디아서가 이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그가 "나의 복음"(롬 2:16; 16:25)이라고 표현하며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자세히 정리한 로마서(특히 9-11장)가 이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하나님의 "남은 자들"이 구약으로부터 기다려 왔고, 예수님이 그 도래를 선포하셨던 하나님의 나라가 유대인뿐 아니라 만민들에게도 실제적으로 선포되었으며, 이를 통해 실제로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없었던 백성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되었다(롬 9:25-26). 초대교회의 사도와 성도들은 예수님의 오심,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실제로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였다는 역사의식과,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어떠한 차별도 없는 하나님나라의 새로운 공동체가 형성되었다는 강력한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다) 하나님나라 공동체인 신약의 교회들
신약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초기 교회들의 이야기는 바로 이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듣고 회심한 사람들의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이다. 감히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여김을 받을 수 없었던 자들,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었던 자들(롬 1:18; 엡 2:1)이 어떻게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는가가 그들의 깊은 관심사였다. 예수를 의지하여 모든 이들을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복음에 나타나 있는 것이다(롬 1:16).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은 부르심을 받은 자들로서 교회(에클레시아)를 형성한다. 이들은 더 이상 세속, 즉 이 세대를 본받지 아니하고(롬 12:2), 그의 아들의 나라에 옮겨진 것(골 1:15)에 감격하며, 하나님나라 시민으로서 하나님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자다운 삶을 살며(롬 14:17; 고전 6:9-10; 갈 5:16-21; 엡 5:5), 하나님나라를 위한 선한 일(good works)을 행한다. 아래에서 다루겠지만 신약 교회의 특징은 이미 임하고, 앞으로 온전하게 임할 하나님나라를 이 땅에서 드러내 보이는 것이었다. 신약의 교회들은 하나님나라라는 예수의 중심 가르침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복음의 의미가 이런 종말론적 맥락에서 선포되고 가르쳐졌고, 쉽게 이원론으로 둔갑할 수 있는 물질주의와 현세주의, 그리고 개인주의를 극복할 수 있었다. 당연히 신약의 교회들은 하나님나라를 드러내는 운동 공동체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결코 하나의 종교 기관으로 전락하지 않았다. 신약의 교회에서 발견하게 되는 공동체성, 운동성, 변혁성 등은, 그들이 이미 드러난 하나님나라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온전히 임할 하나님나라를 기다리고 있는 공동체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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