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CC가 30년 만에 공식 발표한 선교 성명서는 '생명'을 강조한다. 과도한 성장주의와 개발주의로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환경이 오염되는 등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파괴된다고 진단하며, 성령의 역사를 통해 함께 생명으로 나아갈 것은 제안한다. 사진은 선교 성명서 작성에 참여한 코오릴로스 주교, 커스틴 킴 교수, 금주섭 목사(사진 왼쪽부터). ⓒ뉴스앤조이 이규혁
세계교회협의회(WCC)가 가난한 자와 억압받는 자를 위해 행동할 것을 강조하는 내용의 선교 성명서를 발표했다. '함께 생명을 향하여 : 기독교의 지형 변화 속에서 선교와 전도'라는 제목의 문서는 1982년 발표한 '선교와 전도 : 에큐메니컬 확언' 이후, 30년 만에 나온 WCC의 새로운 선교 성명서다. WCC 중앙위원회가 2012년 9월 5일 그리스 크레타 섬에서 열린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승인한 이 문서는 11월 4일 부산 벡스코 오디토리움에서 공개됐다.

이번 WCC 선교 성명서는 성령의 선교 사역을 크게 부각했다. 성명은 112개 항목을 △선교의 성령(생명의 숨결) △해방의 성령(주변으로부터의 선교) △공동체의 성령(움직이는 교회) △오순절의 성령(모든 사람과 만유를 위한 복음) 등 4가지 주제로 묶었다.

성명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생명'에 대한 강조다. 1항은 '만물 가운데 생명을 충만하게 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궁극적 관심이며 선교'라고 천명한다. 성명 작성에 참여한 세계선교와전도위원회(CWME) 부의장 커스틴 킴 교수(Kirsteen Kim‧영국)는 생명이야말로 WCC 선교와 전도에 대한 새로운 확언이라고 말했다.

WCC는 이 생명이 자본주의로 인해 위협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7항은 '현재 극대화되는 시장 이념이 사람들의 경제적인 삶과 영적인 삶, 인간성뿐만 아니라 온 창조 세계까지 위협한다'고 정의한다. 때문에 이러한 시장 이념을 맘몬으로 규정하고 복음과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실리아 카스티요 난하리 목사(Cecilia Castillo Nanjarí·칠레)는 "개발과 성장은 우리 기독교에 새로운 도전이다. 개발과 성장의 논리로는 생명과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커스틴 킴 교수도 세계화의 과정 속에서 착취당하고 소외되는 사람들이 기하급수로 늘어나며, 사회구조가 하나님이 창조한 생명을 파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신음하고 있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교회는 가난한 자와 억압받는 자를 위한 사회정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WCC는 짚었다. 이러한 작업은 성령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봤다. 가부장적 이념, 인종주의, 카스트제도 등 하나님의 해방과 화해 사역을 방해하는 사회악에 도전하고(43항),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풀며 하나님의 통치 가치를 이 땅에 구현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WCC는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교회의 언행일치가 중요하다고 했다. 4장 '오순절의 성령'은 "전도는 좋은 소식을 말과 행동으로 나누는 것이다. 언어적 선포 혹은 복음 설교(kerygma)를 통한 전도는 아주 성서적이다. 그러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으면 우리의 전도는 신뢰할 수 없는 것이 된다. 말로 하는 진술과 눈에 보이는 행동이 결합되어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와 하나님의 목적을 증언하게 된다"고 적었다. WCC는 "서로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선포하는 복음을 증명하는 반면 분열은 복음에 방해가 된다"고 말했다.

새 선교 성명서는 선교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커스틴 킴 교수는 "복음은 우리가 가방에 포장해서 선교지에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곳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했다. 스티븐 베번스 신부(Stephen Bevans·미국)는 "더는 우리가 주변 사람들에게 선교를 하거나 생명을 선물한다는 개념으로 다가가서는 안 된다. 함께 생명의 선교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전달자와 피전달자의 관계에서 함께 선교를 이뤄 나가는 동반자 관계로 변해야 한다는 뜻이다.

▲ 리즈신학대학교 커스틴 킴 교수가 WCC의 선교와 전도 방향을 천명하는 선교 성명서를 공식 발표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규혁

선교 성명서 발표 후, WCC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장에서는 종교다원주의와 관련한 질문이 주를 이뤘다. 한 외신 기자가 WCC가 종교다원주의를 추구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이번 선교 성명서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를 물었다. 커스틴 킴 교수는 성령은 기독교 공동체에만 국한하지 않고 모든 곳에서 역사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람들의 선함을 발견하고 생명을 위해 함께 일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성령의 역사"라고 말했다. WCC세계선교와전도위원회 총무 금주섭 목사는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과 종교가 없는 공동체에게도 생명을 살리는 지혜들이 있다. 그 지혜들 역시 성령의 활동이다.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정죄하지 않을 것이다. 언제든지 협력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시리아 정교회 코오릴로스 주교(Geevargjese Mor Coorilos)는 앞으로 4년간 새로운 선교 성명서를 토대로 선교와 전도 운동을 실천하겠다고 했다. 2018년에 WCC는 세계 전도 대회를 열어 그간의 활동을 종합하고 평가할 계획이다.

▲ 선교 성명서 발표 후, 필리핀교회협의회(NCCP) 소속 문화 공연 단체인 떼아뜨로 에큐메니컬(Teatro Ekyumenikal) 팀의 공연이 있었다. 전쟁과 기근, 착취와 억압을 이기고 생명과 평화, 정의로 나아가길 염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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