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은성교회. 2007년 시작한 예배당 공사는 건물 골조만 올린 채 중단됐다. ⓒ뉴스앤조이 한경민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공사였어요. 20억을 가지고 500억이 넘는 공사를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담임목사의 무책임한 말을 믿은 제 잘못이죠."

은성교회에 3억 1000만 원을 빌려 준 박 아무개 집사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내의 전도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박 집사는 20여 년간 유년부 교사와 부장을 지내며 교회에 헌신했다. 2008년 정봉규 목사가 예배당 건축을 위해 3개월만 돈을 빌려 달라고 했을 때, 집을 담보로 대출해 줄 정도로 교회에 대한 신뢰가 깊었다.

하지만 3개월은커녕 5년이 넘도록 교회는 돈을 갚지 않았다. 박 집사는 은행으로부터 언제 재산이 압류될지 몰라 불안하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교회가 대출 이자를 내 주고 있지만, 교회의 사정이 어려워져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면 집이 압류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가정에서 사소한 일로도 아내와 다툼이 벌어진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박 집사처럼 41명의 교인이 총 80억 원을 교회에 빌려 줬다. 이들 모두 잠시만 빌리겠다는 정봉규 목사의 말을 믿었다. 새 예배당이 무사히 완공되리라는 믿음도 있었다. 하지만 3년도 지나지 않아 건물 골조만 올린 채 공사는 중단됐고, 임시 거처로 마련한 건물마저 재건축조합과 소송에 휘말려 철거됐다. (관련 기사 : 900억 빚더미에 눌린 예배당 건축의 꿈)

은퇴 2년 앞두고 건축 시작

▲ 정봉규 목사는 은퇴를 2년 앞두고 교회 건축을 시작했다. (은성교회 홈페이지 갈무리)
1939년생인 정봉규 목사는 은퇴를 2년 앞둔 2007년 20억을 가지고 580억 예산의 예배당 건축을 시작했다. 정상적인 교회라면 은퇴를 앞두고 후임 목사를 청빙할 시기다. 정 목사도 교회 부목사였던 이 아무개 목사를 자신의 후임으로 내정해 2006년부터 함께 사역했다.

하지만 정 목사가 예배당 건축을 시작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이 목사는 2007년 말 돌연 사임했다. 정봉규 목사는 2009년 10월 14일 은퇴해 원로목사로 추대됐다. 교회는 새로운 목회자를 청빙하지 않았고, 교회가 소속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영등포노회(김정윤 노회장)는 인명진 목사(갈릴리교회 담임)를 임시당회장으로 파송했다. 하지만 교회의 모든 일은 정봉규 목사가 처리했다.

방만한 재정 운용, 캄보디아 땅 무단 매입

교회 재정의 30배 규모인 예배당 건축을 시작했지만, 정봉규 목사와 당회는 재정을 방만하게 사용했다. 임시로 지낼 거처를 마련한다는 명목으로 300억의 돈을 빌려 교회 맞은 편 상가 건물을 매입했다. 본격적인 건축에 앞서 수백억의 빚을 진 것이다.

건축 과정 중에 다른 데 욕심을 부리기도 했다. 정봉규 목사는 건축이 한창 진행되던 2007년과 2008년 교회 재정 63억 원을 들여 캄보디아 땅 450만 평을 매입했다. 해외 선교를 위한 기독교 마을을 세운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 결정은 당회와 공동의회를 거치지 않았고, 땅 매입도 당시 선교부장 모르게 진행됐다. 교인 대부분이 모르고 있던 이 일은 올해 3월 10일 해결책을 요구하는 교인들에게 정봉규 목사가 캄보디아 땅을 팔아 돈을 갚겠다고 약속하면서 드러났다.

2011년 7월에는 청소년 수련원을 마련한다는 명목으로 30억에 김포시의 땅과 건물을 매입했다. 이 역시 교인들 모르게 진행됐다. 거금을 들여 샀지만, 이곳도 예배당 부지와 마찬가지로 경매로 처분됐다.

