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안암동에 소재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소속 ㅇ교회가 ㅈ 담임목사의 설교 표절로 몸살을 앓고 있다. ㅈ 목사는 6년간 지속적으로 다른 사람의 설교를 마치 자신의 글인 양 주보에 설교 요약문 형식으로 실었다. 사실을 알게 된 교인들은 담임목사 옹호파와 반대파로 갈라져 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 ㅈ 목사는 다른 목사와 교수들의 글을 요약문에 그대로 실은 것은 맞지만, 실제 설교는 다르다며 표절 사실을 부인했다.

▲ 서울 안암동 소재 ㅇ교회가 담임목사의 설교 표절로 분쟁 위기에 놓였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사생활 추문과 함께 설교 표절 문제 불거져

ㅈ 목사의 설교 표절은 2012년 10월, ㅈ 목사 사생활에 대한 추문과 동시에 교회에 퍼졌다. 당시 성가대 지휘자가 돌연 교회를 떠났고 그 이유가 사모와 크게 다투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한 장로가 지휘자를 찾아가 물었더니, 지휘자는 ㅈ 목사의 부도덕한 모습 때문에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ㅈ 목사가 포도주·칵테일을 마신 일, 포커를 친 일, 당회장실 컴퓨터에 포르노 사진이 있었던 일 등이었다.

담임목사의 추문이 불거지자, 한 장로가 ㅈ 목사의 설교가 수상하다는 얘기를 꺼냈다. 이후 몇몇 장로와 집사는 실제로 ㅈ 목사의 설교 요약문과 비슷한 설교를 찾는 작업에 착수했다. 원본 설교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약 200건이 무더기로 적발됐고, 그중에는 다른 목사가 설교한 지 1개월도 되지 않았는데 도용한 것이 절반이 넘었다. 또 ㅈ 목사가 표절한 목사들은 대부분 다른 교단 목사·신학자였다. 교인들은 ㅈ 목사에게 설교 표절 및 신학 문제를 제기했다.

▲ 설교 표절은 ㅈ 목사의 사생활에 대한 추문에서부터 불거졌다. 일부 교인들은 ㅈ 목사가 청빙 후 6년간 총 199번 설교를 표절했다고 밝혔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토씨 하나 안 바꿔 짜깁기…인용·참고 표시 전무

ㅇ교회는 매주 주보에 ㅈ 목사의 설교를 요약문 형식으로 싣는다. 참고 자료나 인용에 대한 표시가 없어, 처음부터 끝까지 ㅈ 목사가 직접 쓴 설교문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설교 요약문은 다른 목사들의 설교·글을 짜깁기하거나 문단 구성과 등장인물만 살짝 바꿔서 얹혀 놓은 것이었다. 교인들이 발견한 것만 해도 2007년부터 현재까지 199편에 달한다.

특이한 점은, 일부 유명 대형 교회 목사들이 아니라 교계에서 내실 있는 설교와 강의로 인정받는 인사들을 표절했다는 것이다. ㅈ 목사가 설교를 표절한 대상은 깊은 인문학적 소양을 겸비하고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한 김기석 목사(청파교회), 김영봉 목사(와싱톤한인교회), 곽건용 목사(나성향린교회), 정용섭 목사(대구샘터교회), 한희철 목사(성지교회) 등이다.

좋은 설교를 참고했다기에는 도가 지나치다. ㅈ 목사는 위 목사들의 개인적인 경험까지 본인의 것인 양 도용했다. 2012년 5월 6일 '무얼 가르칠까'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ㅈ 목사는 김영봉 목사의 2009년 9월 13일 설교 중 어린 시절 일화와 느낌을 그대로 베꼈다. 등장인물만 외삼촌에서 고모부로 바뀌었다. 2012년 4월 22일 '내 아버지'라는 설교에서는 김영봉 목사와 백석대 류호준 교수의 아버지에 대한 일화를 마치 자기 아버지 일인 것처럼 썼다.

예화는 물론 성경 강해와 교인들에게 인사하는 표현까지 토씨 하나 바꾸지 않았다. 교회 설립 58주년 주일이었던 2012년 7월 15일, ㅈ 목사는 김기석 목사가 청파교회 104주년 주일 설교에서 사용한 인사말을 그대로 가져왔다. 104주년만 58주년으로 바꿨다. 2011년 5월 8일 어버이주일 '한 번만이라도 나를 제대로 봐 주세요'라는 설교에서는 곽건용 목사의 2009년 5월 10일 '우리들의 어머니'라는 설교의 예화 및 성경 강해를 짜깁기했다.

