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CC 부산 총회 개막식이 열린 10월 30일, 부산 벡스코 주변은 WCC 여론으로 들끓었다. 한기총과 총신대 신대원도 WCC 반대 집회에 가세했다. 반대 집회 후 한기총이 행진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규혁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 개막식이 열린 10월 30일, 부산 벡스코 주변은 WCC 반대 여론으로 들끓었다. 회의장 앞에 집회 신고를 하지 못한 반대자들은 게릴라식 소규모 집회를 열거나, 멀지 않은 곳에서 기도회를 개최했다. 이날 모인 반대자들은 하나같이 WCC가 종교혼합주의와 동성애,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적그리스도라고 외쳤다.

▲ 한기총 WCC 반대 집회에서 설교자로 나선 홍재철 대표회장. 그는 WCC가 돈이 하나도 없는 거지 단체라며, 교인들이 열성적으로 헌금하는 한국에 와서 돈벌이를 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뉴스앤조이 이규혁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홍재철 대표회장)는 WCC 반대 집회를 위해 57개 교단에서 교인 3000여 명을 불러 모았다. 참석자들은 서울·대전·대구·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었다. 저마다 WCC를 비판하거나 대회 철회를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었다.

집회는 단순하게 이뤄졌다. 한기총 소속 목사들이 한 명씩 나와 WCC를 규탄하는 대표 기도를 하면, 교인들이 만세 삼창을 외치고 뜨겁게 통성으로 기도했다. 한기총은 WCC가 용공주의, 종교혼합주의, 동성애, 일부다처제, 개종 전도 금지를 추구하는 집단이라며 당장 회개하라고 했다.

홍재철 대표회장은 WCC가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온 것이라고 발언했다. 그는 WCC가 돈이 하나도 없는 거지 단체라며, 교인들이 열성적으로 헌금하는 한국에 와서 돈벌이를 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홍 대표회장은 WCC 소속 교회 교인들에게 "십일조와 헌금을 마귀에게 쓰라고 주는 것"이라며 참여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WCC 행사를 준비한 WCC한국준비위원회(한준위·김삼환 대표대회장)를 비판하기도 했다. 홍 대표회장은 한기총과 한준위가 함께 발표했던 공동선언문을 파기한 것을 비난했다. 당시 공동선언문에는 종교다원주의를 배격하고, 공산주의 및 동성애 사상과 개종 전도 금지주의 등을 반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홍 대표회장은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동의할 내용을 한준위가 일방적으로 파기했다고 주장했다.

집회에 참석한 윤경원 목사는 WCC의 종교혼합주의가 기독교 사상에 어긋난다고 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고신 소속이라고 밝힌 윤 목사는, WCC는 반대하지만 반대 집회는 하지 않겠다는 교단의 결정이 아쉽다고 말했다. 자신은 WCC의 잘못된 신앙관이 가져올 폐해가 심각하다고 판단해 개인적으로 부산을 찾았다고 했다.

▲ 한기총 임원들의 대표 기도가 끝나면, 참석자들은 만세 삼창과 함께 통성 기도를 했다. ⓒ뉴스앤조이 이규혁

집회를 마친 한기총 임원들과 교인들은 10여 분간 나루공원 인도를 걸으며 행진 시위를 했다. 구호 선창에는 예장합동 황규철 총무가 나섰다. 황 총무가 "WCC는 적그리스도 단체"라고 선창하면, 2000여 명의 참석자들이 따라 외쳤다.

같은 시각, 벡스코 근처 수영로교회에서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학생 및 교직원들이 WCC를 규탄하는 기도회를 열었다. 기도회는 수영로교회가 예배당 대관을 허가하지 않아 입구 계단에서 진행했다. 수업을 WCC 반대 기도회로 대체한 이날 집회에는 신학생 830여 명, 교직원 40여 명 등 총 870여 명이 참석했다. 총신대 신대원 학생들은 'WCC 부산 총회가 좌초되길 바란다'는 제목으로 기도했다.

▲ WCC 반대 기도회를 위해 수영로교회에 모인 총신대 신대원 학생과 교직원들. 870여 명의 참석자는 WCC 부산 총회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뉴스앤조이 한경민

예장합동 안명환 총회장은 WCC 같은 적그리스도를 궤멸시켜야 한다고 했다. 자신과 같은 선배들은 정년이 다 되어 이제 곧 떠나지만 총신대 신학생들이 교단의 정신을 이어받길 바란다고 했다. 신대원장인 박희석 교수는 WCC가 사회 참여를 강조하고 봉사에 힘쓴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동성애를 지지하는 등 비성경적 신앙관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총신대 신대원 일동은 WCC 총회를 반대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 내용은 WCC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부인한다 △정통 기독교의 삼위일체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교리를 거부한다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시는 교회가 아니라 WCC 자체가 머리가 되는 세계적인 협의체를 추구한다 △종교 간의 대화라는 허명으로 타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종교 다원론을 추구한다 △회원 교회들의 합의를 성경의 권위보다 위에 둔다 등이다.

개막 전날 보수교단교회연합회에 참가했던 WCC 반대자들도 대회장 주변에서 소규모 집회를 열었다. 회원들은 WCC의 신앙관이 반기독교적이라는 내용의 영문 전단지를 돌렸다. 대부분의 외국인 참가자들은 신경 쓰지 않고 지나쳤지만, 일부 참가자들은 보수교단교회연합회 회원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 일부 WCC 참석자들은 반대자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이규혁

집회 참석자 정다와(29) 씨는 "오직 구원자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뿐"이라는 피켓을 들고 수 시간을 서 있었다. 정 씨는 WCC가 구원에 이르는 길이 다양할 수 있다는 주장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은 WCC의 참가자들의 생명을 살리고 싶어 이렇게 나섰다고 말했다.

반대 집회를 바라보던 WCC 참가자 이브 로저 씨(37·Eve Rosser·미국)는 "공동체의 생각을 외부로 표출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했다. WCC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보며 "마귀, 사탄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그는, 그들이 자기 나름대로의 주장을 펼치는 것이기 때문에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필립푸스 씨(50·PHillpus Yassu)는 반대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과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는 "반대 집회를 하는 사람들도 교회의 일부이기 때문에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WCC 한국준비위원회 집행위원장 김영주 목사는 부산 곳곳에서 열린 반대 집회에 불편해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잔치를 방해하는 것은 종교인이기 전에 인간으로서의 예의가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 WCC 반대 집회 후 행진 시위에 나선 참석자들. ⓒ뉴스앤조이 이규혁
▲ 행진 시위 선두에 홍재철 한기총 대표회장과 황규철 예장합동 총무가 섰다. 황 총무가 "WCC는 한국 땅에서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치면, 뒤따르던 2000여 명의 교인이 따라 외쳤다.ⓒ뉴스앤조이 이규혁
▲ 경찰과 맞닥뜨린 WCC 반대 시위대. 이날 한기총은 WCC 총회 장소인 벡스코로 행진을 시도했지만, 집회 신고 범위를 벗어나 경찰에게 막혔다. ⓒ뉴스앤조이 이규혁
▲ 행진이 막히자 홍재철 한기총 대표회장은 참석자들에게 해산하자고 말했다. 대부분 참석자는 돌아갔고, 일부는 부산에 남아 앞으로 있을 WCC 반대 집회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규혁
▲ WCC 반대자 중 한 명이 총회 장소인 벡스코에 들어가려 하자, 경찰이 막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규혁
▲ 인도네시아에서 온 한 WCC 참가자가 1인 시위를 펼치고 있는 반대자와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그는 "민주 사회에서 의견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며, 반대 뜻을 자연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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