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CC 총회를 반대하는 이들은 WCC가 동성애와 종교다원주의를 공식적으로 지지한다며 반대했다. 그러나 WCC 내부적으로도 이 문제는 아직 정식 논의가 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총회가 열린 10월 31일 한기총이 WCC 총회 반대 집회를 하고 있는 모습. ⓒ뉴스앤조이 이규혁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가 한창인 11월 2~3일, 서울에서는 1박 2일 일정으로 '성 소수자 그리스도인의 만남' 행사가 열렸다. WCC 총회에 참가하러 온 미국·유럽·아시아 등 각 대륙 성 소수자 기독교인과 한국 성 소수자 기독교인이 모여 이들을 향한 차별, 박해 등에 관한 대응을 논의했다. 이들은 11월 3일 광화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 소수자 혐오를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일컫는 모든 행위를 반대하고, 성서나 교리를 바탕으로 성 소수자를 죄악시하는 혐오를 멈춰라"는 내용이 담긴 선언문을 발표했다.

성 소수자 모임이 발표한 선언문은 부산에서 WCC 총회 반대 시위를 하는 이들에게 자극제로 작용했다. 반대 시위자들은 11월 4일 '동성애자를 지지하는 WCC'란 제목이 쓰인 유인물을 나눠 주며 "WCC는 적그리스도, 마귀 집단"이라고 외쳤다. 유인물에는 행사장 '마당'에 설치된 동성애 관련 부스 사진과 11월 3일 광화문 기자회견 사진이 담겨 있었다. 반대 측은 WCC가 사실상 동성애를 허용한 것으로 봤다.

앞서 WCC 측은 동성애에 관한 어떤 결의도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10월 31일 WCC 월터 알트만 의장과 울라프 픽쉐 트베이트 총무는 기자회견에서 WCC는 동성애를 지지하는 결정도 반대한 결정도 내린 적이 없다고 했다. WCC를 대표하는 이들의 공식 발언에도 논란은 잦아들지 않았다. 반대 집회에 참가한 순복음 측 한 목사는 "성경에는 '차갑든지 뜨겁든지 하라'고 나와 있다"며 WCC가 분명한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

총회 안에서도 동성애 입장을 놓고 치열한 논의가 오갔다. 11월 1일 열린 회의에서 동성 결혼이 성경적 가족관을 파괴한다는 의견과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이 충돌했다.

헬렌 부어 LGBT 회장 "WCC, 교회의 성 소수자 차별 논의해야"

▲ 헬렌 데 부어 유러피언 포럼 LGBT 공동회장은 보수 교인들이 소돔과 고모라를 들며 동성애를 반대한다며 성서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했다. 예수의 말씀에도 대치되는 문구가 많다며 일방적인 해석은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WCC 내외부적으로 동성애 논란이 거세지만, 정작 마당 안에 설치된 유러피언 포럼 LGBT 부스는 다른 부스에 비해 한산했다. 우리나라 말로 성 소수자를 뜻하는 LGBT는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바이섹슈얼(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의 이니셜을 합친 말이다. 부스 테이블 위에는 A4 용지 1/2 크기의 파란색 안내 소책자가 놓여 있었다. 한글로 된 파란 소책자 겉표지에는 '이제는 우리가 연대하여 맞설 때'라고 적혀 있었다.

11월 5일 오후 4시경, 헬렌 데 부어 유러피언 포럼 LGBT 공동회장을 만났다. 그는 참가자들의 미지근한 반응에 실망한 듯했다. 찬성이든, 반대든 여러 의견이 나오길 기대했지만 총회 참가자들은 소극적이었다고 했다. 에피소드를 묻는 말에 이야기를 하나를 들려줬다. "며칠 전 한국인 남성이 부스를 찾아왔다. 나보고 이 일을 그만 접고 새로 결혼이나 하라더라."(웃음)

네덜란드에서 온 부어 회장은 올해 49살 레즈비언이다. 16살 연상의 부인과 함께 2002년 결혼해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다. LGBT 포럼은 제9차 포르투알레그레 총회부터 진행하고 있다. 성 소수자의 고충을 알리고, 편견을 깨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부스는 WCC 제네바 본부 측의 승인을 받아 설치했다.

동성애를 완강히 반대하는 한국 교인을 본 느낌이 어땠을까. 부어 회장은 한국 교인에 대한 평가에 앞서 성서 해석 문제를 먼저 언급했다. 대다수가 소돔과 고모라를 들며 동성애를 반대한다며 성서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했다. 예수의 말씀에도 대치되는 문구가 많다며 일방적인 해석은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하나님이 지은 피조물이 다양한 것처럼, 사람의 성 정체성도 다양하다는 것을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네덜란드는 2001년 동성 결혼을 법적으로 허용했다. 하지만 보수적인 교회의 반감은 여전하다. 부어 회장은 지난 1996년 동성애를 부정적으로 다룬 설교를 들은 후 다니던 교회를 떠났다. 새 교회에는 몇몇 동성 커플이 다니고 있으며, 현재 신앙생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최근 WCC 의장과 총무가 동성애 논란을 두고 한 말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라고 했다. 동성애에 대해 WCC가 정확한 입장을 가져야 성 소수자들이 보이지 않는 위협에게서 보호받을 수 있다고 했다. 많은 성 소수자가 보이지 않는 폭력에 노출돼 있고, 일부 교회는 보이지 않는 폭력에 동참한다고 했다. 부어 회장은 WCC가 폭력과 차별을 조장하는 교회에 대해 논의하길 바란다고 했다.

동성애 찬반 측 모두 WCC 입장 원해

▲ 유러피언 LGBT 부스는 다른 부스에 비해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총회 8일차인 11월 6일 오후에도 LGBT 부스는 다른 부스에 비해 한산했다. 백인 남성 2명과 여성 1명이 부스를 지키고 있었다. 한국 참가자로 보이는 4명의 중년 여성이 LGBT 부스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굳은 표정이 어딘가 불편한 듯했다. 다가가 자초지종을 묻자, 기다렸다는 듯 말을 쏟아냈다. 평신도라고 밝힌 박 아무개 집사는 동성애는 창조 질서의 원리에 어긋난다며 부스 안의 사람들이 영적으로 치유받아야 한다고 소리를 높였다. 그는 "(LGBT) 부스를 왜 설치하게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저 사람들도 교회 다닌다고 하자 "가짜 교회다. 하나님의 진리를 갉아먹는 교회에 다닐 것"이라고 말했다.

동성애에 대한 걱정은 군대와 나라 문제로 이어졌다. 동행한 이 아무개 집사는 LGBT 부스를 통해 동성애가 번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회와 군대가 성 문란에 뒤덮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집사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자식 가진 부모로서 당연히 드는 생각"이라고 했다. WCC를 지지하느냐는 질문에 손사래를 치며 반대한다고 했다. 견학하기 위해 서울에서 온 것뿐이라고 했다. 기자라고 신분을 밝히자 인터뷰하라며 동행한 목사를 불렀다. 목사는 부스 안 대머리 백인 남성을 가리키며 "저거 봐, 꼭 에이즈 환자처럼 삐쩍 말랐잖아"라고 말했다.

▲ 성 소수자 기독교인 세미나가 11월 5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렸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WCC 총회를 반대하는 이들은 총회장 앞에서 '동성애자를 지지하는 WCC'(사진) 유인물을 돌렸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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