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리 고기를 처음 접한 것은 아마도 1990년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군목으로 임관하여 백마부대의 한 연대에 배치 받아 사역을 시작했는데, 그때 사단 참모 목사님이 예하 부대 목사님들을 데리고 간 곳이 오리고기집이었다. 사단 목사님의 차에 타고 찾아 들어간 식당은 산 속에서 간판도 없이 장사를 하는 식당이었다. 하지만 그 식당은 사람들로 붐볐고, 미리 도착하기 전에 예약을 하고 주문을 해야 제대로 먹을 수 있는 식당이었다. 그때 했던 사단 참모 목사님의 말에 거기에 갔던 사람들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식당은 무엇보다도 맛이 중요해. 맛만 있으면 사람들이 어디에 숨어 있어도 찾아오게 마련이거든." 식당은 맛이 중요하고 식당의 본질인 맛만 있으면 다른 것들은 조금 부족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이라는 말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LA에서 아주 유명한 냉면집의 경우는 그러한 우리들의 생각을 뒤집어 놓기에 충분했다. 그 냉면집의 냉면 맛은 아주 뛰어나서 줄을 서서 기다린 후에야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유명한 집이었다. 그 주인이 그 냉면집을 다른 분에게 넘기고 자신은 그곳에서 얼마간 떨어진 곳에 냉면집을 새로이 열었다. 당연히 그 집 냉면의 맛은 그동안 사람들의 맛을 사로잡은 맛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새롭게 연 그 냉면집은 예전과 같은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고전하다가 문을 닫고야 말았다. 사람들은 맛이 중요하고 다른 것은 별로 식당의 성공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식당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고, 식당 주변에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가도 중요하다. 또한 음식의 가격이 얼마인가도 중요하고, 일하는 종업원들의 서비스 태도도 중요하고, 청결 상태나 눈에 보이지 않는 세심한 배려도 중요하고, 특히나 요즘에는 피아르(PR)도 중요하다. 음식의 맛만으로 승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naive) 생각일 뿐이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 오리고기집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그렇게 맛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산 속에 간판도 없는 건물에서 장사를 하는 그 모습이 일종의 정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고, 다른 손님들이 많이 있다는 것에 서로가 서로를 보면서 우리의 입맛이 자극되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전화로 주문해서 그때 바로 잡은 싱싱한 재료로 요리되는 오리고기를 자연과 함께 정취를 나누며 멀리 찾아가 같이 식사할 수 있는 사람들과 같이 섭취하는 그 상황이 우리의 입맛을 더욱 당기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하긴 우리가 시내에서 오리고기를 먹는 것보다, 팔공산 기슭에 가서 오리고기를 먹는 게 훨씬 더 맛있게 느껴지지 않던가?

우리들은 원인과 결과를 너무 단순화시켜서 일반화시켜 버리는 오류를 너무 많이 범한다. 예를 들면, 십일조를 철저하게 했던 록펠러는 미국 최대의 갑부가 되었다는 예화를 우리를 종종 많이 듣는다. 그런데 정말 록펠러의 물질적 성공은 십일조에서만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까? 십일조를 평생 철저하게 했지만, 여전히 가난함 속에서 평생을 사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무도 말하지 않을 뿐이다. 교육방송을 즐겨 들었을 뿐이라는 어떤 서울대학 수석 입학생의 이야기는 교육방송의 주가를 올려 주고 있지만, 똑같이 교육방송을 열심히 들었지만, 일류 대학에 실패한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뉴스화되지 않는 것이다.

사실 그 오리고기집이 잘되는 이유는 음식 맛이 뛰어났다는 것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식당은 산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사가 잘된 것이 아니라,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아서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산속에 있기 '때문에' 장사가 잘된 것이었다. '간판이 없음에도'” 장사가 잘된 것이 아니라, 일부러 '간판을 달지 않았기 때문에' 오로지 맛 때문에 찾아온다는 생각을 심어 주는 것에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음식 맛이 좋지 않다면, 아무리 다른 것을 잘해도 실패할 것이다. 반면 아무리 음식 맛이 좋다 하더라도 그 외에 다른 요소들이 잘 들어맞지 않는다면 성공하기 힘든 것이다.

내가 대구에서 목회를 시작하게 되자 수많은 사람이 내게 애정이 담긴 조언들을 많이 해 주었다. 나의 오랜 친구들과 가족들뿐만 아니라, 교회 내에서도 이런저런 소망을 가지고 내게 조언을 한다. 기도가 목회 성공의 열쇠라고 말하는 사람, 특히 새벽 기도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 예배가 본질이니 예배에 충실하면 목회에 성공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 제자 훈련을 해야 교회가 성장한다는 사람, 설교가 목회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말하는 사람, 교회는 목사하기 나름이라고 말하는 사람, 등등.

이러한 조언들은 모두 나를 사랑하고 교회를 위하는 애정이 담긴 말들이기에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고맙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러한 이야기들이 내 마음을 끌지는 못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말하는 비결이라는 게 너무나도 단순화시키고 일반화시킨 오류를 품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목회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오히려 유동 인구가 많은 아파트촌에 둘러싸인 지역에서 멋진 예배당과 주차 시설 및 기타 편의 시설을 완비하는 교회가 성장한다는 사실을 알고 교회 건축에 목숨을 거는 목사님들이 훨씬 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들의 조언이 내 마음을 끌지 못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다면, 나의 목회가 단순한 교회의 사이즈를 성장시키는 것을 지향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이곳에서 목회를 하는 목적은 단순히 사람들만을 많이 끌어 모아 초대형 교회를 만들어 보란 듯이 한국교회에 명함을 내미는 것이 아니다. 그런 내게 어떻게 하면 교회가 성장할 수 있는지 너무나도 단순화 일반화시킨 이유로 열심히 설득해 보았자 나의 구미가 크게 당기지 않는 것이다.

나는 한 영혼을 보고 싶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 상한 심령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시키는 것이 내가 이곳에서 목회를 하는 이유이다. 아쉽게도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는데, 이 세상의 거짓되고 허황된 것을 쫓다가 완전히 파산해 버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이 있고 회복이 있기에 복음을 들고 그 영혼들에게로 달려가고 싶은 것이다.

오해하지 마시라. 그러니까 나는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라는 고백으로 당연히 십일조를 드려야 옳다. 열심히 교육방송을 들으면서 공부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학생은 열심히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해 공부하는 일이 필요하다. 기도가 필요 없다거나, 예배가 중요하지 않다거나, 성도들을 말씀으로 훈련시키는 일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중요한 것이다. 다만 그게 마치 성공의 비결인 양 강조하는 것에 별로 마음의 동조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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