교인 131명, 정봉규 목사 고소…은퇴 위로금 33억 '발끈'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교인 131명은 지난 6월 24일 정봉규 목사와 당회 장로들을 업무상 배임·횡령·사기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대부분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 준 교인들이다. 이들은 지난 5년 동안 교회에 빚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정봉규 목사와 당회는 별다른 방안을 내놓지 못했다. 시간이 갈수록 고통은 가중됐고, 결국 경찰에 고소하게 됐다. 사건을 맡은 강서경찰서는 8월 초 교회의 재정 장부를 압수해 조사하고 있다.

고소한 교인들은 정봉규 목사가 허황된 욕심을 부려 교회를 이 지경까지 몰고 왔다고 했다. 건축을 위해 1000억이 넘는 돈을 조달했는데, 예배당을 완공하지 못한 것이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이들은 정봉규 목사와 당회가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하나님 앞에 잘못을 시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거액의 은퇴 위로금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했다. 은성교회 당회는 2009년 12월 13일 정봉규 목사의 은퇴 위로금으로 33억 원을 결의했다. △위로금 30억 △연간 사례비 2억 △연간 대외 활동비 1억 원 명목이다. 주택과 승용차, 복리 후생비를 제외한 금액이다. 교인들은 교회가 무리한 건축으로 재정난에 허덕이던 시기에 거액의 전별금 지급을 결의한 당회를 비판했다.

정봉규 목사는 8월 18일 주일 설교를 통해 자신을 고소한 이들을 마귀의 도구라고 비난했다. ⓒ뉴스앤조이 한경민

정봉규 목사, "고소한 교인들은 마귀의 도구"

정봉규 목사는 설교를 통해 자신을 고소한 이들을 비난했다. "(고발한) 그 사람들은 기도 안 하는 사람들입니다. 마귀의 도구로 변질이 돼서 불신자보다 더 극악한 자들로 전락했습니다. 교회를 없애고자 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는 것을 똑똑히 볼 겁니다!"

지난 8월 18일 설교 메시지 중 일부다. 교인들은 정봉규 목사의 저주에 가까운 비난 설교에 분개했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되레 교인들에게 떠넘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정 목사의 비난 설교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어 교회에 나가기가 힘들 정도라고 분한 마음을 토로했다.

교회 재정부장이자 건축위원장인 김 아무개 장로는 교회 갈등과 관련된 혐의에 대해 사실과 많이 다르다고 반박했다. 먼저, 캄보디아 땅 매입은 절차대로 진행한 것이라고 했다. 김 장로는 당회가 2006년 12월 세계선교위원회를 구성해 선교 사업을 위임했고, 세계선교위원회에서 캄보디아 선교 사업을 추진한 것이라고 했다. 청소년 수련원도 당회의 적법한 절차에 따라 샀다고 했다.

정봉규 목사의 거액 전별금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김 장로는 정 목사가 2005년부터 현재까지 한 푼의 사례비도 받지 않으면서 헌신해 왔다며, 물질로 계산할 수 없는 담임목사의 수고를 최대한 예우한 것이라고 했다. 이마저도 교회가 어려워 결의만 했을 뿐, 지금까지 한 푼도 지급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정봉규 목사는 교회 문제를 직접 해결하고 설교 강단을 내려가겠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빚을 진 교인들에 대해서는 한 달 이내에 캄보디아에 투자한 선교 자금을 회수해 돈을 갚을 것이라고 했다.

교인들이 고소한 것에 대해서는 교회가 어려운 사정에 있다 보니 오해가 생겨 그런 것이라며, 문제가 해결되면 교인들 스스로 고소를 취하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교회 갈등이 점차 격화되고 있지만, 상위 기관인 영등포노회는 속수무책으로 교회 문제를 방관하고 있다. 인명진 목사는 은성교회 문제는 외부에서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라며 정봉규 목사가 교회 문제를 해결하고 물러날 때까지 노회는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현재 2000여 명의 교인은 짓다 만 예배당 건물 지하 주차장에서 예배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한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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