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계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첫 예배가 10월 25일 서울 도곡동 서울나들목교회(박원영 목사)에서 열렸다. 1979년 10월 26일, 박 전 대통령이 궁정동에서 세상을 떠난 지 만 34년이 되는 날이었다. 박정희대통령추모예배준비위원회(준비위·남기수 위원장)는 박 전 대통령이 기독교 발전에 공헌한 역사적 사실들이 새롭게 밝혀져, 그의 기독교 신앙을 재조명하고자 이번 추모 예배를 마련한 것이라고 했다.

교계에서만 박정희 전 대통령을 기리는 움직임이 있는 건 아니다. 얼마 전인 10월 12일, 경주 불국사가 주관한 '제41회 신라 불교문화 영산 대제'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대형 초상화가 등장했다. 불국사를 빛낸 5대 위인으로 법흥왕 등 불교계 위인들과 박 전 대통령이 어깨를 나란히 한 것. 불국사 측은 박 전 대통령이 불교 부흥에 크게 기여했다며, 1997년부터 그를 기리는 제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구미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95회 탄신제'는 박 전 대통령을 우상화한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남유진 구미시장은 박 전 대통령을 "피와 땀을 조국에 헌신하신 반인반신의 지도자"라고 표현했다. 심학봉 새누리당 의원은 "금오산에는 두 명의 대통령이 나온다는 전설이 있다"며 박 전 대통령을 전설 속에 나오는 인물로 묘사했다. 행사에 참석했던 일부 시민들은 박 전 대통령 영정에 절을 하며 '신'이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의 신주를 집에 모셨다고 밝힌 사람도 있었다.

이런 박 전 대통령 추모 대열에 기독교계도 뛰어든 모양새다. 박 전 대통령의 기독교 신앙을 재조명한다는 추모 예배를 교계 인사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예배가 열리기 전인 10월 25일, <뉴스앤조이>는 주요 교계 인사들에게 전화로 의견을 물었다.

▲ 10월 25일 기독교계가 처음으로 주최한 박정희 전 대통령 추모 예배. 교계 인사들은 일부 기독교인들이 권력과 영합하려는 시도가 아닌지 우려했다.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박정희 우상화에 기독교가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규혁

"박정희 추모 예배는 권력에 아첨하는 것"

민주화 운동가 이해학 목사(주민교회 원로)는 소수의 목사들이 박 전 대통령과 영합한 일은 있지만, 다수의 기독교인들은 박 전 대통령에게 핍박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박정희가 기독교 발전에 공헌했다고 윤색하는 건 사탄이 하는 일이다. 권력과 영합하고 아첨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 목사는 유신 정권 아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기독교 역사학자 박정신 교수(숭실대)는 박정희 전 대통령 추모 예배 소식에 펄쩍 뛰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은 기독교 인권 운동을 탄압했던 사람이다. 교계가 이를 미화해선 안 된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이 죽은 바로 다음도 아니고 그의 딸이 대통령일 때 추모 예배를 하는 건 교회가 권력에 아부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김근주 교수(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역시 박근혜 정권 아래서 갑자기 추모 예배를 연다는 건 누가 봐도 권력에 영합하려는 일부 목사들의 추태이자 아첨이라고 지적했다. 정재영 교수(실천신대 종교사회학)는 34년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다가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다음에 추모 예배를 하는 것이 의심스럽다고 했다. 정 교수는 종교는 현실 정치와 결탁해선 안 된다며 적당히 거리를 두고 비판적인 자세를 취할 것을 주문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 감옥살이를 했던 인명진 목사(갈릴리교회 원로)는 박 전 대통령 추모 예배가 열린다는 말에 "누가 그런 어이없는 일을 하느냐"며 말도 꺼내기 싫다고 했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던 박형규 목사(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도 그런 추모 행사를 왜 하는지 생각하기도 싫다고 말했다. 이만열 교수(숙명여대)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일"이라며 분개했다. 이 교수는 자기들끼리 모여서 뭘 하든지 아예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국교회 성장에 이바지했다는 주장에 대해 철저히 따져 물어야 한다는 반응도 있었다. 손봉호 교수(고신대 석좌)는 "박 전 대통령이 기독교 발전에 어떻게 공헌했는지 검증부터 먼저 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학도 군사훈련, 주민등록번호 갱신, 국가시험 등을 일요일 날 실시하게 했다며, "박 전 대통령처럼 주일 성수를 침해한 대통령이 없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자신이 박 전 대통령의 기독교 인권 탄압에 항거하다 남산에 끌려갔던 장본인이라고 했다. 그는 추모 예배에 참석해 달라는 준비위 요청을 단박에 거절했다고 밝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어린 시절 출석했다고 알려진 구미상모교회의 김승동 목사는 "박 전 대통령이 구미상모교회 주일학교에 출석하고 건축할 당시 도움을 준 일은 사실이지만, 신앙생활을 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박 전 대통령을 기독교인으로 보기는 힘들지 않느냐며 추모 예배 참석 요청을 거절했다고 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홍재철 대표회장은 추모 예배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반응했다. 일반 사람도 아니고 국가원수를 지낸 사람을 추모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라고 했다. 그러나 그런 행사를 하려면 범교단적으로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기관에서 하는 게 타당하다고 했다. 홍 대표회장은 박 전 대통령이 대외적으로는 불교 신자로 알려졌지만, 심정적으로는 기독교에 가까웠다고 봤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며칠 전, 고 김준곤 목사에게 '다음 주부터 교회에 나가겠다' 약속했다고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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