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요> / 김기현 지음 / SFC 출판부 펴냄 / 247면 / 1만 1000원

얼마 전, 함께 일하는 동료가 책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책 좀 읽으시잖아요" 하면서. 믿음이 아직 약한 사람이 있어서 그가 쉬우면서도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기독교 변증 서적이 있겠냐는 것이었다. 변증이라는 말에 움찔했다. 물론 어렵고 복잡한, 하지만 좋은 책들은 많이 있다. 하지만 누구든 손에 잡았을 때, 쉽고도 명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변증서'를 찾는다고 했을 때는 순간적으로 머리가 멍해졌다. 내 무지로 인해 생물학적 부작용까지 일어난 것이다. "음… 그런 책은 시중에 거의 찾아보기가 어렵죠"라며 짐짓 아는 체했지만, 사실 그 대화를 마무리짓기 위한 얼버무림에 불과했다.

이런 무식의 암실에서 버둥거리는 내게 한 줄기 빛이 스며들어 왔다. 아빠와 아들이 편지로 나누는 기독교에 관한 질문에 대한 변증법적 대화가 책으로 나온 것이다. 여기에 바로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요?>의 첫 번째 미덕이 있다.

사실 많은 변증 서적이 있지만, 주제의 특성상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읽는 사람이 다행히도 독서 능력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 사람이라면 다행이지만, 요즘 그런 경우가 흔한가. 그런데 아빠와 아들의 편지 대화라면, 누구든 호기심을 가지게 된다. 선생과 제자, 목사와 성도, 엄마와 딸의 대화가 아닌 아빠와 아들의 대화는 이놈의 한국 문화에서는 너무도 당연히 그 대화가 궁금해진다. 나 역시 아버지와 단둘이 앉으면 변변한 대화를 제대로 못 하는 아들로서, 책을 읽는 내내 어떤 두근거림이 있었다. 아빠와 아들의 편지라는 형식이 변증을 공부해야 할 것만 같은 압박에서 독자를 자유하게 해 주는 힘이 있다.

그런데 아빠와 아들의 편지라는 것만으로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요?>의 형식적 미덕을 다 보증할 수는 없다. 만약이긴 하지만, 저자가 김기현 목사가 아니고 김희림 군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김기현 목사의 아들이자 제자이기도 한 김희림 군의 글을 보면, 그의 내공을 느낄 수 있게 한다. 고3이라고 다 같은 고3이 아니다. 단순한 영적 호기심을 막 휘갈긴 글이 아니고, 이미 그간 다져 온 인문학적 지성을 동원해 차분히 질문하는 글을 잘 정리하여 선보인다. 어느 아들이 이를 쉽게 따라 하겠는가. 아빠의 책임은 더 크다. 적당히 초월적 믿음을 들이대는 목사 아빠의 뻔한 답장이라면 누가 그 책을 읽고 싶어 하겠는가. 성경적으로도, 인문학적으로도 섬세히 세공된 김기현 목사의 사려 깊은 글은 머리는 시원하게 해 주고 가슴은 따뜻하게 해 주는 기분 좋은 편지이다.

