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 정치권이 교단의 파행을 총회정상화를위한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주도했다고 덤터기 씌웠다. 실행위원회와 총회사태진상규명위원회(진상규명위·전대웅 위원장)·총회파행사태후속처리위원회(후속처리위·정은환 위원장)가 합작해, 비대위원장 서창수 목사와 서기 송영식 목사, 서북지역 회계 이종철 목사, 자문위원 오정호·이상민 목사의 총대권을 5년간 정지시키는 중징계를 내렸다. 정준모 총회장과 황규철 총무는 몇 차례 사과했다는 이유로 면책됐다.

실행위는 지난 1월 30일, 97회 총회 파행 후 혼란스러운 상황을 객관적으로 조사하고 정리하겠다며 진상규명위를 조직하기로 결의했다. 하지만 위원으로 선정된 사람들부터 이미 객관적이지 않았다. 진상규명위에는 전 총회장들과 총회장·총무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대거 들어갔다. 지난 7월 실행위 결의로 구성된 후속처리위 위원들 역시 비슷했다.

진상규명위의 보고서는 비약이 심했다. 진상규명위 1소위원회(이형만 위원장)는 총회 사태가 97회 총회 전에 이미 시작되었다고 결론 내렸다. 오정호·이상민 목사 등 몇몇 교회갱신을위한목회자협의회(교갱협) 소속 목사들이 총회 석상에서 앞장서 발언했다는 이유로, 교갱협이 교단 분열까지 고려하면서 치밀한 작전을 짜고 비대위를 탄생시켰다고 보고했다. 이에 교갱협 한 목사는 "총회가 그렇게 날치기로 끝날 줄 알았다는 말이냐"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진상규명위는 총회 파행의 주범이 비대위라고 호도했다. 1소위원회는 비대위가 개혁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총회의 업무를 방해하고 속회 총회를 소집해 파행에 기여했다며, 비대위 탄생은 '위대한 비극'이라고 표현했다. 3소위원회(이완수 위원장)는 비대위가 총회를 분열시키고 총회의 명예와 위상을 대내외적으로 추락시켰다고 정리했다. 실행위는 이런 보고서를 그대로 채택했다. (관련 기사 : 총회장·총무에게 돌을 던지지 마라)

하지만 진짜 총회의 명예와 위상을 대내외적으로 추락시킨 장본인들은 따로 있다. '가스총 총회', '용역 총회', '노래주점 총회', '언론 탄압 총회', '막장 총회'로 예장합동을 세간에 오르내리게 한 사람은 황규철 총무와 정준모 총회장이다. 이들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교단 개혁을 위해 물심양면 노력한 사람들에게 총회 사태의 누명을 씌운 인사들 또한, '예장합동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여론에 부채질하는 자들이다.

비대위는 기습 파회를 목격한 총대들이 현장에서 즉석으로 조직했다. 총대들은 불 꺼진 회의장에서 점심 식사도 사양하고 머리를 맞댔다. 이렇게 구성된 비대위는 곧 교단 개혁의 상징이 됐다. 총회 '정상화'를 넘어 '개혁'을 바라보는,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위기를 느낀 사람들이 비대위의 깃발 아래 모여들었다.

비대위는 지속적으로 정준모 총회장과 총회 임원회에 속회 내지 비상 총회 소집을 요구했다. 97회 총회 파회가 불법이니 정상적인 파회를 하자고 주창했다. 지난해 11월에는 98개 노회 4120명의 목사·장로들의 지지 서명을 받아 총회에 제출했다. 비대위의 지속적인 요구를 무시하고, 교단 목사·장로들뿐 아니라 한국교회 교인들과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뻗댄 것은 총무와 총회장이다.

요구가 계속 무산되자, 비대위는 올해 2월 19일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97회 속회 총회를 강행했다. 97회 총회 총대 800여 명이 참석했다. 비정상적인 파회를 바로잡고 총회 정치꾼들의 농간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총대들의 의지는 여전했다. 비대위는 교단 분열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했다. 오로지 교단을 정상화하고, 개혁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속회 총회를 개최한 이유였다.

비대위의 과(過)가 없었던 건 아니다. 속회 총회를 코앞에 두고, 일부 비대위 임원들은 비선으로 총회장 측과 합의를 진행했다. 비대위 임원들 사이에서도 합의되지 않은 사항들이 합의문에 실렸고, 비대위 임원들은 합의문 일부를 수정하고 무리하게 진행하려다가 도리어 역풍을 맞았다. 비대위가 총대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비정치성·도덕성이었는데, 총회 정치권과 남몰래 합의를 진행한 것은 신뢰를 까먹는 행동이었다.

너무 빨리 해산한 것 또한 아쉬움으로 남았다. 비대위는 총회의 화합을 위해 해산한다고 밝혔지만, 사실 임원진 내의 갈등이 커져 더 이상 활동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정치권에 의해 여차하면 98회 총회 총대권을 제한당할 수 있다는 것도 압박으로 작용했다. 일부 총대들은 "총회가 가까워진 지금, 교단 개혁의 과제를 수행할 구심점이 없다"고 한탄하고 있다.

비대위가 해산하고 총회가 다가오자 총회 정치권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교권을 쥔 일부 인사들이 전국 교회의 민의를 대변했던 비대위를 불법 단체로 기록하고 총회 파행의 주범이라고 뒤집어씌웠다. 정치권의 강수는 독이 될 여지가 충분하다. 한 총대는 "총대들과 전면전을 벌이자는 것인가. 그렇게 무리수 두다가 자기 칼에 날아갈 수 있다"며 경고했다. 다른 총대는 "98회 총회 현장에서 모두 바로잡아야 한다. 교단 개혁에 대한 총대들의 염원은 전혀 변질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구권효 / <마르투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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