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5일 '제1회 박정희 대통령 추모 예배'라는 괴상망측한 정치 행사가 열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주간은 종교개혁주간이다. 약 500년 전 루터가 하나님을 빙자하여 자기 기득권을 영속하려 했던 종교 권력들의 위선을 고발했던 것을 기념하는 주간에 이런 망동이 일어났다는 게 더욱 가슴 떨리게 했다.

1. 하필 왜 이 시점에?

이들을 단순한 박정희 추종자로 보지 말라. 이 정치쇼 현장인 서울나들목교회 박원영 목사는 이미 유명한 사람이다. 그는 신대원 졸업 후 얼마 안 되어 벌써 어느 기독교계 신문을 창립하여 영향력을 늘렸고, 강해설교학교라는 단체를 만들어 이번에 함께 참여한 백광진 목사를 비롯해 한기총 부패 주역 길자연 목사 등과 벌써 막역한 관계를 맺는다.

그 박원영 목사가 지금은 자기 교단에서 사면초가다. 2010년 아이티 지진이 일어났을 때 총회에서 모금한 30억 원이 넘는 구호 기금을 맡아 본래 목적인 구호를 위해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엉뚱하게 20억이 넘는 돈으로 비전센터를 건립하겠다며 탕진하고 나머지 비용도 자기가 만든 단체 운영비 등으로 사용한 혐의로 예장합동 총회에서 사법 처리와 손해배상이 결의된 상태다.

또 함께 자리한 하귀호 목사 역시 그 아이티 사태 관련자로 총회에서 함께 손해배상 청구 대상이 되었을 뿐 아니라, 총회세계선교회(GMS) 임원회가 선교사 기금 10억 원을 불법 전용하여 지금껏 문제가 되고 있는 사태 당시 가장 큰 책임을 갖고 있는 이사장으로서 지금 압박을 받고 있다. 역시 이름을 올린 길자연 목사는 이미 유명한 분이니 말할 것도 없다.

이게 단순한 추모 예배일까? 사후 5년, 10년도 아니고, 무려 34년이라는 무수한 세월이 흐른 후, 유족들도 아닌 이들이 도대체 왜 '제1회 추모 예배'를 벌였을까? 교계 부패와 비리하면 빠지지 않다가 사면초가에 몰린 이들이 이번 정치 쇼를 주도한 이유가 뭘까?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 현재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있는 1년 만에 그 가족을 모셔 놓고 뭘 보여 주고 싶었을까? '날 건드리지 말라. 내 뒤에는…'

2. 박정희 공헌론과 뉴라이트적 역사관

서기 313년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 콘스탄틴 황제에 대해서는 항상 평가가 엇갈린다. 많은 사람들은 핍박과 차별에 시달리던 기독교를 구하고 발전에 공헌한 '은인'으로 평한다. 그러나 또 다른 편에서는 그때부터 교회가 로마제국의 온갖 특혜 속에 길들여지고 스스로 권력에 취해 가며 본격적인 부패와 타락으로 이끈 '음흉한 정치인'으로 보기도 한다. 분명한 건 그 이후 기독교회는 엄청나게 부패의 길을 걸었고 중세기에 이르도록 최악으로 치닫다가 루터의 '저항(protest)'을 자초한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자신이 기독교인 신자라고 앞뒤 안 가리고 기독교 편애 정책을 썼다. 당시 인구 비율에도 맞지 않는 온갖 특혜와 기독교인 내각(4.19 당시 발포 명령자 최인규 내무장관도 집사였다)을 거듭했다. 기독교는 그 은혜(?)를 잊지 못한다. 그러나 그런 온갖 특혜와 편향 속에서 길들여진 기독교회가 침묵하는 가운데, 부패와 백성들 피의 희생 속에 12년 독재가 유지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분명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게 무슨 대수인가? 그의 집권 기간 동안 분명 기독교는 비약적인 양적 성장을 했고, 세계에 유례없는 대형 교회들은 우뚝우뚝 솟았다. 그래서 적지 않은 교회 지도자들은 지금도 '그분의 그 크신 은혜'를 못 잊어 감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역시 누구의 기독교냐가 중요하다. 한편의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유례없는 특혜와 성장을 만끽하고 있는 동안(한경직, 조용기, 김준곤 등이 대표적이다), 다른 편의 기독교인들은 매 맞고, 구속되고, 쫓겨났다. 그러면 기독교인도 아닌 박정희는 왜 이들에게 특혜를 베풀었을까? 5·16쿠데타 직후 정권 존립의 최대 고비인 미국의 승인을 목말라했던 군부는 당시 대한민국 최대의 미국통들인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힘을 빌렸다. 미국의 전 대통령과 동창인 한경직 목사를 비롯한 한 떼의 목사들은 군사정권 승인을 읍소하는 방미길에 나섰고 큰 성과를 얻어 박정희에게 넘겨주었다.

1972년 유신 쿠데타 직후 이들이 주축이 된 한국의 '대표' 목사들은 유신은 구국의 결단이라는 성명서에 이름을 올려 주었다. 그리고 이들의 교회들은 박정희 시대에 어김없이 성장하였다. 과연 이들의 특혜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가? 지금 한창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이승만 입국론을 비롯한 뉴라이트적 역사관의 핵심은 '힘이 곧 진리다' 이다. 그건 바알의 세계관과 정확히 일치한다.

3. 정말 보수적이라면 이들을 면직시켜라

이 정치쇼는 단순히 고인을 추모하는 예배가 아니라, 우상숭배 그 자체였다. 강대상 뒤에는 박 전 대통령의 대형 사진이 붙어 있었고, 설교를 비롯한 모든 참석자들의 발언은 하나님께 드리는 영광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찬양으로 일관했다.

부패한 한국교회가 결국 여기까지 간 것이다. 바알과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사실상 바알을 섬기는 것이다. 이들이 속해 있는 교단은 대부분 한국교회에서도 내로라하는 보수 교단들이다. 보수 교단이 공공연하게 자행하는 우상숭배를 용납하는가? 정말 보수 교단이라면 우상숭배를 자행한 이들을 면직해야 한다.

496주년을 맞는 종교개혁주일을 보며 지금 루터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한국 개신교는 정말 중세의 로마가톨릭으로부터 벗어난 게 사실일까.

* 이 기사는 <뉴스파워>에 함께 기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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