로저 에버트가 최고라 여기는 영화들에 대한 자신의 리뷰를 모아 놓은 책인 <위대한 영화>에 보면 'Up'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소개하는 글이 있다. 'Up'은 영국의 마이클 앱티드 감독이 1964년부터 7년마다 똑같은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의 7년 뒤의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 주는 다큐멘터리다. 1964년에 7살이었던 아이들이 42세가 된 1998년에 '42Up'이라는 제목으로 나올 때까지 7년마다 꼬박꼬박 나왔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구하기 어려워서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요?>를 읽다가 'Up'을 떠올리며 김기현, 김희림 부자가 이런 편지 대화의 책을 몇 년마다 한 권씩 내준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지금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요?>를 통해서 보여 주는 매력과 신선함이 더욱 깊어지고 진해지지 않을까. 독자로서 그런 독서의 행복을 맛보고 싶다는 작은 욕심을 내 멋대로 상상해 봤다.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요?>에 나오는 열 가지의 주제들은 매우 보편적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고민해 봤을 법한 내용이다. 보통 변증의 책들은 자신의 얼개에 독자가 들어와 주기를 바라지만, 저자들은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중요한 주제의 보따리를 짊어지고 직접 독자를 찾아와 준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열 가지 주제들 중 '인간'이 가장 인상 깊었다. 리차드 도킨스를 인용하면서 동물과 인간의 결정적 차이점을 딱히 발견하기 어려운 것 아니냐고 하면서, <강철의 연금술사>를 언급하면서 사람을 구성하는 물질 성분의 빈약함을 들면서 '인간'에 대한 물음을 아들이 던진다. 도킨스를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강철의 연금술사>로 넘어가는 고딩의 패기 어린 질문에 아빠는 인간이란 어느 한 가지 잣대로만 평가해 낼 수 없는 복합적인 존재임을 차분히 말해준다. 그리고는 약간은 뻔하면서도 당연한 대답이지만, 목사이자 아빠인 저자는 사랑과 은혜에 대한 진솔하고 벅찬 결론으로 '인간'에 대한 질문의 답장을 마친다.

"터무니없이 모순 덩어리인 인간이 뭐가 대단하다고 하나님께서 선택했느냐는 네 물음에 아빠가 빙빙 돌고 있는 거야. 이제는 피할 수 없겠지? 그래, 이 엉터리 인간을 하나님께서는 왜 모든 피조물 중에서 특별한 존재로 사랑하시는 걸까?

아빠의 대답은 이거야. 그것을 말도 안 돼! 말이 안 되고말고. 그게 어떻게 말이 되니? 인간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뭔가가 그다지 없으니, 하나님께서 사람을 귀하게 여기시는 까닭은 논리적으로 설명 불가능하지. 그냥, 하나님의 사랑이 말도 안 되는 사랑인 거야. 이런 사랑이 미친 사랑이겠지. 그 말 안 되는 것을 말 되게 설명할 수 없을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은혜라고 하지.

아무 까닭 없이,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그 사랑이 어쩌면 하나님의 사랑인 거고, 오로지 그것이 하나님께서 벌거벗은 인간을 위해 옷을 장만하신 이유에 답하는 유일한 대답일 거야.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듯, 하나님께서 너를 사랑하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듯, 아빠도 너를 그렇게 사랑해(73~74쪽)."

결국 진정한 기독교 변증은 상대방의 이성을 압도해서 무릎 꿇리는 일이 아닌 것이다. 변증서적이라면 우리는 흔히 난이도의 문제, 얼개의 문제, 분량의 문제부터 눈이 가게 마련이었다. 변증은 사랑의 호소로 이루어져야 한다. 아들을 향한 아빠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낸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요?>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사랑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대화하고 싶어지고, 편지하고 싶어지는 것 아닌가.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리 방대한 지식과 완벽한 논리의 변증도 상대방을 고독한 타자로 내던져 버리고 만다. 사랑하면 조금 덜 이해해도, 완벽하지 않아도, 부족해도 괜찮다. 그 빈틈을 사랑이 채운다. 채우는 것으로 모자라 넘쳐흐를 만큼 풍족하게 된다.

암실의 어둠은 걷혔다. 이제 나는 글을 마무리하고, 책을 들고 나에게 험난한 요청을 했던 동료의 사무실로 찾아간다. 내 손에 든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요?>를 당당히 추천하러 가기 위해서.

송지훈 / 30대가 되고부터 글쓰기를 시작했고, 지금은 소박한 1인 서평 매거진을 만들고 싶어서 준비 중이다. 대학생 선교 단체 CCC 간사로 8년째 일하고 있고, 광명의 함께가는교회 중고등부, 청년부 사역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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