2011년 3월 6일 '맛있는 된장'이라는 설교는 세 목사의 설교를 버무렸다. 예화는 한희철 목사, 성경 해석은 정용섭 목사, 적용은 김기석 목사의 것을 썼다. 이처럼 ㅇ교회 주보에 실린 설교 요약문은 ㅈ 목사 본인이 아닌 다른 목사의 성경 해석이나 경험·적용을 이리 저리 짜깁기한 것이었지만, ㅈ 목사는 한 번도 인용이나 참고 표시를 하지 않았다.

▲ ㅇ교회는 매주 주보에 ㅈ 목사의 설교 요약문을 싣는다. ㅈ 목사는 나쁜 의도로 했다면 주보를 유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항변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ㅈ 목사, "표절인 줄 몰랐다"…해명 위해 낸 설교집도 바코드·ISBN 무단 도용

ㅈ 목사는 설교 '요약문'이 표절 시비에 걸릴 줄은 몰랐다고 해명했다. 평소 정용섭 목사나 김기석 목사 등의 생각에 깊이 공감하고 이들의 성경 강독이나 묵상에 영감을 얻어 설교했기 때문에, 요약문에는 그 사람들의 글을 그대로 실었다고 털어놨다. 만약 표절 의도가 있었다면 주보를 유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ㅈ 목사는 말했다.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그동안 근처에 있는 고려대학교 앞에서 주보를 돌리며 전도했다는 것이다.

그는 실제 강단에서 하는 설교와 주보에 실리는 요약문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ㅈ 목사는 자비로 본인의 설교집을 출판해 교인들에게 팔았다.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가 터졌다. 2013년 1월 출간된 ㅈ 목사의 설교집에 사용된 바코드와 국제표준도서번호(ISBN)는 다른 도서를 무단 도용한 것이었다. ㅈ 목사는 "책 디자인이 심심해서 출판사 사장이 임의로 넣은 것"이라며 자신은 몰랐다고 해명했다.

▲ ㅈ 목사가 해명 차원에서 발간한 설교집의 바코드와 ISBN(오른쪽 아래)은 다른 책의 것을 무단 도용했다. ㅈ 목사는 출판사 사장이 임의로 넣었다고 해명했지만, 이 사건은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3개월 설교 중지 후에도 불씨 여전…노회 위임 해제 청원까지

ㅈ 목사는 설교 표절 및 사생활 추문을 인정하지 않았고, 당회 및 제직회는 담임목사 옹호와 반대로 갈렸다. 반대 측 교인들은 ㅈ 목사가 위기를 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고, 옹호 측 교인들은 증거가 확실한대도 '설교는 표절 대상이 아니다'며 ㅈ 목사 편을 들었다. 갈등이 과열돼 당회가 파행 지경에 놓이자, 당회는 올해 3월 일단 3개월 동안 ㅈ 목사의 설교 중지와 장로들의 대표 기도 금지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3개월 후 갈등은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더 커졌다. 담임목사를 지지하는 측은 이 기간을 ㅈ 목사 징계로 보고 모든 문제를 덮으려 했다. 반대 측은 당시 결정이 당회의 파행을 잠재울 일시적인 조치였다며 반드시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맞섰다. 결국 시무장로 11명 중 5명이 10월 초 소속 노회에 담임목사 위임 해제를 청원했다. 집사 9명도 청원서에 서명했다. ㅈ 목사 측도 이에 질세라 10월 15일 정기노회에 반대파 장로 셋을 고발하는 긴급동의안을 올렸다. 경기노회는 두 건을 병합해 조사하기로 하고 7인 위원회를 구성했다.

ㅈ 목사는 일부 교인들이 청빙 시부터 자신을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교인들이 지속적으로 자신의 신학 사상을 의심하고 있다고 했다. 교단 신학과 다른 타 교단 목사와 교수들의 신학을 받아들였다며 이를 빌미로 자신을 몰아내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ㅈ 목사는 설교를 표절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교회의 분란을 예방하려고 3개월 설교를 중지하기까지 했는데, 그 후에 다시 문제를 제기하는 교인들에게 불만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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