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리회가 돈 선거로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약 5년 만에 당선된 감독회장이 불법 선거운동 혐의로 당선 무효 판결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돈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에 문제가 있다"며 선거법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기독교 대한감리회(감리회)가 돈 선거로 인한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전용재 감독회장이 제30회 감독회장 선거운동 기간에 금품 및 향응을 제공한 혐의로 9월 24일 당선 무효 판결을 받았다. 5년 만에 선출된 감독회장은 취임 석 달여 만에 직무가 정지되었다. 함께 선거를 치렀던 강문호 목사(갈보리교회)는 선거운동 기간에 수억 원의 금품을 요구받았다며 사실상 이번 감독회장 선거는 금권 선거였다고 폭로했다.

금권 선거 사태를 마주하는 감리회 주요 관계자의 인식 차이는 크지 않았다. "돈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과거 감독회장 선거도 그랬다", "4명의 후보자 모두 금권 선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마디로 돈 선거였다는 것이다.

논란은 감독회장 후보로 나섰다가 낙선한 강문호 목사의 진술에서 시작됐다. 선거운동에 5억 원을 썼다고 밝힌 강 목사는 한 장로 선거 브로커에게서 8억 원을 요구받았고, 40여 개 감리회 그룹으로부터는 적게는 4000만 원부터 많게는 수억 원까지 요구받았다고 폭로했다. 다른 후보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강 목사의 폭로에 감리회는 발칵 뒤집혔다. 감리회 홈페이지에는 선거 브로커를 공개하라는 요구가 이어졌다. 강 목사는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감리회 선거는 돈 선거다. 금권 선거를 없애기 위해 터트렸는데 (나에게) 연락하는 사람 중 90%가 '잘했다. 계속 문제 삼아라'고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취재 결과 일부 후보도 강 목사처럼 선거를 위해 수억 원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용재 감독회장 측은 선거 자금으로 약 4억 원을 지출했다고 밝혔다. 후보 등록비(5000만 원)를 포함해 주로 홍보비와 참모 관리비에 썼다고 했다. 홍보비는 문자 메시지 비용이 주였고, 참모 관리비는 유류비·식사비 등이 대부분이었다. 또 다른 후보였던 함영환 목사(분당새롬교회)는 얼마를 썼는지 밝히지는 않았으나 "부끄럽지만 금권 선거는 확실하다"고 말했다.

감리회 감독회장 선거법에는 참모와 선거 자금 규모 등에 관한 규제가 없다. 후보자의 경제적 여건이 좋을수록 선거운동 캠프 인원도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다. 심지어 돈이 없어 상대 후보로부터 참모를 뺏겼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함 목사는 "1년 가까이 함께한 참모가 선거 20여 일을 앞두고 전용재 목사 측으로 갔다"며 전 목사를 비난했다. 선거비로 4억 원을 썼다는 전 목사 측의 주장도 거짓에 가깝다고 했다. 강 목사가 5억 원을 쓰고도 감당이 안 돼 포기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받았다", "안 줬다" 진실 공방

▲ 전용재 감독회장은 제30회 감독회장 선거운동 기간에 금품 및 향응을 제공한 혐의로 9월 24일 당선 무효 판결을 받았다. 취임 석 달여 만이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함 목사는 전 목사가 매표 행위를 했다며 청주 지역 유권자 11명에게 30만 원씩 돌린 것이 그중 한 사례라고 했다. 앞서 총회특별재판위원회(총회특별재판위·현상규 위원장)는 9월 24일 신기식 목사 등 2인이 선거관리위원회를 상대로 낸 감독회장 당선 무효 소송에서 당선 무효 판결을 내렸다. "6월 18일 17시경 청주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전용재 후보와 최 아무개 장로가 청주 지역 장로 유권자 정 아무개 등 10명에게 지지를 부탁하며 돈 30만 원씩 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전 목사 측은 즉각 반발했다. 6월 18일 청주에 간 사실이 없으며, 6월 25일 한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해명했다.

총회특별재판위는 돈을 받았다고 진술한 정 장로의 공증문서를 토대로 판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찌 된 일일까. 취재 결과 정 장로는 사건이 있던 날짜를 착각했고, 돈 봉투도 전 목사가 아닌 지역 장로들을 소집한 한봉수 장로가 준 것으로 수정했다. 사실 확인을 위해 돈 봉투를 준 것으로 알려진 한 장로를 만났다. 그는 개방된 호텔 로비 커피숍에서 누가 돈 봉투를 주느냐며 정 장로의 주장을 반박했다. 호텔 로비 커피숍은 한 장로의 말대로 개방적이었지만, 시야에 잡히지 않는 사각지대도 있었다.

이처럼 양측의 진실 공방이 치열하지만, 최고 심의기구인 총회특별재판위는 공증문서만으로 감독회장 당선 무효 판결을 내렸다. 물증보다는 감독회장 선거운동 중 금권 선거가 이뤄졌을 것이라는 정황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현상규 위원장은 "밖에서 보기에 (재판을) 소홀히 다룬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전 감독회장이 불법 선거운동을 한) 정황을 알지 않는가. 총회특별재판위에는 헌법재판관 출신을 비롯한 세 명의 법조인이 있다. 충분히 검토해 내린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총회특별재판위의 판결을 바라보는 시선은 두 갈래로 나뉜다. 판결을 존중하는 이들은 이번 기회에 돈 선거 관행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8억 요구설을 놓고 강 목사와 진실 공방 중인 전윤 장로(광천교회)는 10월 8일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지만, 현행 선거법은 돈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감독회장 선거뿐 아니라 감독 선거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최근 금권 선거 의혹에 휩싸인 고신일 감독(중부연회)은 법원 조정 절차에 따라 사직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물증 없이 진술과 정황만으로 당선 무효 판결을 내린 것은 적절치 못했다는 목소리도 있다. 선거관리위원회 조남일 심의분과위원장은 "선례가 없던 판결이었다. 총회특별재판위가 정황에 따라 전 감독회장이 금권 선거를 했다고 하는데 정치적인 판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돈 부르는 선거법, 개정될까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이들은 한결같이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선거제도와 유권자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돈으로 표를 사려는 시도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감리회 내부에서는 '소위 예수가 와도 돈이 없으면 감독회장에 당선될 수 없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돈 부르는 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 가고 있다. 강문호 목사는 선거법 개정이 아닌 폐지를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제비뽑기나 추천, 콘클라베(교황 선출 방법)와 같은 제도를 도입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논란이 일자 장정개정위원회(김인환 위원장)는 선거법 개정 작업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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